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by Thurston Hopkins

[번역] ‘내게 필요한 건 물질적인 게 결코 아니었다’ by 아이라 세이도프

2016년 2월 29일자 <뉴요커>에 실린 아이라 세이도프(Ira Sadoff)의 ‘내게 필요한 건 물질적인 게 결코 아니었다(I Never Needed Things)’를 한국어로 옮겨 봤습니다.


내게 필요한 건 물질적인 게 결코 아니었다

아이라 세이도프

나는 결코 번지르르한 차를 사랑한다거나, 아조레스 제도에서 
보내는 휴가를 열망한 적이 없다, 삶을 더 대단하게 
만들어 줄 캐시미어 스웨터라던가. 나는

그 대단한 까베르네 와인은 필요 없다, 샤또 몬텔레나가
나를 연못으로, 포도원 소풍으로 되돌려 놓아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내 곁에 있는 여자 — 그녀는 또 다른 이야기.

내 가정생활은 늘 간절히 기어나오고 싶은
싱크홀 같았다. 그러나 실은 
어떤 빈 자리, 흙으로 메워야 할 어떤

무덤에 가까웠다. 거기 꼼짝없이 갇힌 채, 누군가가 
나를 싣고 떠나보내 주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여전히 모른다.

혹시 그것을 아는 이 있을까? 이토록 많은 자아들이 
누군가가 보아주고 아껴주기를 갈망한다. 이따금씩
나는 차를 몰고 쇼핑몰에 가서 쇼윈도 안을 응시한다,

무슨 일들로 신이 나 있는지 볼 요량으로.
엄마가 딸에게 드레스를 입혀본다,
젊은 남자가 TV 스크린들 사이에서 제품을 고른다.

그들은 여기가 집인듯 편안해 보인다. 때로는
그들의 환희가 관능적인 것 같다: 그들은 땅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자잘한 보석들을 찾아낸다. 집으로 가져가고 싶다,

그들의 표정을, 내가 잠시 써보고 싶다.


I Never Needed Things

Ira Sadoff

I never loved a shiny car, longed for
holidays in the Azores, cashmere sweaters
to make life matter more. I don’t need

that great Cabernet, though Chateau Montelena
sends me back to a pond, a vineyard picnic — 
the woman I’m with — she’s a different story.

I always saw my family life as a sinkhole
I tried to climb out of. But more
it was a vacuum, a grave that needed dirt

to fill it in. So stuck I was, I wanted only
to hold on to someone for the ride.
I’m still not sure how to conduct myself.

Does anyone? So many selves craving
to be seen and cared for. Once in a while
I drive to a mall to peer in shop windows,

to see what the excitement’s about.
A mother tries a dress on her daughter,
a young man chooses between TV screens.

They seem at home here. Sometimes
I think their joy is sensual: they find little gems
shimmering in the earth. I want to take home

their expressions, try them a while.

출처: http://www.newyorker.com/magazine/2016/02/29/i-never-needed-things


제목이 가장 큰 난관이었다. I Never Needed Things. 네 개의 단어로 이루어진 이 단호한 문장을 성문영어 스타일로 해석하면 ‘나는 절대 물건들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정도가 될 것이다. 여기서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things’는 ‘물건들'인가? ‘번지르르한 차’, ‘캐시미어 스웨터’, ‘까베르네 와인’은 물건의 범주에 속하겠지만, ‘아조레스 제도에서 보내는 휴가’는 어느 범주에 넣어야 할까? ‘Things’는 돈이 있으면 얻을 수 있는, 있어 보이는, 고급스러운 물건 혹은 생활방식을 모두 아우른다고 봐야 적합할 것이다. 그래서 장황하지만 본 뜻에 가장 가까운 ‘물질적인 것’으로 타협했다.

둘째, 시인은 정말 ‘물질적인 것'은 필요 없는 것일까? 물질적인 것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의식주만 해도 물질적인 것이다. 시인은 이 시에서 심리적 공허를 이야기한다. 그 어떤 ‘thing’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마음의 공터. 그래서 결핍이 없어 보이는 쇼핑객들의 표정이라도 훔치고 싶은 것이다. 섣부른 직역이 가져올지 모르는 오해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몇 단계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시 번역 연습을 하면서 깨달은 한 가지 사실은 ‘피곤할 정도로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시인은 한 단어도 허투루 다루지 않았을 것이다. 역자는 이 안에 무의미하게 놓인 단어는 없다고 믿어야 한다. 이 시의 화자는 원하지(want) 않고 필요로 한다(need). 일반적인 번역에서는 이 두 개념이 문맥에 맞게 호환 가능하겠지만, 이 시의 제목에는 ‘need’를 굳이 따져 넣었다.

‘원한다'는 것은 재고목록과 무관하게 ‘바라는 마음’이다. 반면에 ‘필요하다'는 것은 재고목록에서 빠진 항목이다. 시인은 재고목록에서 ‘물질적인 것’을 모조리 빼도 좋다고 말하지 않는다. 기존 재고목록에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이 있는데, 아직 못 채운 부분이 있다. 그 부분이 ‘물질적인 것'의 자리는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제목은 ‘나는 절대 물질적인 것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가 되어서는 안된다. ‘물질적인 것'이 주어가 되면 앞서 우려한 오해가 발생한다. 주어는 ‘필요로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시인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시로 설명해준다. 그러면 독자는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할 것이다. 인간적 유대일 수도 있고, 타인의 관심일 수도 있고, 자기만의 공간일 수도 있다.

결국 원제목(I Never Needed Things)보다 못생긴 문장(내게 필요한 건 물질적인 게 결코 아니었다)이 만들어지고 말았다. 내 마음 속 제목은 ‘나는 대단한 것을 바란 적이 없다’임을 살짝 고백하고 싶다.


몸이 속하는 곳에 마음도 둘 수 있다면 꾸준한 평온은 가능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지옥이 되는 때가 있다. 그 바깥에 구원이 있는지는 몰라도, 잠시 벗어나 숨을 돌리는 편이 아무래도 낫다. 그 지옥은 내 탓일까, 그쪽 탓일까, 양쪽의 합작품일까. 생각의 물레가 빙글빙글 돌아간다. 멀리 있는 삶에는 순한 미소들이 있다. 그늘진 서랍을 열어 쓸만한 것들을 찾아본다. 무난한 행복과, 무난한 상심과, 무난한 피로를 언제 본 것도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