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리움』 — 사랑은 왜 필요한가

서지산

『이데리움』

원고를 다시 한번 검수하면서 오류를 바로잡았고, 보다 쉽게 읽힐 수 있도록 정리하면서 군데군데 내용을 보강했다. ‘사랑이 하찮게 느껴질 때’ 읽기 좋은 글임에는 변함이 없다. 인간의 본성과 인간의 한계와 인간의 의미를 소설 형식으로 사유하고 싶었고 남녀 간의 사랑을 그 안에 녹여 내고 싶었다.

‘사랑이 하찮게 느껴질 때 읽기 좋은 글.’ 저자가 프롤로그에 남긴 말이다. 이 구절에 끌렸다. 지금 내 상태가 딱 그러하기 때문이다. 나는 20대다. 세상은 20대에게 많은 이성을 만나보라 한다. 그게 좋단다. 그래서일까. 나의 연애사는 부침의 연속이었다. 도무지 길게 가질 않았다. 내가 잘못했을 때도, 상대가 잘못했을 때도 있었다. 과연 내가 진실한 연애를 할 수 있을지에 의문이 들 정도다. 갑작스런 잡념이었다. 숨을 골랐다. 페이지를 다시 넘겼다.

프롤로그가 끝났다. 소설이 시작됐다. 당황스러웠다. 내용이 예상과 달랐다. 저자는 서두에서 ‘사랑’을 운운했다. 그런데 평범한 로맨스가 아니었다. 삼각관계는 잘 보이지 않았다. 대신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부부가 등장했다. 야망으로 가득한 80대 재벌 총수가 나타났다. 은밀한 작업 공간, ‘이데리움’이 튀어나왔다. 광인과 천재 사이를 오가는 과학자가 보였다. 인간을 넘어선 듯 보이는 인공지능 로봇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딸의 실패에 대한 장인의 아름다운 독려는 그러나 영진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지는 않았다. 장인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했다. 가장은 안정적인 수입을 오랫동안 창출하는 것이 최고라고, 가장이 자기 역할을 수행해야 가정이 화목하고 자녀들이 걱정 없이 자기 꿈을 향해 갈 수 있다고.

다른 건 그렇다 치자. 그래도 인공지능은 무슨 의도인가. 문득 프롤로그의 또 다른 구절이 떠올랐다. ‘남녀의 사랑을 통해 인간의 본성, 인간의 한계, 인간의 의미를 담아보겠다.’ 그렇다. 저자는 사랑타령에 머무르려 했던 게 아니었다. 대신 ‘인간의 의미’를 생각해보기 위해 ‘사랑’을 소재로 삼았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인공지능 로봇까지 튀어나온 게 아닐까 싶었다.

인공지능 로봇, 흔히 AI라고 불린다. AI란 무엇인가. 이는 인간의 편의와 효율성에 대한 욕망의 산물이다. 각종 기계를 발명하고 부려온 인류다. 그 과정에서 인류는 편리하고 빠르게 부를 축적했다. 이제는 알아서 생각하는 기계를 욕망하기에 이렀다. 그 결과 체스 챔피언과 바둑고수가 기계 앞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게 다가 아니다. 최근 국내 모 증권사는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자동화된 프로그램으로 고객 자산관리를 해주겠단 의미다.

AI가 득일지, 실일지에 대한 논의는 접어두자. 대신 AI가 사랑과 무슨 관계인지 생각해보자. AI가 무슨 기술을 가졌든 그 바탕엔 인간의 욕망이 담겨있다. 우리의 욕망은 무한하다. 그런데 수명은 유한하다. 그래서일까. 이전 세대의 깨달음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않을 때가 많다. 과거의 실수를 답습하기 일쑤다. 그 와중 역사는 파괴의 연속이 되어버렸다. 개개인의 마음은 황폐해지기 십상이었다.

미미는 젊고 아름다웠다. 명석한 두뇌로 영진이 지시한 업무를 항상 기대 이상으로 수행해 주었고, 끼니 때마다 맛있는 식사를 차려 주었다. 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 몸은 뜨거웠고 에너지로 가득했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이 파괴적이지만 한 건 아니다. 생산적인 욕망도 있다.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욕망을 충족하지 못하는 개인에게 의지할 상대를 던져준다. 죽음 앞에서 허망해질 때면 자손이란 위안거리를 남겨준다. 그렇기에 사랑을 찾지 못한 개인은 쓸쓸함을 느낀다. 세속적인 성공도 그 공허함은 채워주지 못 한다. 수많은 색을 탐했던 연산군도 자신을 늘 쓸쓸하다 여기지 않았는가.

‘사랑하는 사람만이 죽음 앞에서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것.’ 바로 이 점이 저자가 사랑, 인간의 의미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AI를 집어넣은 이유가 아니었을까. AI는 인간을 쓸쓸하게 하는 무한한 욕망을 상징하니 말이다. 또한 우리 모두는 바로 이 때문에 사랑을 해대는 게 아닐까란 생각도 해본다. 그렇지 않고서야 매번 상처를 받고도 용서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상대를 찾아 나설 이유가 없지 않은가.

다소 파격적인 소재로 인간의 욕망, 사랑, 삶을 짚어본 소설, 『이데리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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