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쓰기 D-327

낯선 집에서 익숙하게 있기

설날 아침, 어제 일찍 잔 덕에 일찍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밀린 설거지를 하고(왜 설거지는 밀리고 또 밀리는 것인가) 짐을 쌌다. 하루이틀 여행의 짐은 금방 싸는 것 같다. 여행력이 쌓이는 것인가. 후훗 설날이니까 버스 배차 시간이라던지 지하철 간격이 길 것 같아 좀 일찍 집을 나섰다. 아차차 확인 또 확인, 설 연휴에 날씨가 따뜻하다니까 보일러는 꺼두고 전기도 꺼두고 창문도 확인하고 오케이 이상 무. 진짜 집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환승하는데 설날인데도 꽤 많은 사람들이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이는 듯 했다. 나 같이 연말연시에 가족들과 지내서 설 연휴에 가족을 만나러 가지 않는 사람, 일하러 가는 사람도 있겠고… 당일 가족을 만나러 갈 정도로 근 거리에 살고 있는 사람도, 종교적으로 차례를 안 지내는 사람… 뭔가 역시 서울이란 느낌. 암튼 기차 출발 시간을 적당히 남겨놓고 역에 도착. 물을 사고 콜라도 사고 화장실도 가고 플랫폼에 도착. 무궁화호 1503 열차에 몸을 싣고 제자리를 찾아가 착석. 뭔가 설레이는 기분으로 앉았는데 내 옆자리엔 피곤에 쩔어 한숨을 푹푹 내쉬는 젊은 여성이 착석. 흠.. 언제 내릴려나. 치크치크포크포크 열차 소리에 익숙해질 즘 책을 꺼내들었다. 이번주는 내가 만든 2016 달력에 ‘무슨 일이 있어도 책 읽는 주간’이라 표시되어 있기에.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라는 책을 2장 읽었나.. 급격히 졸음이 쏟아졌다. 어제 그렇게 자고 또 졸리웁다니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건강한 거겠지. 내리 2시간을 잤다. 중간에 깨고 또 깼지만. 기차 안에서는 좀 조용히 통화하고 좀 조용히 얘기했으면 좋겠겄만… 아이들은 어쩔 수 없다고 치면 어른들이 참 너무하시네. 우리 엄빠도 저럴런가…. 단단히 일러둬야겠다. 뭔가 한마디하는 내공은 언제즘 쌓일려나. 용기가 생긴다면 이렇게 좀 멋있게 말하고 싶다.

‘많은 사람이 있는 곳입니다. 당신의 큰소리가 누군가에게는 큰 스트레스가 돼요. 조금 소리를 줄여주는 연습을 해보시면 어떨까요?'

라고 하면 ‘뭔 개소리야’ 라고 하실려나 -_-

암튼 시간은 흘러 내가 내려야 할 전주역에 도착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바닥언니네에 무사히 도착. 바닥언니는 가족들을 만나러 갔고 아무도 없는 집을 통으로 이틀을 빌렸다. 후훗 이것이 바로 에어비앤비를 경험하는 기분이겠구나. ㅎㅎ 낯선 길, 낯선 집이었지만 이내 편해졌다. 특히 베란다를 통해 본 밭뷰가 참 좋으다. 예전에 내가 살았던 아파트에서도 베란다를 통해 산과 밭을 보면서 멍 때리곤 했는데.. 지금은 그 아파트에 살지도 않고, 그 아파트를 통해 바라본 건너편 산과 밭도 다 없어졌지만.

그래도 설날이니 가족 단톡방에 내 현위치를 보고 하고 라디오를 키고 주인장의 쓰레빠를 신고 밖에 나가 작은 가게에서 이것저것 먹을 거리, 마실 거리를 사고 또 주인장이 그 상가에 치킨도 맛난다길래 치킨도 후라이드반 양념반을 주문했다. 혼자 그냥 아주 배터지게 먹고 또 먹는 -_-

집에 돌아와 고타츠 비스무리한 테이블에 하루 종일 앉아서 먹고 — 책보고 — 영화보고 멍 — 때리고 하다가 잠에 들었다. 따수미텐트 안으로 쏙 들어가 스탠드불빛에 기대어 책을 보는 기분이 꿀.

내일은 전주 시내로 나가서 안 가봤던 전북대 근처를 배회하면서 이런저런 공간을 둘러봐야겠다. 그동네 부동산은 얼마나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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