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향과 편향: 이력서 쓰다가 학교 이름이 너무 길어서 생각도 길어졌다.

Seunghoon Lee
뉴디자인 스튜디오
4 min readMay 27, 2023

정갈한 왼쪽 정렬

학교 이름과 한창을 눈싸움을하다 게슈탈트 붕괴가 올 때쯤 비로소 얼마나 쓸데없는 시간을 쓰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그래서 그냥 왼쪽 정렬을 하고 넘어갔다. 깔끔하게 떨어졌다. 긴 학교 이름 때문에 줄 바꿈도 해보고 줄임말도 써봤지만 역시 가장 깔끔한 것은 왼쪽 정렬이었다.

긴 학교 이름을 쿨하게 왼쪽 정렬하고 다음 섹션으로 넘어갔지만 찝찝해서 몇 번이고 다시 페이지를 올려다보았다. 정갈하게 정렬된 학교 이름이 소름 끼쳤다. 나의 몇 년이 겨우 이거 하나로 정리되다니. 모든 것이 낯설어졌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건 아니지 싶었다. 나는 다양한 경험을 외치고 다닌 줄 알았지만 결국엔 학교의 순혈이었다. 그리고 변화를 주기엔 나는 이미 졸업했다.

편향성을 쟁취하다

편향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내가 보낸 몇 년의 시간들이 나를 구석으로 몰아가는 것이라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전혀 반대로 생각했다. 항상 나의 시간은 더 나은 방향을 향한다고 믿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이런 생각이든다. 그리고 그 순간 느낀다. 내가 편향되어 있었구나. 내가 걸어가는 길이 옳은 방향일 것이라는 무조건적인 믿음. 그것은 편향의 또다른 이름이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와 상관없이 나는 한 곳에 머무른 꼴이 되었다. 조금 이해력이 좋은 덕에 머무른 자리의 모든 것을 꽤나 깊게 흡수하였다. 학과와 연구실에서 많은 것을 배우는 동시에 그곳에 굳게 닻을 내리고 있었다. 또, 조금 성실한 나의 성격은 수업과 연구실 프로젝트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사실 그렇게 하는 것이 진실된 디자인을 공부하는 것이라 여겼다. 어쩌면 내가 성실해서가 아니라, 그냥 쉬운 길을 찾은 것일 수도 있겠다. 굳이 힘들게 공부할 것을 찾아다닐 필요없으니까. 게다가 사람들은 학교 생활에 집중하는 것을 선한 것이라고 여기기 않는가.

어느새 나의 디자인관은 학과와 연구실의 것으로 가두고 있었다.

롤러코스터 같은 삶

롤러코스터를 탄다고 생각했다. 빨라지기도 하고 느려지기도 하지만 멈출 수는 없는. 대체로 아주 빠른 속도로 달리는데 무섭다기보다는 스릴 넘쳤다. 편향되어 가는 삶을 살고 있었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 과정을 쾌락으로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징조는 있었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는 그 감정이 바로 신호였다. 내가 그 느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던 것뿐이다.

동물원의 동물들은 야생성을 잃어간다. 그런데 야생성을 잃어갈수록 동물원에서 생활하기는 편해진다. 괜한 야생성은 요주의 동물로 찍히니까. 나도 마찬가지였다. 학과와 연구실의 결정체가 되어갈수록 학교 생활은 편해졌다. 학과나 연구실의 가치와 충돌은 적어지고 자연스레 내가 바른 방향을 나아간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니 빠르게 달리는 롤러코스터에서 무서움을 느끼기보다 스릴을 즐긴 것이다. 하지만 달린다는 것은 언제나 방향성을 내포한다. 나는 어딘가로 무작정 달리고 있었다. 그 목적지는 아마 중심보다 극단에 가까웠으리라.

멈추지 않을 것만 같았던 롤러코스터는 졸업과 동시에 멈췄다. 멈춰 서야 비로소 내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 느끼기 시작했다.

결론

“어떤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자신의 영혼을 주는 것이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생각하는 게 아니고, 자신의 정열로 타오르는 게 아닌 겁니다. 그의 덕목도 그에게는 실감 나게 다가오지도 않을 것이고, 죄악이라는 게 있다면 그의 죄악도 사실은 그의 것이 아니라 빌려 온 셈이 되는 거지요.”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오스카 와일드)

내 생각과 행동은 내게 영향을 주는 모든 사람의 영혼이 섞인 것이라면 순수한 내 생각과 행동은 있을 수 없다. 내 삶이 피할 수 없는 영향의 굴레 속에 놓인 것이라 해도 어디서 어떻게 영향을 받을지 정도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소수의 사람보다는 많은 사람에게 영향받는 편이 안정적일 것이다. 한 사람의 말과 행동에 일희일비할 일이 줄어드니 말이다. 물론 여러군데에서 영향을 받으면 내 생각과 행동의 범위도 다양해지기도 하고 말이다.

나의 디자인관은 어디서 영향을 받았는지 돌이켜 본다. 그리 다양하지 못하다. 학과와 연구실의 몇몇 교수님들과 동료들 뿐이다. 그들이 디자인의 전부가 아닌데 나는 전부라 여겼다. 영향을 받는 범위가 겨우 그들뿐이었기에 나의 디자인관도 그곳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월 스트리트의 투자자들이 불확실성과 위험요소에 대비하기 위해 투자를 한곳에 집중하지 않는 것처럼 삶이든 디자인이든 한 곳에 나를 몰아넣지 않아야겠다.

롤러코스터가 멈춘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더 빠른 롤러코스터에 올라타 버렸다. 부디 이번에는 롤러코스터의 방향과 속도를 인지하면서 달리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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