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멋진 일을 만나다 ⑦ ] 숲속과자점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제과점 앞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사람들의 손에 들린 알록달록한 크리스마스 케이크 대부분은 P 혹은 T사 등 유명 프랜차이즈 상표가 붙어있다. 몇 년 전, ‘썩지 않는 빵의 진실’이라든가, 여름부터 만들어 냉동한 프렌차이즈 크리스마스 케이크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미 한바탕 이슈가 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우리의 빵 시장은 대기업과 유명 프랜차이즈가 독점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왜 우리가 그런 걸 소중한 사람과 먹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죠.”
소규모 비건베이킹 프로젝트 ‘숲속과자점’ 기획자 숲이아의 말이다. 이건 비단 크리스마스 케이크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거대한 산업 유통구조에 지배당한 우리의 입맛과 식생활은 어느새 선택권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어쩌면 이것은 채식, 비육식의 이야기이기 전에 우리의 식생활, 먹거리를 선택할 권리에 대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01. 세상에 메시지를 전하는 어떤 방식
먼저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숲이아) 저는 ‘숲속과자점’이란 이름으로 비건 베이킹을 하고 있는 숲이아라고 합니다. 스스로 비육식을 지향하고 있고, 페미니즘, 젠더와 비폭력 등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쟁없는세상’이라는 단체에서 비폭력팀 멤버와 비폭력 트레이너로 활동하기도 했구요.
채식을 하게 된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숲이아) 많은 분들이 동물권 관련해서 채식을 시작하시는데, 제가 채식을 시작한 계기는 조금 특이해요. 렌드그랩(land grab)이라는 말 혹시 들어보셨어요?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의 해외 대규모 경작지를 선진국의 정부나 대기업들이 장기 무상 임대를 하거나 매입해서 자국으로 들여오기 위한 곡물, 사료 작물을 경작하는 건데, 일종의 농지 수탈이죠. 우리나라도 2009년경부터 그 사업을 벌이기 시작했죠. 해외농업개발이란 이름으로 정부에서 지원도 하고, 해외농업개발 센터도 만들면서. 어느 날 그 문제에 대한 기사를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계속 관련 자료 찾아보다 보니 그 문제는 여러 가지 이슈가 얽혀 있더라구요. 대규모 육식 문화 때문에 벌어진 사업이었기 때문에 생태, 환경 이슈이기도 했고, 그 나라의 사람들이 먹어야 할 식량을 키워야 할 땅을 빼앗은 것과 다름 없어서, 식량 주권이라든지 식량 자급의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으니 비폭력, 평화 이슈이기도 하고. 그런 것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채식을 결심하게 됐어요. 나부터 바꿀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이 바로 육고기를 끊는 거였던 거죠.
어떻게 보면 사회 운동의 한 방식으로 채식을 시작하신 거네요.
숲이아) 채식을 시작한 것이 저에겐 삶의 전환점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내가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걸 찾아보자 해서, 생태 운동을 시작하게 됐죠. 환경단체에서 활동하기도 했고, 녹색당 창당을 함께 준비하기도 했어요. 그러고 보니 그때부터 베이킹으로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바나나로 해바라기 모양을 얹은 ‘해 좋아 핵 싫어 탈핵 타르트’ 같은 것을 만들기도 하고, 씨앗으로 피스 마크를 새긴 ‘piece of PEACE 브라우니’를 만들기도 했죠.
#02. 숲속과자점 본격 개점 프로젝트
비건 베이킹과 숲속과자점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숲이아)채식을 시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 거죠. 채식주의자들은 워낙 밖에서 먹을 수 있는 게 없어요. 빵이나 과자 같은 것도 그렇고요. 비건 베이커리가 요즘 들어 생기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수가 무척 적고 가격이 비싼 편이거든요. 그래서 내가 스스로 만들어보자는 마음이었죠. 일단은 내가 먹을 것만큼은 만들 때 상대적으로 돈은 적게 혹은 비슷하게 들이면서 좋은 재료들을 쓸 수가 있으니까요. 예를 들면 무농약 우리 밀 통밀가루 같은 재료들이라든지. 그렇게 처음엔 제가 좋아서 시작했다가, 주변에 비건인 친구들과 나눠 먹으니 더 좋고. 그렇게 하게 된 거죠. ‘숲속과자점’은 제가 이렇게 비건 간식을 만드는 활동을 좀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에 붙여본 이름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요즘은 숲속과자점이라는 이름으로 베이킹 워크숍을 열거나 단체 워크숍이나 행사가 있을 때 간식 배달을 하기도 해요.
숲속과자점은 어떤 기준과 원칙을 가지고 간식을 만들고 있나요?
숲이아) 비건 간식이니 당연히 동물성 재료는 사용을 하지 않는다는 게 첫 번째 원칙이에요. 우리가 많이 먹는 간식에 들어가는 우유, 달걀, 버터와 같은 유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두유, 오일 등 다른 대체 재료들을 사용하고 있어요. 두 번째 원칙은, 수입 밀가루는 쓰지 않으려고 해요. 아까 말씀드렸던 대규모 경작지 문제와 연관되어서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이 정말 낮거든요.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가 알기로 식량 자급률이 20%가 안 되고 밀의 경우 10% 아래일 거예요. 그런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저는 주로 생협에서 나오는 무농약 우리 밀로 된 통밀가루나 백밀가루, 토종 밀가루를 주로 쓰고, 다른 재료들도 웬만하면 생협 제품들을 쓰려고 해요. 세 번째 원칙은 ‘제로웨이스트’ 캠페인에 동참하는 거예요. 그래서 되도록 쓰레기가 될 수 있는 포장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베이킹 과정에서도 일회용 물품을 덜 쓰자는 목표를 가지고 하고 있어요. 간식 배달을 할 때도 밀가루 봉지를 재활용해 포장한다든지, 상자를 재사용한다든지. 위생적으로 문제없는 경우에 한해서 그런 부분도 생각하면서 간식을 만들고 배달하는 일을 하고 있죠.
미트쉐어 공식 프로젝트 이름이 ‘숲속과자점 본격 개점 프로젝트’인데, 실제로 가게가 개점하는 건가요?
숲이아) 사실 저는 가게를 차리고 이런 것보다는 ‘숲속과자점’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제가 추구하는 가치를 전할 수 있는 활동을 이어나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근데 그것도 계속 관심을 가져주고 홍보가 되어야 가능할텐데, 그런 면에서 부족한 게 많았어요. 제대로 된 카탈로그도 없고, 개인 SNS 말고는 특별한 홍보 매체도 없는 상황이라서요. 그래서 이번 기회에 ‘숲속과자점’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프로젝트를 해보자 싶어서 ‘본격개점 프로젝트’라고 이름을 붙인 거죠. 덕분에 제가 평소에 구상만 해왔던 여러가지를 시도해볼 수 있었어요. 또, 다음 스텝은 어떻게 해야겠다는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구요.
‘숲속과자점 본격 개점 프로젝트’로는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숲이아) 우선 ‘비건 베이킹 워크숍’을 세 차례 진행했어요. 공간을 빌려서 쿠키, 브라우니, 당근 머핀을 만들어봤었죠. 또 하나는 ‘비건 간식과 나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이야기 모임을 세 차례 진행했어요. 두 번은 한두 분씩 모셔서 특정 간식에 대한 이야기와 그분들의 사연을 들으면서 그 간식을 함께 만들어보는 형태였고, 마지막 한 번은 6명 정도 모여서 비건 간식을 먹고 이런저런 비건으로 사는 것에 대한 소회를 나누는 모임을 하기도 했구요. 사실 저의 목표는 비건 간식과 관련된 이야기를 수집해서 그 이야기가 담긴 카탈로그를 만드는 거였는데 아직 완성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비건 간식과 나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해 볼 생각이에요. 참여하셨던 분들도, 저도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거든요. 계속 간식 이야기를 수집해볼 생각이에요.
숲속과자점 프로젝트가 재미있는 점이, 많은 분들과의 자발적인 참여와 협업이 참 잘 이루어졌다는 거예요.
숲이아) 사실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많은 분들의 격려 덕분이었어요. 미트쉐어와 빠띠에서 주최했던 네트워킹 행사인 <가볍게 올 수 있는 자리>에 참석한 덕분에, 저의 숲속과자점 프로젝트를 좋게 봐주시고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거든요. 비건베이킹 워크숍의 경우도 그 행사에서 만난 ‘클래시코’라는 반려견 프로젝트를 하시는 아리 님께서, 워크숍을 열어 준다면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소개해줄 수 있다고 해주신 덕분이었죠. 실제로 소개해주신 곳에서 워크숍을 두 차례 진행했었구요 .숲속과자점 홍보 컨설팅을 해주고 있는 자유 님도 ‘누구나데이터’라는 이름으로 미트쉐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팀이에요. 공익활동가들 데이터를 기반으로 멋지게 홍보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팀인데, 먼저 숲속과자점의 홍보 컨설팅을 해주고 싶다고 이야기를 꺼내주신 거죠. 숲속과자점의 규모와 활동 취지와 방향에 맞는 홍보 팁들을 많이 알려주고 계세요.
#03. 비건 간식으로 찾는 새로운 맛
비건 간식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통해 작게나마 어떤 변화를 기대하시나요?
숲이아)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되게 좋았던 게, 참여자분들이 모두 다 채식을 하는 분들은 아니었어요. 근데 오셔서 같이 만들어보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채식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어요. 채식에 관심이 있고 시도를 해보고도 싶어서 오셨다는 분도 있었고, 친구가 비건 간식 궁금해해서 그날 만든 걸 가지고 가서 친구한테 선물로 주겠다고 하시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비건 간식을 통해 채식에 대해서 작게나마 관심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어요.
사실 채식에 대해서 편견들도 존재하잖아요. 실제로는 어떤가요?
숲이아) 채식을 해서 건강이 안 좋아진다는 것도 사실 편견이죠. 콩이나 브로콜리에도 단백질이 많이 들어있어서 그런 거로도 충분히 섭취가 되니까요. 사실 건강을 안 좋아지게 하는 것으로 따져보면 고기를 먹느냐 안 먹느냐 보다는 다른 요인들이 훨씬 더 많을 것 같아요. 또, 채식은 맛이 없을 거라는 편견도 있는데, 그건 음식의 기준을 ‘육식’에 두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채식을 하면서도 고기를 먹는 데서 오는 식감이나 만족감 같은 것을 따라가려는 경우도 있는데, 저는 그냥 채식과 육식은 다른 차원 혹은 다른 장르라고 생각해요. 육식에서 추구하는 가치와는 다른 것을 채식에서는 추구하는 거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맛이나 식감도요. 채식도 채식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있거든요.
그렇겠네요. 또, 새로운 재료를 사용했을 때 항상 맛보던 익숙한 맛이 아니라 새로운 맛을 발견하고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숲이아) 맞아요. 오히려 비건 요리를 하면서 그리고 되게 창의적이 되는 것 같아요. 사실 크림파스타 같은 것도 비건으로 충분히 다 해 먹을 수 있어요. 다른 재료를 이용하면서 어떻게 내가 만족할 수 있는 맛을 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과정이 너무 재밌고, 또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을 먹을 때 만족감이 커요. 그리고 고기를 안 먹으면서, 향신료라든지, 다른 식의 맛을 낼 수 있는 것들에 관심이 자연스럽게 가면서 또 다른 즐거움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숲속과자점과 같은 비건 간식을 통해서 채식 혹은 식생활에 대한 편견을 깨뜨려볼 수 있지 않을까요?
숲이아) 그것과 관련해서 제가 자주 쓰는 방법 중 하나가, 비건 베이킹으로 만든 간식을 누군가에게 선물할 때 이게 비건 간식이라는 얘기를 일부러 안 하는 거예요. 그리고 먹어보고 맛있다고 하면, 아 사실 그거.. 하면서 공개하는 거죠. 그렇게 자연스럽게 접하도록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앞으로 숲속과자점 혹은 음식 문화와 관련해서 어떤 일들을 해나가고 싶으신가요?
숲이아 )사실 채식을 하는 사람의 입장으로서, 육식 중심의 식생활과 음식 문화가 팽배해 있는 한국에서 채식을 실천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에요. 결국은 내가 뭔가를 바꾸는 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거든요. 그래서 숲속 과자점 외에도 조금씩 그런 것과 관련된 활동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은, 채식 옵션이 있는 식당이나 카페 지도 만들기 프로젝트예요. 채식에 관심 있는 단체나 개인이 있다면 함께 만들어보고 싶어요.
[숲속과자점의 ‘당근레몬 비건케이크’ 레시피]
준비 재료 : 밀가루 2¼ C, 베이킹파우더 2 ts, 시나몬가루 3 ts, 베이킹소다 1 ts, 소금 1 ts, 생강가루 ½ ts, 넛맥가루 ¼ ts, 건포도 ½ C, 오일 ½ C, 설탕 ½ C, 2 Flax eggs(아마씨가루2 T+따뜻한 물 3 T을 섞어둔 것), 당근 1½~2 C, 레몬즙 ¼ C, 레몬제스트 레몬 1~2개 분량
①오븐을 180도로 예열해 둔다. ②볼에 밀가루, 베이킹파우더, 베이킹소다, 소금, 생강가루, 넛맥가루를 체에 치고 잘 섞는다. 작은 그릇에 건포도와 밀가루 1ts을 섞어 서로 달라붙지 않게 한다. ③오일, 설탕, 레몬즙을 섞어 저어주고 Flax egg를 넣고 섞는다. ④액체재료를 가루재료에 넣고 큰 수저로 섞어준다. 갈아놓은 당근과 레몬제스트, 건포도를 같이 섞어 준다. 너무 과하게 섞지 않도록 주의한다. 반죽이 완성되면 틀에 반죽을 고르게 부어준다. 케이크를 예열된 오븐에 넣고 30분 정도 굽거나, 혹은 윗면이 갈색이 될 때 까지나 꼬치로 찔러 보았을 때 반죽이 묻어나지 않을 때까지 굽는다. ⑤구워진 케이크는 식혀둔다. 비건 캐슈크림이나 두부크림은 식힌 뒤에 바른다.
건강한 재료로 만드는 비건 간식에 관심 있다면
숲속 과자점 빠띠 meetshare.parti.xyz/p/forestbakery
+
[작지만 멋진 일을 만나다]는 서울시NPO지원센터의 2017시민공익활동지원사업 ‘미트쉐어’에 선정된 프로젝트 기획자들과의 인터뷰를 연재하는 칼럼입니다. 미트쉐어는 긍정적 사회변화를 만드는 ‘작지만 멋진 일’을 응원하고 지원합니다. meetshare.kr
글 쓰고 사진 찍은 이혜민은 출판사 겸 기획사 ‘900km’의 작가이자, 에디터이자, 대표입니다. 누군가의 작은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우리 삶의 대안적인 방향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긴 결혼행진>을 쓰고 펴냈습니다. 900kmbook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