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의 말들』 은유 — 글을 쓰게 만드는 책
북클럽 회원이자 좋은 친구인 지인과 만나 맛있는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러 갔었다. 그때 그 지인이 같은 북클럽 회원에게서 선물로 받았다면서 보여준 책이 이 책이었다. 가볍고 부담 없는 크기 그리고 차르륵 넘기면 그 짧은 시간에책도 눈에 쏙쏙 들어와 박히는, 시원한 여백 속에 초연하게 자리잡은 ‘문장들’… 작가가 고르고 골랐을, 분명히 자기만의 독서의 시간 안에서 자신과의 맥락 속에서 의미있게 다시 테어난 문장들임이 분명한… 누군가의 취향의 집합체.
읽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우린 대화 중이었고 책은 내 책이 아니라 언젠가는 읽으리라는 기약 아닌 다짐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고 가끔 생각했다. ‘그 책에 뭔가 멋진 문장이 많았는데 궁금해. 그 문장들을 잘 풀어놓은 것 같던데… 궁금해.’ 라며… 좀 우습지만 난 자음과 모음을 선택적으로 배열한 디자인의 이 책표지를 하나의 그림처럼 인식했고 『쓰기의 말들』이라는 문자로 인식을 안 했다. 그래서 바로 구입을 못하고 있었다. 제목이 기억이 안나서…
그러다가 이 책을 전자책으로 다시 읽게 됐다. 숫자가 붙은 각 장에는 작가가 만난 책속의 문장들이 읽고 그 뒤에는 짧은 글들이 따라온다. 아주 쉽다. 오묘하거나 야릇하지 않다. 간결하고 담백하다. 그리고 편한 글이다. 읽는 내내 생각한 건… ‘나도 써볼 수 있겠는걸?’ 이었다. 이런 생각을 한 것이 작가에 대한 모욕이 되지 않기를… 난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야말로 이 책이 정말 잘 쓰여진 증거라고 생각한다. 제목이 『쓰기의 말들』아닌가. 이 책은 읽을 수록 독자를 쓰고싶게 만든다. 그리고 쓸만하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글쓰기의 비법이 적혀있지는 않다.
난 국어국문학 전공자고 오랫동안 국어를 가르쳤고 독서와 글쓰기를 지도해 왔지만 아직 나만의 책을 출판해보진 않았다. 글을 안 써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저작물을 가진 적은 아직 없다. 아직이라고 하는 이유는 개인이 저작물을 갖는 것의 가치에 대해서 점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글을 읽는 방법을 가르칠 수록 사람들은 글을 쓰는 방법을 함께 배웠고 읽는 눈이 예리해 질 수록 자신의 문장을 벼려내는 능력이 출중해 지는 것을 봐왔다.
내가 지도하는 북클럽의 회원들은 점점 자기만의 문체 자기만의 문장을 찾아내고 있고 상당히 글을 잘 쓴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사람들은 너무나 부끄러워한다. 아무에게도 그 글을 보여주려 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대해 항상 의식한다. 난 언제나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나조차 나만의 저작물을 완성한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우리의 문장을 공유해야 하고 그 공유의 범위를 넓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설득의 언어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리고 이 책에서 그에 대한 생각을 나눌 수 있었다. 참 반가웠고 고마웠다. 책의 내용을 소개하고 싶다.
공적 글쓰기에 대해서 부담을 갖는 것은 ‘타인이라는 지옥’을 배제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문장을 읽고서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렇다면 타인이라는 지옥을 인식하고서 멈칫거렸던 우리 예비 저작자들은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을 갖고 있는가. 책임 없이 글을 쓰고 책임 없이 문장을 꾸미는 사람들의 교만에 비하면 비록 한 줄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내놓을 수 없다는 그 조심스러움은 오히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문제의 한 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독서였다. 그리고 연구 목적의 글읽기가 늘 생활에 박혀 있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좀 쉴 수 있었다.
작가가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또는 스스로 글쓰는 일을 하면서 느끼고 생각한 일들이 곳곳에 소개돼 있다. 그리고 어마어마하지 않다. 소소하고 무난하다. 그러다가 엇! 하고 멈추게 하는 문장들이 튀어나온다. 우리 평범한 독자들, 우리 평범한 생활인들은 이런 책을 읽고 용기를 내고 배우면서 자기만의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징검다리가 되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작가가 독서하며 건저올려 소개한 문장들이 정말 좋다. 이것만으로도 책값이 아깝지 않다. 글에 대한 한 사람의 취향을 볼 수 있다니. 그것도 쓰기에 대한 것들을… 감사한 내용 아닌가?
자음과 모음이 엇갈려가며 배치된 표지의 디자인을 다시 본다. 그렇다. 글쓰기라는 것이 이런 과정이다. 불쑥 아무거나 아무 지점에서 막 떠오르고 그 가닥의 앞뒤가 뭔지 잘 모르겠고 순차적이지 않다. 그러다 어느날 만난다. 삶의 연속성 안에서 단어는 문장을 만나고 문장은 문단을 만나고 어느 순간은 문단이 단어를 찾아낸다. 그렇게 글이 완성되겠지… 이 책은 그 길을 가는 문을 열어줄 수 있다. 용기를 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책도 쓰게 만들어 주진 않는다. 쓰는 방법에 대한 주문도 들어있지 않다. 아주 정직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