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칵』 — 사진, 시를 쓰다

오종호

『찰칵』

미국 시인 월리스 스티븐스(Wallace Stevens, 1879 ~ 1955)는 “시인은 남자가 여자를 응시하듯 세상을 바라본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세상 모든 것이 깨어나 사람처럼 걸어 오는 말을 무표정한 얼굴로 외면하기란,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자들에게 쉽지 않은 일일 터이다.

시라니, 밥을 먹기 위해 전쟁터에서 날마다 목숨 걸고 버티는 사람들이 들으면 신세 좋은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시가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혹자들은 생활보조금 대상자임을 고백한 최영미 시인의 사례를 시의 부질없음의 증거로 들이밀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옳다. 시로 벌어 먹는 일, 애초에 가능한 것이 아니다. 함민복 시인이 시 <긍정적인 밥>에서 “시 한 편에 삼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라고 읊었지만 시인의 탁월한 긍정성이 아니고서는 시는 기껏해야 편당 삼만원의 교환가치를 지닌 철 지난 상품에 불과하다. 윌리스 스티븐스도 그 점을 잘 알았는지 그는 하버드와 뉴욕 양 대학교를 졸업한 후 변호사가 되고 보험회사에 입사하여 부사장 자리까지 오르는 동안 시를 썼다. 비즈니스와 시를 양립시킨 특별한 시인이라고 위키피디아는 소개하고 있다.

세상이 바뀌어 하상욱이나 이환천, 최대호 등이 쓰는 소위 빵빵 터지는 부류의 시는 돈이 된다는 것이 증명됐다. 이 시대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의 세부 장르가 무엇인지도 함께 드러났다. 곤고한 삶에 작은 위로가 되는 위트를 사람들은 좋아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구나 돈이 되는 재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며 죽어라 개발한다고 그 재능이 갑자기 피어나는 것도 아니다. 언제까지 그 가벼운 시 아닌 시들이 인기를 유지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시는, 시의 압축적인 그 독창성은 돈을 좇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에서 뽑아내지 않으면 견뎌낼 수 없어서 끼적이는 생각에서 시작된다. 황민주의 그 참을 수 없는 생각들을, 글보다 카메라가 먼저 훔쳤다.

인문학자 강신주는 시를 “자기니까 쓸 수 있는 글”이라고 했다. 그런 점에서 황민주의 『찰칵』은 그만의 시다. 그의 사진은 오랜 직장 생활 중에도 자신만의 감수성과 일상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을 때 우리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이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 보여 준다. 스마트폰이 낚아챈 일상의 비범한 풍경들은 그의 시를 통해 꿈틀거리며 살아난다. 그의 글에는 삶을 사랑하는 사람의, 글을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사람의 담백한 서정이 담겨 있다. 그의 책은 월리스 스티븐스가 시를 쓰기 위해 직장인으로서 경제활동을 했을 것임을 짐작케 한다. 저자 소개에서 직장인 황민주는 내면에서 팔딱거리는 감성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드러낸다.

일상이 늘 여행이기를 꿈꾸는 이상주의자
혼자 사진 찍고 쓰면서 자뻑을 즐길 줄 아는 나르시스트
폼 나는 DSLR보다는 손 안의 스마트폰으로 일상을 담는 일이 소일거리인 놈
어린 시절 밤하늘의 은하수를 잊지 못해 서울 하늘의 별을 그리워하는 놈

그가 빚어낸 언어의 조각들에는 일상을 더듬는 따뜻한 시선이 배어 있다.

돌담 사이에 핀 부케

서풍의 신 제피로스
꽃씨 하나 들고 와 담장 밑에 놓았네
꽃의 여신 클로리스
사랑으로 예쁜 꽃 피웠네

세상 밖에서 부유하는 관념이 아니라 안에서 몸으로 부대끼는 사람이 담겨 있다.

노을 지다, 빌딩 사이로

소음으로 가득한 도시
사람들의 이야기로
저녁이 채색되어 갑니다.

‘내’가 등장하지 않는 주변의 풍경을 카메라 안에 담아야 할 이유는 딱히 없다. 어떻게든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안달하는, 유명세가 곧 돈과 힘이 되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선 구석들을 향하여 눈길을 던지는 것은 덧없는 짓일지도 모른다. 그 풍경의 덧없음에 글을 얹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더더욱 부질없는 짓거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찰칵』을 읽은 후 당신 앞의 스마트폰은 전혀 다른 생명체로 당신에게 다가오게 될 것이다. 세상의 풍경들이 변화무쌍한 표정으로 당신 앞에서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할 것이다. 당신은 당신도 모르게 당신의 몸을 스쳐가는 생각 부스러기들을 담기 위해 스마트폰을 겨눌 것이다. 어느 날 그 사진들에 뿌려진 생각 가루에 마음을 버무려 글을 주무르고 있는 당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당신의 일상은 드디어 무기력에서 깨어나 어디서든 초롱초롱 반짝거리게 될 것이다, 찰칵, 찰칵, 찰칵. 부질없어 보였던 그 소리가 당신의 시를 가슴 밖으로 끄집어낼 것이다. 당신은 알게 되어 행복할 것이다, 당신의 삶이 『찰칵』 이전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축하한다, 시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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