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이별 그날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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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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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min readApr 6, 2017

‘헤어지자 우리’

이 대화가 우리의 마지막 대화

이 대화를 들은 지 3시간 후 지금의 나

나는 멍하니 앉아 주고받은 메시지만 읽고 또 읽고 있어. 나의 첫 20대 그리고 첫사랑 모든 게 처음이었던 우리 모든 걸 준 내 잘못일까 아님 어느 정도 감정을 아낀 너의 잘못일까

집에 오는 길에 내가 울었는지 무표정이었는지 집 비밀번호는 어떻게 눌렀는지 기억나지 않아 다만 지금도 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자꾸만 뒤돌아보고 전화기만 쳐다봐

고개를 돌리면 내가 사준 꽃다발이 그 옆에는 네가 사준 곰 인형 그리고 그 앞에 우리 함께 찍은 사진 이 공간엔 너로 가득한 데 이제 너를 비워내야 해

‘우리 서로를 위해 그만하자

사랑하기 때문에 우린 헤어지는 거야’

마지막까지 착한 놈으로 남으려는 그리고 여지를 남기는 너의 말에 드라마에 나오는 연인들처럼 우리가 다시 만날 날을 상상하며 잠시나마 행복했었어.

혹시나 길 가다가 마주쳐도 모른 척 피하지 말고 웃으며 잘 지냈느냐고 서로 물어봐 주자 그리고 너도 정말 보고 싶고 내가 그립다면 우리 꼭 한 번만 보기로 하자

아까 그 말 만 남기고 마치 더는 볼 일 없다는 듯 휙 뒤돌아 가버리더라 나는 또 바보같이 그 뒷 모습이 마지막으로 보는 너의 모습일 것 같아서 가만히 쳐다봤어 내가 먼저 떠나면 우는 모습 보일까 봐 너 우는 모습 싫어했잖아 그리고 네가 보는 내 마지막 모습이 우는 모습이 되고 싶진 않았어.

이제 우리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2년 간의 사랑 이야기를 끝내려고 해 1년간 너는 나의 전부였고 그 사랑 자체였어 행복한 추억 만들어 줘서 고마워

그리고 수고했어, 고생 많았다. 내 사랑

권태기인 걸 부정하고 여느 연인처럼 갓 사귀는 풋풋한 때로 돌아갈 수 있다고 헤어지자는 말보다 우리 돌아가자라는 말을 기대하고 고민했던 밤이 이젠 우스워지겠지만 너와 함께 했던 시간이 나에겐 아직 소중한 시간이니까

모든 시간을 오롯이 너에게 투자했다면 이제 나에게도 좀 투자해보려고 너에게 썼던 돈 나에게 쓰고 널 만났던 시간에 친구들 만나면서 이별에 처량한 여자는 되지 않으려고 해

너도 혹시나 딴 사람 만나면 나한테 들릴 정도로 막 자랑해줘 많이 행복한지 내 사랑만큼 큰 사랑을 줄 수 있는 여자인지 보고 싶다

아마 그때가 되면 내 사랑도 끝날 것 같아 혹시나 술 마시고 다시 만나자며 전화 오지는 않을까, 길 가다 마주쳐서 커피 한 잔 하지 않을까, 어디선가 나 못 잊어 방황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진 않을까 하며 꿈꾸는 그 밤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아

이제 내 할 말은 끝! 잘 지내 안녕 내 사랑

안녕, 내 답장이 많이 늦었지?

아마 이 편지를 볼 때쯤이면 넌 많이 울고 난 후겠지? 많이 울었어? 너 울면 눈 탱탱 부어서 못생겼으니까 울지 말고 웃자 지금 내 원망 많이 하고 있을 거야 나 많이 미워해도 돼 욕해도 되고 증오해도 돼 나는 끝까지 너한테 나쁜 놈인 것 같다

대학생 신입생으로 만난 너와 나 신입생임에도 불구하고 험악한 인상 때문인지 환영회 때도 나한테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지만 동그란 눈으로 술 한잔 달라며 다가온 너

그 순간 흑백이던 내 세상에 색이 입혀지기 시작했어. 널 만나기 전 이 세상이 이렇게 찬란한지 몰랐는데 캄캄한 어둠 속에 숨어있던 나에게 햇살처럼 다가온 너라서 좋았다

너와 함께 한순간이 모두 좋았어. 너를 쳐다보며 설레고 같은 동아리 선배를 질투하고 더운 여름날 아이스크림 하나 사 걷던 그 길조차도

헤어지자는 말 듣고 울음을 꾹 참는 모습이 어찌나 안쓰럽던지, 넌 웃을 때 제일 예쁜데

내가 본 마지막 모습은 슬픈 얼굴이라 안타깝네. 그래도 네가 보는 내 마지막 모습은 웃고 있는 모습이니 다행이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다.

네가 떠나 있던 1년간 다시 흑백 세상으로 들어가 버린 그 시간 동안 참 힘들었어. 너에게 하고 싶은 말도 참 많았는데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싶다가도 지금 이 상황이 최선이라는 생각도 해보면서 참았더니 결국 지금이다

지금은 모든 게 다 밝혀진 후겠지만 왜 말하지 않았냐고 너무 원망하지 말아줘차라리 다 말하고 남은 시간 행복하게 채워나갈 걸 내 끝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나도 많이 후회하고 있어 하지만 이건 내 욕심이라는 생각에 헤어지자는 말을 뱉어버렸네

내가 갑자기 떠나 무너질 널 생각하면 도저히 내 옆에 둘 수 없었어. 미안해 아영아 난 끝까지 나만 생각하다 가는 것 같다 단 한 번쯤 행복하고 싶었던 나의 욕심이 너까지 울게 한 것 같네

네가 없는 1년간 많이 보고 싶고 힘들었어. 이제야 내 진심 말해서 미안해 내 끝은 점점 다가오는데 그럴수록 네 생각만 나서 힘들더라 네가 옆에 있었다며 끝은 좀 더 늦게 왔을까?

갑자기 바보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너와 함께 살고 늙어 주름진 얼굴 보며 서로 하하 호호 웃고 함께 노을을 바라보며 노년을 보내는 생각

내 인생의 단 한 번의 축복이 있다면 그건 바로 너야 아영아

앞으로 추워지고 또 따뜻한 봄이 오고 더운 여름이 올 거야 잘 지낼 수 있지? 나와 떨어져 있던 1년간 잘 지내왔으니 그렇게만 지내줘 서서히 잊어가면서 내 빈자리에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나가

난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가는 거야 그러니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와사는 동안 모두 잊고 살아가 내가 널 잊지 않고 우리 다시 만나는 날 내가 널 찾아갈게

손발 항상 따뜻하게 하고 밤새지 말고 인간관계에 스트레스받지 말고 넌 사랑 받아 마땅한 애니까 널 빛나게 해주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내가 널 볼 수 있게 환하게 빛나줘 그리고 꾸준히 행복하고

언젠간 만나 우리가 행복할 그 날까지 사랑해 아영아

먼저 가서 미안해 후에 우리가 다시 만날 때

그땐 내가 첫눈처럼 먼저 다가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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