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지만 의미 있었던 미팅

CSR, 기업 인권 전문가 Chip Pitts 교수의 보통 회사 방문

Jungkwon Ahn
보통 회사의 CSO
3 min readDec 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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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은 제 개인 페이스북에도 올라와 있는 내용입니다. 아카이빙을 위해 포스팅합니다.)

기업과 인권, CSR 전문가인 미국 스탠퍼드대 로스쿨 Chip Pitts 교수님이 오늘 오전 slowalk를 방문했다. 본래는 일정에 없었는데 지난주 대학생들과의 CSR 사례 발표회에서 한 학생이 슬로워크에 대해 발표한 사례를 듣고는 갑작스럽게 슬로워크 방문 요청이 와서 성사되었다. 마침 이전 직장이었던 민간연구소에 있었을 때 국가 인권위원회 세미나에서 패널로 서로 인사를 한 적이 있었던 터라 서로 기억을 떠올리며 반갑게 미팅을 시작했다.

한 시간 정도 예정했던 미팅은 CSR, 기업 인권, 비즈니스 혁신에 관한 심도 있는 이야기로 이어지며 2시간을 훌쩍 넘기고, 이어진 점심시간까지 열띤 논의가 오갔다. 서로 유사하게 생각하는 지점들이 많아 생각과 사례들을 주고받으면서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다.

특히, 교수님은 인터뷰가 아니라 취조 수준으로 나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회사가 왜 이런 가치를 추구하는지, CEO는 얼마나 이런 가치에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CSO로서 조직에서의 역할은 무엇이며 한국사회에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사회적 책임과 경쟁우위가 상충하는 상황에서는 어떤 의사결정을 할 것인지, 한국의 기업들이 보다 진정성 있게 기업 인권과 CSR을 실천하는데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지 등등.

몇 시간 동안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었지만, 감사하게도 인터뷰 내내 지속적으로 슬로워크라는 회사에 깊은 관심을 보여주셨다. 그래서 아직 발표도 되지 않은 슬로워크의 미래 모습 구상에 대해서도 조금 보여드리고 피드백도 받았다.

흥미롭게도 그가 슬로워크의 철학과 방향성에 대해 듣더니 그래서 슬로워크는 스스로를 ‘사회적 기업’이라고 생각하느냐 물었다. 나는 슬로워크가 사회적 기업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특별히 그런 기업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기업은 반드시 사회적이어야 하고 수익 창출보다 더 깊은 수준에서 먼저 사회적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이 부분이 그의 생각과 거의 일치했다.

또 슬로워크가 대다수의 자체 프로젝트 결과물에 CC(Creative Commons)를 적용한다는 것에도 공유와 참여의 시대에 걸맞은 모습이라며 로스쿨 교수로서 적극 지지의사를 보였다.

미팅을 마무리하면서는 슬로워크가 새로운 비전과 함께 보다 높은 수준의 CSR, 지속가능성을 실천해나갈 때 사회적 활동으로든 새로운 비즈니스로든 반드시 다른 기업들에 경험과 지식을 전파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나에게 당부했다. 사실 안 그래도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여하튼 한국에서 상당히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음에도 슬로워크를 직접 방문한 Chip Pitts 교수님과의 미팅은 여러 모로 의미가 깊었다. 기업과 시민사회 그리고 학계를 아우르는 경험과 네트워크를 가진 CSR, 기업 인권 분야의 학자가 한국에서는 거의 전무하기에,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나와 회사의 방향성을 다시 한 번 고민해볼 수 있었고 앞으로도 이런 분과 좋은 연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도 반가웠다.

이 밤에 드는 생각은 딱 한 가지다. 더 잘해야겠다. 회사가 어느 수준까지 사회적 책임/지속가능성을 시스템과 문화적으로 내재화할 수 있는지 그 끝을 가보는 일. 그리고 다른 조직과 사람들에게 그런 기업이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 요걸 매우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오늘 유독 강하게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스르륵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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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kwon Ahn
보통 회사의 CSO

미션과 지속가능성에 기반한 비즈니스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일을 합니다. 대안적인 기독교 가치에 관심이 많습니다. 일상에서 희년의 길을 찾는 구도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