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이용한 예술작품의 윤리

당신이 읽는 것이 당신이다.

지난 2007년 기예르모 베르가스(Guillermo Vargas)가 했던 행위작업은 당시 커다란 논란(개와 예술에 대한 논쟁)을 일으켰다. ‘굶어죽은 개’를 전시했다는 기사가 사진과 함께 인터넷, sns 상으로 수많은 댓글을 달며 일파만파로 퍼져갔다. 퍼트려진 기사들은 조금씩 표현들이 달랐다. 각 글들은 어떤 사실도 확인시켜 주지 못한 채 확산되어갔다. 또한 2008년 온두라스에서 개최되는 비엔날레에 베르가스의 참가를 반대하는 서명운동도 함께 벌어졌다. 서명자 수는 4 백만명에 이르렀고 베르가스 자신도 서명했다고 밝혔다.

웹 상으로 퍼져나갔던 기사의 표현들은 이렇다.

1.전시회를 위해 개를 일부러 굶겨 죽였다는 예술가
2. 남미의 한 예술가가 전시장 한구석에 개를 묶어 놓고 죽을 때까지 물과 먹이를 주지 않았다. 다음날 전시장의 개는 죽었고 예술가는 이를 ‘굶어 죽은 개’로 명명하여 예술적 의미를 부여했다.
3. …병든 유기견을 데려다가 전시장 한 구석에 묶어놓고 죽을 때까지 물과 먹이를 주지 않은 채 닿을 수 없는 곳에다가 사료로 메시지를 적어놓은 작품을 전시했다.
기예르모 베르가스(Guillermo Vargas), Exposición N1, 2007

위의 내용들을 읽어보면 작가의 작품 의도에 대해서 거의 알려주는 점이 없다. 작품 설명도 개를 굶주리게 했다는 것이 전부인 양 보인다.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기사는 사실인지 알 수 없는 가운데 글을 읽는 사람들은 작가를 잔인한 사람이라고 비난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전시에 대한 이같은 기사가 맨 처음 만들어진 곳은 2007. 10.04일자 니카라구아의 <라 나치온>신문이다. 여기서 개가 굶어 죽었다고 보도하였다. 이 신문사는 보도의 근거로서 일간지<라 프렌자>편집자의 증언을 내세웠으나 <라 프렌자>는 다음 날 (2007.10.05일) 갤러리 관장의 해명을 실었다. 관장의 설명은 이렇다.

1. 개에게는 정기적으로 먹이가 주어졌다.
2. 개는 전시기간동안 하루에 3시간만 묶여 있었다. (어느 기고가(David Yanez)의 글에는 일주일에 9시간 묶여 있었다고 되어있다.)
3. 개는 전시가 끝난 다음 날 밤에 거리로 사라졌다.

그렇다면 베르가스의 작업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베르가스는 말한다.

1. 이 전시와 그리고 전시와 관련되어 일어난 논쟁은 사람들이 가진 위선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사람들은 실제로 거리의 굶어죽어 가는 개한테는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는다.
2. 작업을 만드는 계기가 된 사건이 있었다. 나티비다드 칸다 메이레나(Natividad Canda Mairena)라는 니카라구아인 부랑자가 로트 바일러라는 대형견(犬)에게 죽임을 당했던 일이다. 사고가 일어났던 현장에는 언론사가 촬영을 하고 있었고 옆에는 경찰, 소방구조원, 안전요원들도 있었다.

사람들은 거리에서 고통받고 신음하는 인간을 보고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마치 거리의 개한테 무관심하듯이. 그런데 병든 유기견이 전시장 안에 놓여지자, 사람들은 일시에 개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많은 동정심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신문 기사에 자극받은 점도 크다. 매체를 통해 확산된, 전시를 비난하는 악성 글들에 편승해서 작가가 성토되었다. 하지만 그 한 줄 기사가 오보라면 사람들이 역으로 우롱당한 것과 같다.

한 줄이나 한 문단으로 된 짧은기사글로 진실을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 떠도는 다른 글들과 함께 비교하며 확인하는 것도 여의치 않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의문하고 검증하려는 노력대신 다른 사람들의 사진과 글에 의지해 판단하게 된다.

“당신이 읽는 것이 당신이다(Eres lo que lees)(You Are What You Read)”, 개 사료, Exposición N1, 2007

갤러리 관장의 말대로라면 전시는 실제로 개를 굶기지 않았다. 베르가스는 개를 굶주리게 한 작품으로 오해하도록 의도했던 것같다. 작품에 대한 오해가 가십거리로서 인터넷으로 순식간 확산될 거라는 예상도 했던 것 같다. 베르가스는 인터넷에서 벌어진 서명운동이 자신이 만든 작품이라고 말하고 사인했다. 일련의 모든 상황들은 작업에 포함되며 David Yanez에 따르면 베르가스의 ‘인터넷 예술 프로젝트’의 하나로 추정된다.

말이 없는 자연

비크 반더 폴, ‘Speechless’ (2015),설치, 페레즈 ́미술관, 마이애미

비크와 반더폴(Bik Van der Pol)( Liesbeth Bik and Jos van der Pol) 두 사람의 ‘Speechless’(2015)에는 앵무새들이 등장한다. 이 작업은 ‘지구온난화’와 ‘기후변동’을 주제로 한다. 두 단어는 플로리다 주 정부에 의해서 사용이 금지될 뻔 하기도 했었다. 작품의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정치적 이해관계때문에 특정 단어를 거론하지 못하는 주(州)의 현실(speechless)을 암시하기도 하고, 피폐해진 환경을 이해하지도 의논하지도 못하는, 능력없는 인간 스스로 ‘할말이 없음(speechless)’을 뜻하는 것 같기도 하다.

비크 반더 폴, ‘Speechless’ (2015),설치, 페레즈 ́미술관, 마이애미

작가들은 앵무새에게 T.S.앨리어트의 <황무지(1922)>를 읊도록 가르쳤다. 언어는 인간과 자연을 구분짓는다. 동물세계과 구분되는 인간의 문명을 이루게 해준 것이 인간의 언어일 것이다. 그런데 그 언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자연재해로 위협받는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게 하고 있다. 작가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새가 흉내내는 인간의 안어를 거꾸로 들으면서 동물과 인간의 구분이 아니라 다시 결합되는 것을 의도했다고 한다.

아프리칸 그레이(앵무새), 비크 반더 폴, ‘Speechless’ (2015),설치, 페레즈 ́미술관, 마이애미

한편, 앵무새들은 7개월 동안 전시장 안에 놓여졌다. 나무와 그물, 글자 모형, 톱밥이 있는 넓고 쾌적해 보이는 커다란 새장에 있었고 수의사가 상주하여 건강상태가 관리되었다. 하지만 앵무새를 기른 적이 있으며 새에 대해 잘 아는 한 기고가(Scout MacEachron)는 앵무새를 새장에 넣어 사람들에게 전시시킨다는 사실 자체에 비판적이다. 그것은 4살 정도의 지능을 가진 생명체를 가두어 놓고 관람시키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앵무새는 4살 아이의 지능을 가진 인간 다음으로 영리한 동물이다.)

비크 반더 폴, ‘Speechless’ (2015),설치, 페레즈 미술관, 마이애미

두 작업에 모두 동물이 사용되었다. 기예르모 베르가스(Guillermo Vargas)의 Exposición N1(2007)에서 개는 사람들의 동정심(관심)과 관계된 이중성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그는 한 사건을 통해서 언론이 상업성에 치우쳐 한 인간의 생명에 대한 존중감마저 외면한 것을 보았고 그것을 계기로 작업을 만들었다.

비크반더폴(Bik Van der Pol)의 ‘Speechless’(2015)에서 앵무새는 자연환경이 침해되는 문제를 부각시킨다. 그것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매여 있는 인간의 오만함과 이기심에 의해서 비롯되고 있다. 두 작업의 동물의 등장은 모두 인간 스스로를 성찰하게끔 한다.

작업에 동물을 이용하는 것은 예술에 대한 여러 윤리적인 물음을 일으킨다. 예술작품이 대상으로 삼을 수 있고 없는 것은무엇이고, 어떤 조건들을 생각해야 할까? 동물을 사용해야만 할까 등등. 위의 작업들은 서로 위기에 처한 인간과 동물, 자연을 보여준다.

작성자: Artphilpost 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