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ho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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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8, 2017 · 3 min read

에세이 맥주 독일주택편 (2) : K

K는 혜화에 추억이 있다. 사실 추억이라고 할 만큼 혜화에 연고가 깊은 건 아니다. ‘아, 그냥 그 때 그랬지.“ 라는 생각이 간혹 드는 추억이 있다. 혜화는 K에게 대학로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처음으로 체감했던 곳, 처음으로 서울에 상경해서 가보았던 곳, 그리고 처음으로 술을 마셨던 곳. 그런 정도의 장소이다.

K는 혜화와는 또 다른 젊음의 거리에서 지내고 있다. 하지만 K는 자신이 지내는 곳을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지내는 곳을 어둑하다고 생각했다. 참 여름에 돌아다니기 싫을 정도로 어둑하다. 더우면 더운 그대로 다 접하게 되고, 밤에는 소리가 가라앉지를 않는 곳. 그래서 그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오는 혜화가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다. 혜화는 이상하게 ‘주황색 필터’가 깔려있는 곳. 뜨거운 공기가 가라앉는 곳. 가로등의 위보단 아래가 더 어울리는 곳. 그런 곳이라고 K의 머릿속에서는 잔뜩 부풀려져 있는 곳이었다.

K는 시간이 흐르면서 어른이 되었고 술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엔 당연하게도 소주를 많이 마셨다. 왜냐하면이라고 할 것도 없이 다들 이유도 없으면서 소주를 많이 마셨다. 맛도 없으면서! K는 그걸 몹시 억울해했다. 뭐든 맛없으면 잘 안 먹는 성격 탓인지, 남들은 맥주가 맛이 없다고 종종 그러던데 K는 당당하게 맥주를 마셨다. 돼지국밥에도 김칫국물을 넣지 않는 지조를 발휘하여 소주도 잘 타 먹지 않았다. 그냥 맥주를 마셨다. 맥주를 많이 마셨다. 맥주를 정말 빠르게 많이 마셨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깨달은 건 맥주를 남들보다 빨리 마시는 게 의도한 바가 아니었지만, 너무 아깝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내 돈 주고 내가 먹는데 내가 빨리 먹으면 내가 더 많이 내야 하잖아!’ 맥주 애호가의 길은 멀고도 험한 것이었다.

한창 K에겐 서울에 대한 신물로 가득 차 있는 요즘이었다. 어쩌다가 내가 이 곳에 있는지, 답이 없는 일들에 이유를 찾고 있다는 게 참으로 어리석은 일을 이 글을 쓰고 있음에도 깨닫고 있는데. 사람은 쉬지 않으면 안 되는데 쉴 생각만 하고 쉬지를 않으면 쉬고 싶은 갈망만 가득하게 살게 되는데 그 상태. 그치만 어쩔 수 없는 일인 걸 아니까 그렇게 내버려 두니까 어쩔 수가 없는… (이하 생색)

그래서 혜화를 오고 싶었다. 자신이 서울에 오게 된 이유 같아서. 자신이 기억하는, 자신이 원했던 서울의 이미지였던 것 같아서. 오랜만에 거기서 술을 마시고 싶어서. 그 날은 여름답게 밤은 깊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남청색 하늘은 달을 먹고 있었다. 그래도 여름의 더위가 잔잔하게 가라앉아서 더위가 그나마 옅게 느껴지기도 했다.

K는 말했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맥주 한 모금이 넘어가는데 말이 목에 걸려버렸다. 톡 쏘는 맛이 목 사이 사이로 스며들다 어느새 잠잠해진다. 그래, 고통도 잠시고 살다 보면 다 잊힌다. 맥주도 마시다 보면 취기가 도는 것처럼. K는 꿈을 좇아서 왔는데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요지부동의 상태가, 끝없이 정진하리라는 결심과 부닥치는 게 영 맘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고 싶은 것으로 가득했던 때가 이제 하고 싶은 걸 하려면 해야 하는 것들로 바뀌어 가니까.

맥주는 그런 것들을 찬찬히 거품으로 지워준다. 거품에 잠겨라, 세상들아. 떠오르기 위해 몸부림치는 거품들아, 밤을 먹어라. 혜화의 밤아, 깊어져라. K는 홀짝대며 달을 찾아 밤하늘을 헤매었다. ‘너무 일찍 맥주 맛을 알아버린 건가.’ 라고 잔을 내려놓으며 생각했다. ‘아니, 아직 어른이 아닐지도 모르니까.’ 맥주는 K에게 현실도피의 시간.

K는 빈 잔에다 입을 대며 홀짝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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