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COVID-19가 바꿔 놓은 세상에서 사용자 조사를 해보다 1
NDS weeknote 성범의 첫번째 이야기,
COVID-19이 휩쓸고 지나간 2020년, 내 학부 마지막 학기와 석사과정 첫 학기를 지냈다. 낯선 Zoom을 이용한 원격 수업과 온라인 시험 때문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다시 코로나 사태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점점 커져만 갔다. 하지만 두 학기 동안 수업을 포함해 다섯 개의 프로젝트를 했는데, 특히 사용자 조사를 하는 중에 여러 가지 색다른 경험들을 했다. 특히 COVID-19 상황에서 프로젝트 중 디자인 도구들을 사용하며 생긴 에피소드들을 에세이 형식으로 연재하려고 한다.
* 이 시리즈에서는 프로젝트 결과물을 설명하기보다는 전체 디자인 프로세스 중 사용자 조사까지 겪은 에피소드에 초점을 두고 서술할 예정이다.
전시를 경험하는 사용자들을 알아보다
2020년 하반기에 석사과정의 첫 수업으로 사용자들의 전시 경험을 높일 수 있는 앱 서비스(App Service)를 디자인해보는 것을 목표로 친구 한 명과 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전시를 관람한다고 생각했을 때 전시회 안에서만의 경험보다는 전, 중, 후 모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했다. 예를 들어 전시를 찾기 위해 검색을 하는데 내가 보고 싶은 전시를 찾기 어렵다거나, 전시를 입장하는 데만 1시간 30분을 기다려야 한다면 과연 전시회의 경험이 좋을까? 또, 전시가 매우 좋아서 구매한 엽서들은 방구석 어딘가에 쌓여만 가고, 모든 내용이 나와 있는 도록을 매번 사기엔 금전적으로 부담스럽다면 어떻게 전시를 기념하는 것이 좋을까?
이 두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타겟 유저(Target User)를 정하고 간단히 퍼소나(Persona)를 제작해보며 사전조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전시를 보러 다니는 사람들의 맥락 속 니즈를 더 심층 있게 파악해보기 위해 현장 관찰과 인터뷰를 기획하기로 했다. 하지만 UNIST가 있는 울산 주변에는 미술관들이 많이 없을뿐더러, COVID-19로 인해 갑작스럽게 휴관을 하거나 취소되는 일이 많았다. 반면 서울의 몇몇 미술관은 시간대를 나누어 일정 인원만 예약을 받으며 진행하고 있어 바로 디 뮤지엄 티켓과 기차표를 예매했다(2020년 9월 27일 국내 신규 확진 95명). 미리 인터뷰 상황을 머릿속에서 그려보다 문득, 미술관 스태프분과 관람객들이 오프라인 인터뷰를 꺼릴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Zoom을 통한 인터뷰 동의는 물론, 연락처 교환을 우선으로 생각하여 한 움큼의 명함과 마스크, 손 세정제를 챙기고 혼자 울산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좋은 기회로 그 자리에서 인터뷰하게 될 수도 있으니 서울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간략하게 인터뷰 가이드를 작성했다(그림 1).
미술관도 변화를 위해 움직인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디 뮤지엄에 도착하니 예약 시간보다 30분 일찍 와버렸다. 그래서 공터에 앉아 인터뷰 가이드에 수정할 내용은 없는지 다시 훑어보고 나서 시간에 맞춰 매표소로 향했다. QR코드 인증과 열 체크가 끝난 후 예약했던 표와 라텍스 장갑을 받았고, 입구에서 소독하고 나서야 입장을 할 수 있었다. 그때 내 눈에 띈 포스터가 하나 있었다. 관람객 피드백을 조건으로 스태프가 1:1 해설을 해준다는 것이다. 미술관이 COVID-19 상황에 전시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알기 위해 전시를 보러 온 관람객들을 인터뷰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어떻게 보면 전시를 기획하는 미술관에서 ‘전시’라는 매체를 통해 단방향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COVID-19가 만들어낸 변화로 인해 미술관이 반대로 관람객의 의견을 들으며 쌍방향적 소통이 생겨난 것 같아 신선했다. 그래서 미술관은 어떻게 소통을 하는지 궁금했고 관람객 피드백에 참여하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바로 한 스태프가 다가와 사전에 준비된 질문들을 하며 세션이 시작됐다.
“이번 전시는 어떤 경로를 통해 알게 되었나요? 주로 어떤 매체를 통해 전시회를 접하나요?”
스태프가 내게 했던 첫 질문이다. 듣는 순간, 기차에서 작성했던 관람객들을 타겟으로 한 인터뷰 가이드가 생각나 피식 웃음이 났다. 그리고 차례로 다른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기차 안 2시간 동안 적은 내용과 거의 일치하는 질문들의 답을 내가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미술관에서 관람객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변화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나는 왜 COVID-19 이후를 대비하려는 생각보다는 과거를 그리워하며 가만히 앉아만 있었을까 반성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사전 질문이 끝나고 전시실로 들어가게 되었다. 스태프분께서 아주 짧은 작품 소개를 해주시고 나서 자유롭게 관람하는 시간을 주셨다. 시간 제약 없이 관람을 마치면 그때 자세한 설명을 해주겠다고 하셨다. 한 작품 한 작품 볼 때마다 새로웠고 자유롭게 질문하고 답하면서 전시의 만족감은 높아져 갔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작품을 감상할 때 수 분에서 수십 분은 봤는데 같은 공간에 다른 관람객들을 마주친 순간은 한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고, 그마저도 길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관람객들은 어떻게 관람하는지 볼 수 없어서 이전까지 내가 다녔던 전시회가 맞나 싶을 정도로 신기했다.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전시를 보러 다닐 때면 엄청난 인파에 치여 작품을 보기 위해 전시회 안에서 줄을 서기도 했는데, 시간 제약 없이 관람하고 싶은 만큼 볼 수 있고 주변에 다른 관람객들이 없다 보니 작품에 집중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평소에 작품 옆 작은 글씨를 읽는 것이 힘들어 도슨트 시간을 찾아다니곤 했지만, 항상 수십 명이 같이 우르르 움직이고 때론 멀리 있어서 설명도 안 들리고 질문도 하기 힘들어서 결국 혼자 둘러보기도 했다. 그런데 1:1 해설로 스태프분께서 나의 작품 소감을 듣고 이에 대한 대답과 함께 작품의 설명을 해주시는 게 정말 전시 자체에 더 푹 빠지게 되었다. 그렇게 전시회의 마지막 작품 설명이 끝나고, 테이블에 앉아 변화하는 미술관과 관련된 피드백을 말하며 세션은 모두 종료되었다.
사용자를 온라인으로 만나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갈 때부터 밖으로 나올 때까지 상황상 관람객들의 인터뷰를 진행할 수 없어서 울산에 돌아와 사용자 조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계획하기 시작했다. 정성적 연구이기에 짧은 시간 안에 폭넓은 타겟 유저의 맥락을 고려해볼 수 있도록 연령대(20대/30대), 성별(남/여), 지역(서울/울산), 직업(학생/직장인)을 기준으로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려고 했다. 총 다섯 명의 참가자들과 사람들이 가진 생각들을 알아보기 위해 인터뷰를 하기로 했고, 잠재된 니즈와 위시(Needs and wishes)를 알고 싶어 컨셉의 일부를 같이 만들어보는 Co-creation Session을 진행하게 되었다(표 1).
기존의 디자인 도구들을 이용하여 Co-creation Session을 진행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보통 참가자들의 집에 직접 방문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무언가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참가자들이 갖고 있는 물건들을 직접 보며 설명을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젠 참가자들의 집은커녕 다른 지역을 방문하는 것조차 위험하게 되었다. 인터뷰는 Zoom 같은 플랫폼을 사용하면 되지만, Co-creation Session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되었다. 같은 공간에는 없지만, 같이 작업을 하며 실시간으로 공유되어야 한다는 모순적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우리는 Miro라는 플랫폼을 이용하게 되었다(Miro는 다수의 사용자가 무한대로 커질 수 있는 가상의 벽 위에 포스트잇, 도형,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추가하거나 옮기기 편한 온라인 협업 플랫폼이다). 그렇게 Miro 안에서 두 가지의 디자인 도구를 만들었고, 10월 말에 사용자 조사를 진행했다.
진행 순서는 표 2와 같다. 처음에는 이 프로젝트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함께 녹음, 녹화, 사진촬영 등 개인 정보 제공 동의를 구했다. 그리고 전시와 관련된 내용을 인터뷰 전에 환기할 수 있도록 최근에 다녀온 전시와 가장 인상 깊은 전시에 대해서 다시 찾아보고 그 경험을 간직하기 위해 남긴 자료들이 있다면 가져오는 것을 사전과제로 드렸다. 인터뷰의 경우 인터뷰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질문하되, 인터뷰이의 말을 최대한 이어나가기 위해 5whys(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끝내는 것이 아닌 계속해서 그 이유를 묻는 형식)를 하며 맥락들을 파악하려고 했다. 울산에 거주하고 있는 참가자의 경우 UNIST에서 진행했고,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는 분들은 Zoom과 Facetime을 통해 인터뷰를 했다(그림 2).
* Zoom 원격 인터뷰를 하며 느낀 점
1. 불안정한 인터넷 환경에서는 Zoom 연결이 끊길 가능성이 커 인터뷰 진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럴 때휴대폰 핫스팟을 이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2. 몇몇 인터뷰이와는 1–2초 정도 딜레이가 있어 동시에 말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평소보다 더 차분히 천천히 진행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3. Zoom을 사용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도 있어 차선책을 준비해야 한다(e.g. Facetime, 카카오톡 페이스톡, Skype, …).
툴킷(Tool-kit)을 이용한 세션은 위의 표 2에서도 알 수 있듯이 크게 두 가지 다른 방법을 통해 진행되었고 그림 3과 같이 디자인 도구를 Miro 보드에 만들었다. 먼저 참가자들은 전시를 보여주는 두 화면을 보고 나름대로 분석을 해보며 옆에 있는 요소들이 전시를 고를 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 볼 수 있게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세 가지를 고르고 그 이유를 말하는 시간을 가졌고, 반대로 안 고른 요소들에 대한 이유 또한 들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이 전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더 끌어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두 번째 순서로는 무언가를 기록할 수 있는 열세 개의 기능과 참가자들이 직접 만들 수 있는 빈칸을 제공했고, 두 개 이상을 조합하여 본인만의 전시를 기록하는 방법을 만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또, 기능을 조합한 예시와 이 컨셉이 전시와 접목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표현했다. 그리고 제한된 시간 동안 자유롭게 종이 위에 그려보고 설명을 부탁했고, 이를 토대로 한 심층 인터뷰를 끝으로 사용자 조사를 끝마치게 되었다.
* Miro에서 Tool-kit을 사용하며 느낀 점
1. 화면 공유를 통해 같은 화면을 보면서 참가자가 하는 말을 포스트잇으로 요약정리하면서 더블 체크할 수 있어 좋다.
2. 실제로 참가자가 직접 스케치하고 이를 Miro 보드에 올려야 하기에 준비물로 A4 용지와 펜을 미리 공지해 주면 좋다.
3. Miro가 처음인 참가자들을 위해 초반에 간단히 5분 정도 짧은 설명과 함께 익숙해지는 시간을 주면 진행하기 훨씬 수월하다.
마치며
COVID-19는 최근 수년간 디자이너들이 맞닥뜨리지 못했던 크나큰 장벽일 것이다. 사람들의 전반적인 라이프 스타일 자체가 크게 흔들려 버렸기 때문이다. 특히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리고 물리적인 거리를 둬야 한다는 상황은 가정 내에서부터 야외 활동까지 송두리째 변했고, 어떻게 보면 비대면이 당연시되는 사회가 되었다. 미술관도 변화하려는 움직임을 보니 과거를 회상하며 그리워하기보다는 COVID-19 이후 바뀔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전 세계 의료진들의 노력처럼, 새로운 제품 컨셉 혹은 더 나은 사용자 경험을 만든다는 관점에서 디자이너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고 생각이 든다. 이렇게 바뀐 세상 속 모두를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을 모든 디자이너에게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