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디자이너를 대체할 수 있을까?

May 5, 2015

  • 영화 ‘her’에 나오는 인공 지능 운영체제 ‘사만다’의 모습. AUI와 최소한의 GUI만 남아있다.

‘미래 유망 직종’과 마찬가지로 ‘미래에 사라질 직업들’은 연말 연초 언론사들의 단골 뉴스 소재이다. 그 중 옥스퍼드 마틴스쿨 칼 베네딕트 프레이 교수와 마이클 오스본 교수가 발표한 ‘고용의 미래’라는 보고서를 살펴보자. 이 보고서에 따르면 자동화와 기술 발전으로 20년 이내, 현재 직업의 47%가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고 한다.

직업별 컴퓨터 대체 가능성 조사

직업 중 창의성과 감수성을 요구하는 직업들은 기계화의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적다고 하지만, 실제 IT기술과 트렌드 소식을 접하다 보면 이미 많은 소프트웨어가 기본적인 디자인을 해낼 수 있는 수준임을 실감하게 된다. 가령 현재 대부분의 북 디자이너가 사용하는 Adobe의 InDesign의 경우, GREP(유닉스를 위해 만들어진 텍스트 검색 기능을 가진 명령어)을 적용시킬 수 있어 작업 효율성이 극대화됐다. 편집 디자이너가 타이포그래피와 편집에 관한 몇 가지 디자인 가이드를 세우고 글을 조판하는 작업은 기계에게 맡겨도 될 만큼, 자동화될 수 있는 요소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책’이라는 아날로그 소재보다 더 자동화되기 쉬운 ‘웹’의 경우에는 다양한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훨씬 더 빠르게 디자이너를 대체하고 있다. 코딩이 이루어지지 않는 책의 경우, 그리드를 잡는 몇 가지 방법론이 있긴 하지만 디자이너가 임의대로 자기만의 감각을 더해 디자인할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웹의 경우는 다르다. 규격화된 스크린과 해상도에 따라 반응형으로 작동해야 하는 웹은 그리드와 디자인 컴포넌트가 규칙적으로 조율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기존의 전통적인 디자인 아웃풋보다 웹 디자인이 더 빠르게 패턴화되는 경향이 있다. 현재 알려진 웹 빌딩 툴들은 부트스트랩과 같은 개발단 툴부터, 코딩 없이 드래그앤드롭으로 사용자가 손쉽게 웹 사이트를 제작할 수 있는 툴 등 다양한 것이 있다. 하지만 최근 AI라는 수식이 붙은 최초의 툴이 나왔다. 바로 The Grid다.

The Grid — AI websites that design themselves

The Grid는 AI를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웹 사이트 빌더이다. The Grid에서 제공하는 기능은 다음과 같다.

INTELLIGENT COLOR DETECTION & CORRECTION
LAYOUT FILTERS
INTELLIGENT FACE DETECTION & SMART CROPPING
ON-DEMAND E-COMMERCE
MOBILE TOOLS
AUTOMATED A/B TESTING
UPDATE TO NEWS FEED
FOLLOW THE WEBSITE
UPLOAD DATA TO GITHUB

이 멋진 퍼블리싱 툴은 위 기능들을 통해 사용자의 니즈에 맞는 웹사이트를 즉각적으로 생성해준다. 반응형 웹은 물론이고, 색상 보정과 콘텐츠에 맞는 레이아웃 수정, A/B Test까지 디자이너가 했던 많은 일들을 쉽고 빠르게 처리한다.

점점 더 기계들이 똑똑해지면서 SF영화에서 등장하던 AI가 점차 가까운 미래로 다가오고 있다. 기술 발전이 점점 빨라지는 이 시점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직업의 기계화’가 기술의 발달, 산업 구조의 변화, 학문의 융합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빨라지고 있다고 해도, 감수성과 창의성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디자인 분야가 빠르게 기계화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 Design Thinking이나 Design Process에서 감수성과 창의성의 비중이 줄며 디자인이 점차 기계화에 적합한 형태로 변했기 때문이 아닐까?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디자인 외에도 경영학, 공학, 마케팅 등 여러 분야를 두루 섭렵하며 이들의 교집합 언저리에 자신을 위치시킨 디자이너라면 자신이 하는 일이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지 의문을 가져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디자이너란 무엇이 되었는지 말하기 전에, 먼저 과거의 디자이너란 무엇이었는지 고민을 담은 노만 포터의 저서 를 읽어보자.

“디자이너는, 저라면 직원으로 일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업에도 디자인을 해 주어야 하는가? 디자인은 사회적 사실주의 예술인가? 나이프와 포크를 디자인할 때에도 도덕적 품위를 지키면 도움이 되는가? 디자인 작품은 사회적 효용성을 내세울 만한가, 아니면 디자이너의 자기표현 수단일 뿐인가? 전문직은 일부 필수적 환상으로 주변을 둘러싼 자기방어 집단인가? 디자이너는 체제에 순응해야 하는가, 아니면 변화를 주도해야 하는가? 이와 같은 질문이 주의만 어지럽히고 시간만 낭비한다고 생각한다면, 아마 책을 덮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계속 읽되, 쉬운 답은 기대하지 마시라.” (17쪽, 디자이너란 과연 무엇인가)
“최악의 오류는 실천에 헌신하는 대신 ‘방법론’이나 ‘프로세스’ 같은 개념으로 도피하는 것이다. 황무지를 만들어 놓고는, 허울 좋은 과학적 방법으로 문제에 접근했다며 합리화하는 태도가 바로 그런 태만에서 비롯한다.” (73쪽, 방법 문제)
“만약 학생이 현 사회에 가로막혀 있다고 느낀다면,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할 길을 찾는 데 일조해야 한다. 개인적인 면에서 이에 대한 답은 스스로 찾아야 하지만, 디자인에 관해서라면, 길목에 도사리는 미끈한 독사를 두 마리 지적할 만하다. 첫째, 미래를 보장하는 데는 미래에 관한 상상에 온통 몰두하는 것만 한 법이 없다는 생각이다. 둘째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방법과 기법 같은 도구가 정신과 태도보다 중요하다는 인식이다. 교육과 실무를 막론하고, 이 독사에게 물리면 가장 ‘올바른’ 절차마저 공허한 허식으로 환원하는 불임증에 걸리고 만다.” (111쪽, 요약-학생은 디자이너이다)

현재 IT업계 혹은 출판업, 제조업, 서비스업 등등 여러 업계에서 Full Stack Designer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툴과 방법론과 스킬의 홍수 속에 놓여 있다고 느낄 것이다. 이제 넘쳐나는 stack들 속에서 나를 디자이너로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볼 시점이 왔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이제 기계까지 디자이너를 대체하려 든다. 이런 현실에서 현재 디자이너란 무엇이고 앞으로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디자이너라는 단어는 이제 사라져가는 직업 중 하나일 뿐일까? 디자이너는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할 수 없기에 디자이너들이 누구보다 먼저 기계와 대체될 운명에 처하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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