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터치스크린 맥북이 나올 수도 있겠다

오힘찬(Himchan)
맥갤러리
8 min readFeb 6, 2023

--

이전 글들에서 확인할 수 있겠지만, 필자는 터치스크린 맥북에 굉장히 부정적이었다. 10년이 넘도록 맥북을 사용하면서 터치스크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순간은 없었고, 오히려 디스플레이에 얼룩이 생기는 것에 더 민감했으니 굳이 필요하지 않은 지문을 묻히려고 맥북 가격이 상승해야 한다는 의견이 좋게 보일 리 없었다. 무엇보다 맥북에 탑재된 최고의 트랙패드는 자주 사용하는 대부분 제스처를 부드럽게 실행한다. 어째서 맥북에 터치스크린이 필요한가?

이 뜬소문이 본격적으로 거론된 건 2014년부터이다. 그러나 애플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부사장 크레이그 페더리기(Craig Federigh)는 당시 해당 소문에 대해서 ‘제대로 된 인터페이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면서 ‘여러 기술을 실험하긴 했지만, 딱히 좋다고 생각한 적은 없으며, 그런 물건을 만드는 데에 관심이 없다.’라고 부정했었다. 그리고 이 의견은 지금까지 인터페이스 디자인 측면에서 이치처럼 여겨왔고, 실제로 애플은 지금까지 터치스크린 맥북을 내놓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터치스크린 맥북에 대한 새로운 소문이 나오면서 이제는 고정관념을 깨버리고 터치스크린 맥북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맥북

블룸버그에 따르면, 애플은 터치스크린을 탑재한 맥북을 2025년에 출시할 계획이다. 2년 후 전망이니 픽션과 다를 바 없지만, 터치스크린 맥북을 여러 번 부정한 애플의 번복 여부는 충분히 관심이 생길 얘기다. 하지만 애플이 터치스크린 맥북을 출시할 거라는 몇 가지 의견들이 내 생각을 바꿔놓은 것은 아니다.

가장 많이 보이는 의견이 ‘경쟁 제조사들은 오래전부터 터치스크린 랩톱을 제공해왔다.’인데, 그 어떤 주장보다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작년 4분기, 애플의 PC 판매량이 2.1% 감소할 동안 HP, 델, 레노버 등 애플 경쟁사들의 판매량은 20~37% 감소했다. 또한, 4분기 전체 맥 비즈니스 매출은 2021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서 14% 증가했다. 물론 터치스크린이 판매량에 영향을 끼친 주원인은 아니지만, 애플로서는 현재도 충분히 판매량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터치스크린이라는 모험을 할 이유가 없다.

두 번째 많이 보이는 의견은 ‘다양한 수요층을 확보하기 위해서’인데, 애플이 맥북 수요를 늘리겠다면 499달러짜리 저가 맥북을 내놓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품질 탓에 가격을 내릴 수 없다면, 과연 터치스크린이 품질과 가격을 모두 만족하게 할, 499달러짜리 맥북보다 수요층을 확대하기 위해 나은 솔루션인지 생각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아이패드 판매량 감소로 카니발리제이션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터치스크린 탑재로 맥북 판매량을 견인할 수 있게 되었다.’라는 의견을 종종 볼 수 있는데, 터치스크린이 맥북 판매량을 늘릴 요소이고, 터치스크린 맥북이 등장하여 아이패드의 파이를 빼앗을 것이라는 근거가 너무 부족하다. 맥북과 아이패드는 10년 동안 서로 다른 제품으로 발전했고, 과거에도 아이패드가 맥북을 잠식할 것이라는 믿음은 없었다. 지금 와서 아이패드 판매량이 감소하니 맥북을 더 팔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는 건 이상하다.

그럼, 무엇이 터치스크린 맥북이 나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하게 만든 걸까?

사이드카

2019년, 애플은 맥OS(macOS) 카탈리나에서 아이패드를 보조 모니터로 사용할 수 있게 지원하는 기능인 사이드카(Sidecar)를 출시했다. 그리고 2022년에는 여러 대의 맥과 아이패드를 하나의 마우스와 키보드, 트랙패드로 제어할 수 있는 기능 유니버설 컨트롤(Universal Control)을 추가했다. 이로써 맥과 아이패드를 함께 쓰는 사용자는 아이패드를 맥의 보조 모니터로 쓰거나 아이패드를 맥과 연결된 마우스로 조작하는 등 연결을 통해 상황에 맞게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사이드카와 유니버설 컨트롤에서 불균형인 인터페이스가 애플 펜슬이었다.

예를 들어, 맥북과 아이패드를 사이드카로 연결한 상태에서 맥북의 포토샵으로 작업하던 중 포토샵 윈도우를 아이패드로 옮겨서 애플 펜슬로 이미지의 외곽선을 선택하고, 다시 맥북으로 작업을 옮겼다고 해보자. 이 작업이 반복 업무라면 사용자는 애플 펜슬을 사용하기 위해 포토샵 윈도우를 계속 이동시켜야 한다. 만약 맥북에서 애플 펜슬을 사용할 수 있다면 이런 불편함은 줄어들 것이다.

예시가 굉장히 극단적일 수 있다. 애플 펜슬이 아이패드를 사용하는 이유 중 하나라면, 애플 펜슬을 맥에 허용하는 것이 아이패드 판매량에 악영향을 줄 수 있으니 말이다. 그건 위에서 말한 카니발리제이션을 우려한 마지막 의견에도 부합할 수 있는 얘기이다. 하지만 맥북에서 애플 펜슬을 사용할 수 없다는 예시의 핵심은 더는 사용자가 맥북을 사용할 때 키보드에만 손을 올려놓고 있지 않다는 것에 있다.

애플은 ‘맥북을 사용할 때 사용자의 손은 항상 키보드 위에 있기 때문에 터치스크린이 필요하지 않다.’라는 주장을 고수했다. 페더리기는 ‘인체공학적으로 볼 때 손을 표면에 둔 상태에서 맥을 사용하는 것이 편리하며, 팔을 들어 화면을 만지는 방식은 피로할 뿐이다.’라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사용자가 팔을 든 상태로 맥북을 사용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면 해당 주장을 뒤집을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리고 그런 상황이 사이드카와 유니버설 컨트롤, 애플 펜슬로 인해서 벌어지고 있다.

스케치 추가

일부 작업에 국한하지만, 사이드카 또는 유니버설 컨트롤을 연결한 상태에서 애플 펜슬로 아이패드에서 작업하면 한 손만 키보드 위에 있게 된다. 그러므로 타이핑하는 것 외 조작은 남은 손으로 해결하거나 애플 펜슬을 손에서 놓고, 조작한 후 다시 애플 펜슬을 쥐어야 하는데 상당히 번거로운 행위일 수 있다. 간단한 탭이나 드래그, 그러니까 마우스나 트랙패드의 일부 조작을 애플 펜슬로 해결할 수 있는데, 애플 펜슬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다.

이는 맥북에서 애플 펜슬을 쓰게 하려고 터치스크린을 탑재한다는 얘기처럼 들릴 수 있다. 중요한 건 애플이 강조하고 있는 ‘연속성’이다. 연속성은 수년 동안 애플의 업데이트에서 가장 집중하고 있는 영역이다. 사이드카나 유니버설 컨트롤도 연속성 업데이트의 하나였고, 아이폰을 맥의 웹캠으로 사용하는 기능은 이름부터 ‘연속성 카메라’이다. 그리고 연결된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서 그릴 수 있는 스케치 추가 기능으로 맥에 간단한 메모를 남길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연속성을 방해하는 것이 맥북의 터치스크린 미지원이라는 거다.

스케치 추가 기능은 터치스크린을 지원하지 않는 맥을 보조하기 위해서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부가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인터페이스 측면에서는 맥북 화면을 터치하는 쪽이 더 직관적이다. 더군다나 이 연속성 때문에 각 기기의 역할이 작업자의 스타일에 따라 바뀌면서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역할이 고정된 장치로 쓰이는 일이 줄어들었다. 예컨대, 아이폰을 맥북 웹캠으로 사용하고, 사이드카로 애프터이펙트를 아이패드에 옮긴 후 애플 펜슬로 편집하면서 화상회의를 진행하는 중에 당장 서명해야 할 문서를 수신했다고 하자. 아이패드의 화면을 공유 중이라면 서명할 문서를 아이패드로 옮길 경우 회의에 공개될 테니 옮길 수 없고, 아이폰은 웹캠으로 쓰는 중이라 회의를 잠깐 중단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화면을 공유하지 않고, 문서를 아이패드로 옮겨서 서명 후 다시 맥으로 옮겨서 전달한 후 다시 화면을 공유해야 한다. 그저 맥북이 터치스크린과 애플 펜슬을 지원하면 어떤 것도 중단하지 않을 일이었다.

연속성

여전히 이 예시도 극단적이며, 사실 일상적으로 마주할 확률이 매우 낮다. 서명 저장 기능도 제공하기 때문에 매번 그릴 이유도 없고, 우리는 여태 연속성 기능 없이도 잘 살아왔다. 다만, 연속성이 각 기기를 연결해서 하나의 기기처럼 사용하게 하므로 사용 양상에 따라서 특정 부분이 방해되면 연결을 해제하거나 무언가 중단해서 분리된 기기를 사용하는 것처럼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연속성이 깨진다.

그러므로 이 연속성이 앞으로 애플에 있어서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에 중심 역할이라면, 연속성 기능을 더 추가할 계획이라면 터치 인터페이스의 연속성 방해를 해결하기 위해 맥북에 터치스크린을 탑재할 수도 있겠다는 작은 설득력이 생겼다.

매우 작은 설득력이다. 그러나 연속성이 정답이라면 터치스크린 맥북이 아이패드를 잠식할 일도, 줄어든 아이패드 판매량을 걱정할 일도 없다. 아이패드가 안 팔려도 애플 펜슬은 팔릴 수 있고, 애플 펜슬 사용을 더 확장하기 위해 아이패드를 구매할 수도 있으며, 사이드카와 유니버설 컨트롤은 더 강화할 테니 말이다. 애플이 로드맵에서 연속성의 비중을 얼마나 둘지가 중요해졌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