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틈 없었던 빈 속의 어쩔 수 없는 초대손님:

쌔끈하게 닦여진 나의 몸뚱아리가 매끈한 진열대에 둥그렁둥그렁 담겨있다.

커피를 마시러 온 사람들에게 나는 그저 힐끗 눈길을 한번 줄까말까한 그런 존재랄까?

달콤한 디저트도 상큼한 탄산수도 뒤로하고 이곳에서까지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기는 하겠지…?

노오란 불빛 아래서 그렇게 기다리기를 한참,

어떤 여자 한명이 가게로 들어섰다. 특이하게도

음료들이 붙어있는 벽으로 눈길을 주는 것이 아니라 곧장 아주 곧장

내가 있는 진열대로 눈을 돌린다.

그렇다고 나를 찾으려 온 것 같지는 않다. 짧은 않은 시간동안 여기 저기 눈길을 주다 결국 내가 담긴 컵을 고른다.


그녀는 음료나 케익을 먹기엔 너무 부담이 되었던 것 같다. 그냥 끌리지 않았는지, 배가 불렀는지, 한동안 먹지 못했던 걸 먹고 싶었는지, 다른 메뉴가 너무 비싸다 여겼는지 다 알 수는 없다.

컵을 열어 옆의 동그랗고 빨간 친구가 먼저 그의 입으로 들어간다

그의 표정이 애매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뾰족한 물체에 찔려 선택되었고 그의 입 속에 사각

그의 마음은 갸우뚱한 것 같다.

“내가 바라던 그 맛이 아닌데…” 이내 컵 뚜껑을 닫아버린다


나는 나의 맛을 본 적이 없다.

분명한 건 농장에서 갓 태어났을 때 나는 이런 식의 여행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거다.

앞선 친구들이 농장을 떠나 이런 저런 트럭에 실려갈 때에도 우리가 언젠가는 다시 모이거나 옆집 마을에나 가게 될 즘으로 여겼다.

약간의 흠집이 있어도 그 자리에서 쓱쓱 닦여 주인 아저씨나 아줌마의 입 안에 사사각 사아 각각 들어갈 줄만 알았는데 웬걸,

알 수 없는 공장에 도착해 나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한참을 미로같은 공간에서 삥삥 돌았다. 알코올 같은 냄새가 코를 찌르고 이상한 액체들이 내 몸에 뿌려졌다 쪼개지고 회색 통에 몇 시간 담겨졌다 투명한 컵에 밀려 들어갔다.

나는 살면서 나를 맛 본 적이 단 한번도 없지만, 분명한 건 지금 이건 나의 맛이랄 게 사라진 이상하리만치 만들어진 그런 .. 완전히 다른 무언가라는 거다.


이 곳에서 나를 만난 어떤 이가 이 컵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긴 터널을 통과해 들어간 어두컴컴한 곳은 텅 비어 있었고, 나와는 종류가 한참 다른 친구들이 내게 텃세를 부리기 시작했다

어디서 왔는지 정체가 무엇인지 이것저것 물어대기 시작하지만 도무지 대답할 수가 없다 빙빙 돌아 더 긴 터널 속으로 꼬르륵 꼬로록

흘러내려갈 뿐이다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내 삶이랄 게 없다 그저 흐르는대로 그렇게 흘러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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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가 인위적으로 달다.
공장에서 씻겨져나와 갈변 현상을 막기 위해 뭔가 화학? 방부제가 들어간 인위적인 단맛이다.

그냥 단맛을 첨가하거나 설탕물에 담궈둔 걸 수도 있다.

이건, 신선함이 아니다.
깔끔함, 어느 정도의 세련됨일지 모르나
건강함이 아니다.

입 안의 단내가 그닥 반갑지 않은 빈 속 — 
실은 빌 틈 없었던 빈 속의 손님이자 불청객이자 어쩔 수 없는 초대손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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