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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당신을 위한 음악 추천 — 애플 뮤직

애플 뮤직은 내게 2003년도의 인디 히트곡, 영국의 베이스 뮤직, 일렉트로닉 음악 레이블 영턱스의 대표곡 그리고 소닉 유스의 후반기 작업을 추천했다. 당신에겐 어떤 음악을 추천할지 궁금하지 않은가?

지금 애플 뮤직의 추천 음악 메뉴에서 ‘Concrete Riddims’이라는 이름의 플레이리스트를 듣고 있다. EDM 페스티벌에선 들을 수 없는 실험적인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 모음이다. 흐르는 곡은 머신드럼의 ‘The Only Scarf’. 평소 좋아하는 곡이다. 나머지는 모르는 곡도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른 플레이리스트를 살피다 ‘Cooking With Bass’를 클릭한다. 제임스 블레이크의 ‘CMYK’가 흐른다. 히트곡은 아니지만 그의 음악 중 가장 헤비한 베이스를 자랑하는 곡이다. 이 플레이리스트를 받아 보기 위해 내가 한 건 처음에 좋아하는 장르와 음악가를 선택하는 미니 게임을 하고 음악을 듣다 좋아하는 곡이 나오면 하트를 클릭한 것뿐이다. 참고로 ‘추천 음악’의 영문명은 ‘For You’다. 하단 탭의 첫 번째 메뉴다.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는 이미 새로울 게 없다. 전 세계에서 인터넷 속도가 가장 빠른 한국 사람은 2000년도부터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했다. 그것도 무료로. 2005년 ‘전송권’이 포함된 저작권법 개정 이후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저렴한 가격으로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했다. 해외에서 스트리밍 서비스 붐을 일으킨 건 2009년 생겨난 스웨덴의 벤처 서비스 스포티파이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인프라 의존도가 높다. 통신 속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시장이 활성화될 수 없다. 발전하는 통신 환경과 무료 서비스를 통해 스포티파이는 영향력을 키웠다. 스포티파이에는 셔플 모드와 라디오를 무료로 제공한다. 그 이상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다면 9.99달러에 월 정액권을 구독하면 된다. 이른바 프리미엄(Freemium) 모델이다. 이렇게 스포티파이는 7,500만 명의 회원과 2,000만 명의 구독자를 모았다. 그리고 지난 6월, 애플이 ‘One More Thing…’을 외치며 새로운 뮤직 서비스를 발표했다.

스포티파이의 강력한 라이벌로 지목되던 애플 뮤직이지만 프레젠테이션은 좀 시큰둥했다. 제이지, 비욘세, 다프트 펑크, 마돈나 등 16명의 월드 스타가 자신들의 독점 콘텐츠를 제공하겠다던 타이들의 런칭 행사에 비해 힙스터 R&B 스타 드레이크의 ‘내 음악을 최초로 애플 뮤직의 코넥트에서 발표할 거야’라는 선언은 초라해 보였다. 타이들이 한 달 만에 속 빈 강정으로 밝혀졌기에 더욱 그랬다. 2년 전 애플이 발표한 아이튠즈 라디오는 2000년에 런칭해 북미 1위의 라디오 서비스가 된 판도라 라디오의 킬러가 되지 못했다. 비슷한 서비스라면 기존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익숙한 이용자가 굳이 다른 서비스로 옮겨갈 이유는 없다.

위의 문장을 반복하자면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는 이미 새로울 게 없다. 애플 뮤직은 혁신을 추구하는 대신 음악 서비스의 기본부터 다시 다졌다. 애플 뮤직의 무서운 점은 아이폰의 음악 앱을 그대로 쓴다는 점이다. 처음 아이폰을 쥘 때부터 설치되어 있는 시스템 앱이다. 아이폰 이용자는 음악을 듣기 위해 대부분 음악 앱을 쓴다. 애플 뮤직은 음악 앱에 위화감 없이 녹아 있다. 음악 앱의 라이브러리는 구입 또는 아이폰에 저장한 것과 스트리밍에서 저장한 음원을 함께 보여준다. 애플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늦게 시작한 이유 중 하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의 음원 다운로드 스토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기존의 스토어 매출을 잠식한다. 새로운 제품 라인의 개발로 기존 자사 제품 라인을 없애왔던 애플답게 애플 뮤직의 서비스 형태는 이미 스트리밍으로 넘어왔다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다면 라이브러리 메뉴에서 다운로드 받은 음원과 스트리밍되는 음원은 차이가 없다. 음질조차 AAC 256Kbps로 같다. 다운로드의 시대는 끝났고 전송의 시대가 시작됐다.

애플 뮤직은 기존의 음악 듣기와 전혀 다른 경험의 서비스다. 곡을 고르고 구입해 음악을 듣는 것과 3천만 곡이 모인 라이브러리에 언제라도 접근할 수 있는 건 이용자에게 다른 감각을 요구한다. 아이튠즈 스토어가 쇼핑이라면 애플 뮤직은 서핑이다. 이를 위해 애플 뮤직이 준비한 도구는 개인화와 음악적인 맥락으로 접근한 플레이리스트다. 방식은 다음과 같다. 업계의 에디터를 고용해 아티스트, 장르, 발매 시기, 비욘세가 컬래버레이션한 곡 등 음악 마니아의 흥미를 끌만한 플레이리스트를 만든다. 그 후 기존의 이용자 정보와 테스트 그리고 누적되는 데이터를 이용해 가장 적당한 플레이리스트를 추천한다. 이 과정이 꽤 섬세하고 수준있다. 시스타의 음악을 듣고 하트를 누르면 용감한 형제가 작곡한 곡을 모은 플레이리스트를 추천해 준다. 가정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라디오 메뉴의 대표 채널인 비츠 1 라디오는 24시간 동안 전통적인 라디오 방송처럼 디제이가 곡을 고르고 방송한다. 최첨단 음악 서비스에 끼어 있기엔 구닥다리처럼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음악을 찾기에 가장 익숙한 방법이기도 하다. 나머지 라디오는 아티스트, 장르 등 출발지에 따라 그에 속하는 음악을 추천 알고리즘에 따라 들을 수 있다. 매셔블의 표현을 벌자면 애플 뮤직의 모든 것이 큐레이션, 큐레이션, 큐레이션이다.

지금 애플 뮤직을 선택할 이유가 있을까? 스포티파이 프리미엄을 2년 넘게 구독해 써온 나는 갈아탈지 말지 갈등하고 있다. 2년 넘게 쓴 서비스를 떠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만들어 놓은 플레이리스트와 구독하는 플레이리스트 그리고 비슷한 취향을 공유하는 관계가 있다. 오래된 애인처럼 지금 나를 가장 잘 아는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는 스포티파이다. 아직 스포티파이의 데이터를 애플 뮤직으로 보내는 기능은 개발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현재 애플 뮤직의 서비스 방향은 마니아들이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 공유하기보다 자신들의 큐레이션을 따라오길 바라는 형태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갈아타려는 생각이 드는건 스포티파이의 서비스가 나날이 내가 원하는 방향과 다른쪽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스포티파이는 얼마전 서비스에서 외부의 기능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앱 기능을 없앴다. 나는 앱에서 피치포크, 블루 노트, 하입 머신 등 서비스 내에 있던 미디어, 레이블, 음악 서비스를 즐겨 이용하고 있었다. 듣는 음악에 맞춰 새로운 음악을 찾게 해주는 디스커버 메뉴도 대폭 축소했다. 내가 중학교 때 유행하던 음악이라며 쥬얼의 ‘Foolish Game’을 추천해줬을 때 같은 세심함은 사라지고 메인 메뉴에서 서브 메뉴로 밀려났다. 스포티파이는 엔드 유저가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캐주얼한 음악 앱으로 진화하고 있다. 늦은 밤 앱을 열면 자동으로 ‘밤을 위한 재즈’, ‘늦은 밤 R&B’ 같은 플레이리스트가 뜨고 달리는 속도에 따라 음악의 BPM이 바뀌는 기능을 추가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스포티파이 이용자의 약 80%는 무료이용자고 이들은 일부러 음악을 찾아 듣는 이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플랫폼 사업자와 마찬가지로 스트리밍 서비스 역시 이용자를 늘리는 게 가장 큰 과제고 스포티파이 역시 이들에게 집중하기로 한 거다. 요즘 같은 시대 적극적으로 음악을 찾아 듣는 이는 소수다.

국내에선 어떨까? 우선 아이튠즈 스토어와 마찬가지로 애플 뮤직이 국내에 출시될 가능성은 적다. 서비스 주체이기도 한 음원사와의 음원 계약도 까다롭고 훨씬 저렴한 가격의 국내 서비스와 경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스트리밍 서비스는 관계 및 인기를 반영해 자체적으로 선정한 최신 음악과 차트 위주로 설계되어 있다. 애플 뮤직에서 차트를 찾기 위해서는 새로운 음악 메뉴에서 한참 스크롤을 내려야 한다. 한국은 대부분의 개인화 서비스가 별 효과를 보이지 못하고 포털 사이트 메인에 실시간 검색어라는 게 존재하는 유일한 나라다. 여기서 애플 뮤직의 자신만을 위한 음악 큐레이션 서비스는 얼만큼의 메리트가 있을까? 음악을 찾아 듣는 이가 소수인 건 여기도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다양하고 수많은 좋은 음악이 있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손쉽게 음악을 찾아 들을 수 있는 시대다. 이는 무한한 가능성과 선택의 혼란을 동시에 의미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어떤 서비스는 지금 가장 유행하는 음악을 들으라고 하고, 어떤 서비스는 지금 상황에 가장 잘 맞는 음악을 들려줄 거라고 한다. 그리고 여기 네가 이런 음악을 좋아하는 것 같으니 이런 방식으로 다른 음악도 들어보라고 권하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애플 뮤직은 세밀한 가이드를 제시하고 이에 따라 스스로 음악이라는 새계의 지도를 그리는 서비스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3개월만이라도 한번쯤 그 경험에 몸을 맡겨 보는 건 어떨까. 당신이 호기심과 열린 마음을 가진 이라면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듣는 즐거움을 발견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느새 애플 뮤직에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악기 중 하나인 스틸 드럼이 쓰인 곡을 모아 놓은 플레이리스트가 흐르고 있다. 문득 내가 좋아할 만한 음악을 콕 찝어 추천해줬던 단골 레코드가게 점원이 떠오르는 밤이다.

  • 아레나 8월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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