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리움』 — 역사는 진보하는가?

황현희

『이데리움』

모든 것이 충족되어 있는 공간. 이데리움이라는 완벽한 공간 안에서 느끼는 행복은 당연해 보였다.

영진은 회장의 영상이 사라진 터치스크린 모니터 바탕화면의 아이콘들에 시선을 주었다. 식사, 간식, 회사 자료, 그룹 자료, 음악, 영화, 운동, 수면 따위의 이름을 가진 아이콘들이 행과 열을 맞춰 늘어서 있었다. 그 중에서 영진의 눈을 고정시킨 것은 ‘미미’라는 이름이 붙여진 여자 얼굴의 아이콘이었다.

신은 인간을 불완전한 존재로 만들었다. 그런데 그건 누구의 기준일까? 인간은 자신들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며 보다 완벽하기 위해 발전을 거듭해 나가는 듯 보이지만 결국 욕심에 눈이 멀어 예전으로 회기하곤 했다. 그것은 파괴.

신의 지위에 올라 바라보는 인간은 하찮은 존재였다. 인간은 수명의 한계만큼 태생적으로 보잘것없는 존재였다. 인간의 역사는 파괴의 역사였다. 인간은 모든 것을 파괴했다.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진보의 과정이라고 얘기했지만 인간이 말하는 진보의 궁극은 결국 미미였다.

불완전함 속에서도 인간에게 아름다움을 느끼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신은 왜 인간을 불완전해 보이는 존재로 만들었을까?

그녀는 이미 오래 전에 흔적 없이 사라진 뒤일 것이었다. 그녀와 함께라면 K는 기꺼이 영원히 잠드는 길을 택했을 것이었다. 사랑하는 인간의 삶만이 죽음 앞에서 안식을 맞을 수 있음을 신이 된 K는 깨닫고 있었다. K는 사랑에 빠진 인간들의 모습을 지켜볼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여전히 지독한 괴로움에 빠지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순간마다 인간으로서의 자신이 창조한 신으로서의 자신의 한계에 대한 자괴감을 이겨낼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스어 idein 에서 어원이 된 이데아는 보다, 알다라는 뜻이 있다. 물질적인 세상에서 형이상학적 즉 정신적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하는 세대. 그리고 그 가치의 중요성을 알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대라 책에서는 이야기하는 것 같다.

모든 것이 충족되었을 때 행복은 찾아오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충족하기 위해 살아야 하는가?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지금 당장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여러 가지 질문이 꼬리를 물지만 욕심 때문인지 답을 찾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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