동학 봄을 노래하다

-수운 선생이 맞이한 네 번의 봄

봄을 맞으러 가는 사람들!

봄이 오는 데는 이유가 없지만, 봄이 오는 길목은 있다. 해마다 봄이 오는 길목은 다르다. 불덩어리이던 지구가 식어서 네 계절이 생긴 이래로, 해마다 같은 봄이 온 적은 없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 봄을 맞이하는 마음이 해마다 같지 않아서이다. 봄은, 하늘로 온다, 아니, 땅으로 온다. 아니다, 봄은 사람으로 온다. 사람 안에 하늘과 땅이 통섭되어 있다(人中天地一). 아니다, 그렇다(不然其然).

올해 봄은 2월 14일, 팽목항에서 시작됐다. 1월 26일, 경기도 안산을 출발한 봄맞이꾼들은 19박 20일 동안 500여km를 걸어 2월 14일, 3000여명이 팽목항에 집결했다. 노란 깃발은 하늘로 휘날리며 봄맞이 굿춤이 되고, 노란 조끼는 땅을 울려 잠든 봄을 일깨우는 마중물이 되었다.

(전략) 행진단은 팽목항에 도착 직후, 곧바로 ‘진실규명을 위한 세월호 인양촉구 팽목항 범국민대회’에 참여했다. 범국민대회에는 지역, 성별, 나이를 불문한 유가족·실종자 가족·시민들이 참석해 “온전한 선체 인양을 통한 실종자 수습,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을 정부에 요구했다. 범국민대회 사회를 맡은 유경근 4·16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세월호 인양 비용이 얼마인지 아나?”라고 물으며 “숫자를 말하는 분들은 다 틀렸다. 사람을 존중한다면 얼마가 들어가든 무조건 해야 하는 게 세월호 인양이다”고 말했다.(중략)

이날 범국민대회는 문규현 신부의 절규로 시작됐다. 문 신부는 “오늘 세월호 참사 실종자들이 아직 기다리고 있는 사고 현장에 다녀왔다”며 “우리가 다함께 실종자 9명을 크게 부르면 반드시 돌아올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종자 9명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 “이영숙님, 권재근님, 어린 (권)혁규야, (박)영인아, (허)다윤아, (남)현철아, (조)은화야, 고창석 선생님, 양승진 선생님!” (중략)

세월호 유가족 합창단은 참사 희생자 추모곡을 부르기도 했다. 노랫말에는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겼다.(하략)

- 남소연(newmoon), <팽목항에 ‘3000명’ 최대 인파 “얼마가 들어도 무조건 인양해야”>(오마이뉴스, 15.02.14) 중에서 인용.

아아, 이렇게 봄은 사람을 타고서 온다. 어디 한 해의 봄만이랴! 시대의 봄도 그러하며, 선천과 후천이 갈아드는 겨울에서 봄으로의 여행도 역시 사람을 타고 오간다. 그래서, 동학은 그대로 봄이며, 봄은 동학의 또다른 이름이다.

동학, 봄에 태어나 봄꿈을 꾸다

동학으로 가는 길의 입구는 봄 아지랑이 속에 꿈처럼 열렸다. 20세를 넘어서면서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내가 살고 세상을 살리는 길을 구하던 수운은 좀 더 본격적인 구도 행각을 위하여 용담의 살림을 모두 정리하여 처자들을 울산의 처가에 의탁하고, 수운 자신은 울산 외곽 여시바윗골에 초당(草堂)을 마련하였다. 그 이듬해, 그의 나이 32세 되던 을묘년(1855) 봄. 소요음영(逍遙吟詠)하던 수운은 꿈인 듯 생시인 듯 경지에서 한 스님을 만나 책 한 권을 받으니 이를 을묘천서(乙卯天書)라 한다. 그 책에 하늘에 기도(祈天)하라 한 대로 해인사의 말사인 내원암과 적멸굴에서 49일 기도를 마친다. 손끝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궁극적인 앎의 문을 여는 길을 찾아 기미년(1859)년 가을, 수운은 운명처럼 다시 고향, 용담으로 귀향한다.

구미산에 오만년 만에 처음 봄이 오다

혹독한 산속의 겨울을 보내고, 산에 들에 냉이 달래가 땅 속의 봄을 길어 올리던 경신년(1860) 입춘(立春). 수운은 하늘에서 오는 봄을 맞으려 결의를 다진다. 불출산외(不出山外). 도를 깨닫기 전에는 산 밖을 나서지 않으리라. 아니다. 반드시 세상을 건질 도를 깨달아 사람들에게로 나아가리라(必出山外). 이어 입춘시 한 수를 더 지어, 하늘의 봄소식을 청한다. “도의 기운을 엄숙히 보존해야 사악한 기운이 침범하지 않으리니, 꿈을 잃어버린 세상 사람들처럼은 되지 않으리라(道氣長存邪不入 世間衆人不同歸).”

하늘이 그 뜻에 응답하여, 그해 봄이 완연한 4월 5일, 수운에게 마침내 오만년 같은 겨울을 녹여 버리는 봄소식이 전해지니, 그 이름이 동학(東學)이고 천도(天道)이며 무극대도(無極大道)이다.

그 일을 일러 수운은 다시 노래한다. “용담의 물이 흘러 네 바다의 근원이요, 구미산에 봄이 오니 온 세상이 꽃이로다(龍潭水流四海源 龜岳春回一世花).” 또 이렇게 노래한다. “꽃문이 스스로 열림에 봄바람이 불어오고, 성근 대울타리 사이로 가을달이 지나가네(花扉自開春風來 竹籬輝疎秋月去).”

그렇게 경신년 봄부터 가을 사이, 그리고 그 가을에서 다시 이듬해(辛酉, 1861) 봄이 다 지나도록 수운은 동학을 공부하는 절차와 방법을 갈고 다듬었다. 그리고 유월(1861.6) 구미산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고 세상 사람들을 맞아들이니, 세상은 구미산 아래 용담으로 몰려들어 스스로를 맑고 새롭고 깨끗하게 하고(淸新簡潔), 수운은 그들과 더불어 세상으로 나아가, 청신간결, 개벽(開闢) 물결의 원천이 되었다.

그러나 봄이 오는 길이 그리 쉬우랴. 용담에 사람들이 모이자, 의심의 눈초리 매서워지고, 비방의 입살이 높아졌다; “우습다 자네 사람 백천만사 행할 때는 무슨 뜻을 그러하며, 입산한 그달부터 자호 이름 고칠 때는 무슨 뜻을 그러한고. 소위 입춘 비는 말은 복록은 아니 빌고 모슨 경륜 포부 있어 세간중인부동귀라. 위심 없이 지어내어 완연히 붙여 두니, 세상사람 구경할 때 자네 마음 어떻던고.” 봄바람에 날리는 꽃잎처럼, 수운 선생은 그 입살에 휘날리어 길을 떠났다. 정처 없는 발걸음이었는지, 작정한 걸음이었는지 알 길은 없으나, 그해 겨울 수운 선생은 전라도 남원 땅에 이르렀다.

봄은 비껴서서 틈을 만드는 것이다

두 번째의 봄(1861–1862)을 수운은 남원 외곽 교룡산성 안의 산중 암자 은적암에서 맞이하였다. 긴긴 겨울 동안 동학론(東學論=論學文)을 비롯한 동학의 경전을 쓰고, 달밤에 교룡산 꼭대기에 올라 “무수장삼 떨쳐입고 일신으로 비껴서서 칼 노래 한 곡조를 시호시호 불러” 가며 칼춤을 췄다. 비껴 서는 것은 비켜서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것은 또 정면으로 마주 서서 ‘눈에는 눈’으로 대적하는 것도 아니다. 은적암으로 오기 전에 수운 선생은 무리를 모아 사도(邪道)를 한다는 혐의를 받기도 하고, ‘나보다 잘난 사람을 싫어하는’ 인심풍속 때문에 비방의 한가운데에 놓이기도 하였다. 어쩔 것인가? 세상 인심의 형편이 그러할 때, ‘슬쩍’ 비껴선 걸음이 바로 은적암 행이다.

비껴서기. 그것은 수운 자신이 이곳 은적암으로 오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고, 동학이 이 세상을 대하는 자세의 문제이기도 하다. 무릇 동학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비껴선 사람들이다. 비껴서서 틈을 보며, 틈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새싹이 언 땅에 틈을 만들며 돋아나는 것처럼, 이 풍진 세상에 봄을 만드는 ‘싹수’ 푸른 사람이 바로 동학인이다. 비껴선 자리에서 생명이 돋아난다. 아니, 비껴선 자세가 바로 생명의 본 모습이다.

그 비껴서서 부르는 칼노래에 화답하여, 아니, 우주를 넘나드는 그 춤사위 끝에서 봄기운이 풀어져 나와, 그렇게 또 한 번 맞이한 봄이 또 수운 선생의 마음에 좋았나보다. 수운 선생은 또 봄을 노래한다; “바람 지나고 비 지난 가지에 바람 비 서리 눈이오는구나. 바람 비 서리 눈 지나간 뒤 한 나무에 꽃이 피면 온 세상이 봄이로다(風過雨過枝 風雨霜雪來 風雨霜雪過去後 一樹花發萬世春, 偶吟).”

그러나 이 노래는 또, 지난 한 해의 이야기가 아니다. 새 세상을 그리워하는 동학쟁이들이 앞으로 맞이할 풍우상설(風雨霜雪)의 시절을 예감하는 것이니, 봄이라고 온통 봄에 취하기만 할 것도 아니요, 겨울이라고 끝내 새봄을 의심하며 낙담할 일도 아니다. 그것이 “지금 이 순간이 이러해도, 어제는 그렇지 않았음을 생각하라(不知心之得失 在今思而昨非, 後八節)” 하신 수운 선생의 말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다시 봄(壬戌, 1862).

수운은 은적암에서 한겨울을 나고 새로 맞이한, 세 번째의 봄을 타고 경주로 돌아와 다시 개벽의 꿈을 조직화해 나갔다. 바람에 몰린 구름(風雲)처럼 사람들이 또다시 용담의 사립문을 열고 동학으로 몰려들었다. 도의 기운이 높아지자, 필연적으로 마(魔)가 끼어 들었다. 수운 선생은 경주 관아에 붙잡혀 갔다. 그 일은 일시적으로 전화위복이 되었다. 수백 명의 제자들이 몰려들어 석방을 요구하자, 겁먹은 경주영장은 수운 선생을 풀어 주고, 수운 선생의 위력으로 영장(營長)의 부인의 병마저 치유하게 되자, 수운 선생 주변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수운 선생은 그 승승장구 속에서 오히려, 자신과 도의 장래를 예감하였다.

준비 끝에 다가온 그해 섣달그믐, 그 한겨울에 동학의 접(接)이 조직되었다. 16명의 접주(接主)가 임명되었다. 동학의 새봄이 이렇게 잉태되었다. 이로써 동학은 한 사람이 만인(萬人)에게 펼치는 담론이 아니라, 신앙공동체를 통해 실현되는 도학(道學)의 씨앗이 되었다. 제서(題書)가 나온 직후에 동학의 훗날을 기약하는 조직화가 이루어졌다. 수운 선생이 도의 장래를 준비한 것이다. 가르침을 담은 여러 경전들에 이어 두 번째 도구(道具)이다. 접은 훗날 포(包)로 확장되고, 외연이 넓어지나 내포(內包)도 세분화하여 육임제를 비롯한 세포들이 생겨났다. 그렇게 동학은 생장하여 봄 나무에서 여름 나무로 자라 나아갔다. 그 ‘사이’에, 답이 있는 것이다.

세 번째 봄, 계해년(癸亥, 1863)에 춘삼월을 노래하다

그렇게 다시 맞이한 동학 창도 후 세 번째 봄날에 수운은 다시 봄노래를 부른다. “도를 묻는 오늘에 무엇을 알 것인가. 뜻이 신원 계해년에 있더라. 공 이룬 얼마 만에 또 때를 만드나니, 늦는다고 한하지 말라, 그렇게 되는 것을. 대는 그 때가 있으니 한한들 무엇하리 아침에 운을 불러 좋은 바람 기다리라.” 무슨 뜻인가? 이 노래는 이렇게 여운을 남긴다; “지난해 서북에서 영우(靈友)가 찾더니, 뒤에야 알았노라 우리 집 이날 기약을. 봄 오는 소식을 응당히 알 수 있나니 지상신선의 소식이 가까워 오네. 이날 이때 영우들이 모였으니 대도 그 가운데 마음은 알지 못하더라.”

세 번째 만의 봄에 동학의 봄노래는 절정으로 나아간다. 봄소식은 지상신선의 소식이다. 지상신선은 동학의 도를 모두 이룬 도통군자이며, 그 도통군자가 사는 봄 세상, 지상천국이기도 하다; “입도(入道)한 세상사람 그날부터 군자(君子)되어 무위이화(無爲而化) 될 것이니 지상신선(地上神仙) 네 아니냐(교훈가).” 지상천국은 봄처럼, 스스로를 살리고 모두를 살리는 살림의 세상이다.

살림의 세상을 수운 선생은 ‘춘삼월’이라고도 표현했다; “거룩한 내 집 부녀 근심 말고 안심하소. 이 가사 외워 내서 춘삼월(春三月) 호시절에 태평가 불러보세(안심가); 작심으로 불변하면 내성군자 아닐런가. 귀귀자자(句句字字) 살펴내어 정심수도 하여 두면 춘삼월 호시절에 또 다시 만나볼까(도수사); 귀귀자자 살펴내어 역력히 외워 내서 춘삼월 호시절에 놀고 보고 먹고 보세(권학가).”

봄꽃, 씨앗을 품다

수운 선생은 이리하여 봄날의 꽃을 피워냈다. 그 꽃은 씨앗을 품은 열매를 맺었다. 계해년 8월, 수운 선생은 해월 최시형에게 동학의 도통을 전수하였다. 도의 장래를 위한 수운 선생 세 번째로 마련 도구이다. 그것은 수운 선생이 피워 올린 봄꽃 속의 씨앗이다. 다만, 세상 사람이 그 뜻을 알아 가는 것은 먼 훗날의 이야기이고, 수운 선생의 시대는 이제 마지막 겨울과 봄으로 향해 간다.

동학의 시간과 공간이 확장될수록 앞서거니 뒤서거니 동학하는 사람들 사이에도 이루고 이루지 못하는 차이가 생겨났다. 기울어짐, 그것은 병이 되었다. 수운 선생은 진단하고 처방하였다; “얻기도 어렵고 구하기도 어려우나 실은 이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니라. 마음이 화하고 기운이 화하여 봄같이 화하기를 기다리라(得難求難 實是非難 心和氣和 以待春和, 題書).” 이는 수운 선생의 또다른 시 “남쪽별이 둥글게 차고 북쪽 하수가 돌아오면 대도가 한울같이 겁회를 벗으리라(南辰圓滿北河回 大道如天脫劫灰).”와도 통하는 것이니, 두고두고 좌잠(座箴)으로 삼을 경구(警句)이다.

계해년 겨울 수운 선생의 목을 옥죄는 선천의 겨울바람 같은 불어 닥쳤다. 한양의 조선 조정에서 내려 보낸 정운구 일행이 수운 선생과 수십 명의 제자들을 체포하였다. 한겨울 내내 대구와 한양(과천)을 오간 끝에 봄기운이 완연한 갑자년(1864) 봄기운 완연한 어느 날 수운 선생은 감옥 속에서 해월을 마지막으로 만났다. 수운 선생은 시 한 수와 당부의 글을 해월 선생에게 전하였다. 먼저 유시(遺詩_; “등불이 물 위에 밝았으니 혐극이 없고, 기둥이 마른 것 같으나 힘은 남아 있도다(燈明水上無嫌隙 柱似枯形力有餘).” 등불과 물 사이에 의심할 틈(嫌隙)이 없고, 마른 기둥이 오히려 힘이 있다 함은 무슨 뜻인가? 나는 이렇게 읽는다; “나는 곧 그대이며 그대는 곧 나이니(吾心卽汝心) 나는 주검으로도 오히려 살아 있으리라.”

다음, 한 조각 글. 고비원주(高飛遠走). 높이 나는 새처럼 멀리 도망쳐라? 아니다. 높이 날아 멀리 멀리까지 도의 봄기운이 퍼져나가게 하라. 그렇다.

동학, 무극대도가 이 세상에 전해진 지 네 번째 맞는 봄날, 3월 10일. 수운 선생은 마침에 형장에 섰다. 형리의 칼이 하늘과 땅을 오가고, 수운 선생의 선혈이 대지를 적시고, 네 바다로 흘러 하늘로 이어졌다. 봄날 아지랑이 속을 나르는 민들레 홀씨처럼, 천도의 봄소식은 퍼지고 퍼지고 퍼져 나갔다.

동학은 그렇게 봄에 시작되어 봄을 노래하며, 봄을 전하고 있다.

동학의 봄꽃은 다시 피어날 것인가?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팽목항에서 시작된 봄이 이 세상을 온통 봄기운으로 넘쳐나게 할 것인지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불임의 껍데기 봄으로 귀결될지도 정해진 바 없다.

동학의 봄소식이 전파처럼 흘러 다니는 이 세상에, 봄은 오고 여름은 가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간다. 세상에는 선천의 겨울바람이 여전히 불어오가고 있다. 그 바람의 이름은 각자위심(各自爲心). 사람을 망치는 것은 오직, 나(인간)만을 중심으로 하는 단절의 생각과 삶. 사지 단절, 영육 단절은 곧 죽음이다. 죽음으로부터 생명으로 나아가야 한다. 열쇠는 오직 사람이다. 한울로부터 오는 봄소식을 받아 실현하는 것은 오직 사람. 다시, 봄은 사람으로 온다. 오늘 이 시대, 동학하는 사람들, 혹은 동학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동귀일체(同歸一體); “쇠운이 지극하면 성운이 오지마는 현숙한 모든 군자 동귀일체하였던가.”

그 동귀일체는 또 어떻게 하는가? 마음을 화하고 기운을 화하게 하여 봄같이 화하기를 기다리라 천명하신 수운 선생이 품은 씨앗, 해월 선생의 노래에 그 답이 있다; “성인의 덕행은 봄바람의 크게 화한 원기가 초목군생에 퍼짐과 같으리라(聖人之德行 如春風泰和之元氣 布於草木群生也, 聖人之德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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