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지캠페인]15억 아래 묻힌 세월호의 기록

우주당
wouldyoupar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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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min readApr 28, 2017

친구들과 모인 술자리에서 서로 자조하며 술잔을 넘기다가, 자조의 끝판왕 대출 이야기가 등장했다. 학자금 대출, 전세자금 대출, 신혼부부 대출.. 대출의 종류도 다양했다. 대출이 가장 많았던 친구는 2억을 20년 동안 갚아야 한다고 했다. 월 백만원씩 원리금 상환으로 꼬박 이십 년이었다. 1억을 갚는데에 10년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자를 빼고 원금만으로 15억을 모은다면? 자그마치 130년이다.

15억. 이 어마무지한 숫자는 세월호의 기록을 보기 위해 국민이 정부에 납부해야 하는 돈이다. 세월호 특조위의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 국가기록원이 130년 무이자 할부를 허락해준다는 가정 하에, 대대손손 월 백만원을 내면 아마 내 증손주 쯤에서는 세월호 기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욕도 대대손손 먹겠지만.

세월호 기록을 공개하기 위한 돈 : 15억

세월호 특조위는 세월호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해 만들어진 특별조사위원회로 2015년 1월 설립되었다가 2016년 9월 해체되었다. 연장 신청을 했지만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의 반대로 연장되지 않았다. 특조위가 해체되는 중에도 논란은 끊이지 않았지만, 해체되고나서도 문제였다. 그동안 활동하며 수집했던 특조위의 자료들이 국가기록원에 그야말로 ‘묶여버린’ 것이다.

특조위의 자료를 조회하기 위해서는 국가기록원에 국민들이 직접 자료를 요청해야하고, 요청하더라도 보여줄지말지는 국가기록원이 결정하여 통보한다. 결국 지금까지 특조위가 조사한 내용들을 국민은 열람할 수 없고, 할 수 있다하더라도 일부만 ‘유료로’ 가능하다. 데이터 1MB당 100원으로 과금되는데 세월호 특조위의 자료들은 30테라가 넘어 특조위 전체 자료를 다운받기 위해서는 30억이 필요하다. 공익 목적이면 감사하게도 50%나 할인되어 15억만 납부하면 된다.

국가기록원의 기록을 보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사용료(해리포터의 어마어마한 유산같은)를 내야 하는 시민들

국가기록원에 발이 묶인 세월호의 기록들, 무엇을 위한 기록 보존인가?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정부에서 선심쓰듯 알려줘서가 아니라, 세월호 아카이브(http://sewolarchive.org) 작업을 하며 자료를 찾아 직접 문을 두드렸기 때문이다. 각종 사건들이 발생했을 때 정부가 직접 자료를 수집하고 공개하는 타국의 사례와 달리 우리나라 정부는 전국민이 충격과 비탄에 빠졌던 세월호 사건에서도 자료를 아카이브하지 않아 국민들이 직접 나선 것이다. ‘우주당’은 민주주의 스타트업 ‘빠띠’, 언론사 ‘한겨레’, ‘정보공개센터’와 함께 뜻을 모아 세월호의 데이터들을 날것 그대로 모으기 시작했다. 단원고 학생들이 해경에 신고했던 음성 기록, 해경이 청와대에 보고한 내용들, 해경상황실의 전화 기록 등이 모였다. 하지만 정작 특조위에서 조사활동을 하며 수집한 내용과 보고서들은 국가기록원에 발이 묶여 여기 수록되지 못했다.

국가기록원이 모든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국가기밀이나 유출되어서는 안될 개인정보가 포함된 경우에 자료를 공개하면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자료들을 제하더라도 국가기록원에 묶여있는 자료들은 대개 몇십년이 지난 후에나 공개된다. 아직 진행중인 사안을 공개할 경우 업무에 지장을 줄 수도 있고, 자료의 공개/비공개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특조위의 자료들은 이미 특조위에서 공개/비공개 여부를 분류해두었기 때문에 후자에 포함되지 않고, 전자의 경우라고 해도 이유가 모호하다.

비용 아래 파묻힌 세월호를 다시, 인양해야 한다

음모론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보를 공개하고 공론장에서 토론하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페이크 뉴스’ 또는 ‘카더라 뉴스’가 횡행하는 것도, 공개해도 될 내용들을 계속해서 뒤로 감추기 때문에 벌어진다. 특히 세월호 사건처럼 국민적 관심이 지대한 사안일수록 정보는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공론장이 성립할 수 있도록 ‘날것의 데이터’를 공평하게 제공하고 사건의 과정을 투명하게 알리는 것, 바로 아카이브의 존재 이유다.

국가기록원은 선심쓰듯 반값 할인 쿠폰을 쥐어줄게 아니라, 세월호의 기록을 국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3년 동안 잠자던 세월호가 드디어 인양되어 올라왔는데 세월호를 조사했던 그간의 자료들은 정작 다시 깊은 바닷속에 묻혀버린 형국이다. 15억이라는 어마어마한 비용 아래 파묻혀 있는 세월호를, 우리는 다시 인양해야 한다.

by 갱(우주인, 페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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