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맥주 더부스편 (2) : 맥주와 소주

맥주와 소주는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먹는 술이다. 하지만 이 두 술은 서로 매우 다르다.

1

맥주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술이라면, 소주는 마시기에 다소 버거운 술이다.

가볍게 잡담할 때 마시기 좋은 술이 맥주라면, 무거운 이야기를 힘겹게 털어놓아야 할 때 마시기 좋은 술은 소주다.

적당히 기분이 좋아지고 싶을 때 마시기 좋은 술이 맥주라면, 기분을 백팔십도 바꾸고 싶을 때, 아니, 내 영혼과 세상에서 제일 기분 좋은 사람의 영혼을 바꾸고 싶을 때 마시기 좋은 술은 소주다.

친구에게 말로만 해도 풀릴 고민이 있을 때 마시기 좋은 술이 맥주라면, 말도 하고 노래도 하고 춤도 추어야 풀릴 고민이 있을 때 마시기 좋은 술은 소주다.

맥주가 음료수라면 소주는 화학약품이다.

밤하늘이 고흐의 <야간 테라스>처럼 보이고 싶을 때 마시기 좋은 술이 맥주라면, 그것이 <별이 빛나는 밤>처럼 보이고 싶을 때 마시기 좋은 술은 소주다.

맥주는 아무 컵으로나 마셔도, 소주는 아무 컵으로나 마시지 않는다.

맥주를 마시면 당신은 아직 지상에 있지만, 소주를 마시면 당신은 구름 위를 걸을 수 있다.

2

평소보다 노래를 더 잘 부르고 싶으면 맥주를 마시지 말고 소주를 마셔라.

평소보다 춤을 더 잘 추고 싶으면 맥주를 마시지 말고 소주를 마셔라.

평소보다 더 대담해지고 싶으면 맥주를 마시지 말고 소주를 마셔라.

평소보다 나 자신을 더 증오하고 싶으면 맥주를 마시지 말고 소주를 마셔라.

그리고 평소보다 나 자신을 더 사랑하고 싶어도 맥주를 마시지 말고 소주를 마셔라.

하지만 다음 날 수업이 있다면 소주를 마시지 말고 맥주를 마셔라.

자신의 귀중한 물건들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면 소주를 마시지 말고 맥주를 마셔라.

달리는 택시 안을 오물통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 소주를 마시지 말고 맥주를 마셔라.

자신의 몸매에 자신이 없다면 소주를 마시지 말고 맥주를 마셔라.

“나는 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어야 한다.”가 신조라면 소주를 마시지 말고 맥주를 마셔라.

3

맥주와 소주의 가장 큰 존재 이유는 “기억의 희석(稀釋, dilution)”이다.

만약 그날 있었던 안 좋은 기억들을 희석하고 싶을 땐 맥주를 마셔라.

하지만 지금까지의 인생 전반에 걸친 안 좋은 기억들을 희석하고 싶을 땐 소주를 마셔라.

물론 희석 후 일정 시간이 흐르면 기억이 본래의 농도를 회복하거나, 더 진해지기도 한다. 원리를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술의 화학이다.

4

맥주를 마셨다고 하여 당신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소주를 마시면 당신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당신은 현실주의자에서 이상주의자가 될 수 있고, 비관론자에서 낙관론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언제까지나 “된다”가 아니라 “될 수 있다”이다. 어떤 사람은 소주를 마시면 더 소름 끼치는 비관론자가 되기도 하고, 더 지독한 현실주의자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절대 바뀌지 않는 사실 하나: 소주를 마시면 누구나 예술가가 된다.

/ editor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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