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과학의 선구자 ‘모피어스’

생각은 미리미리 하는 거라고 친구

※ 본 글은 본인의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으로 작성된 글이니 당신을 해치지 않아요.

나는 성장과정에서 극단적으로 미디어(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책 등)의 영향을 편중되어 받았다. 주변에 그런 대화(사람은 무엇인가? 인생은 왜 거지 같은가? 같은 그런 대화..)를 나눌만한 사람도 딱히 없었고, 조언을 구하면 전형적인 몇 년 더 산 사람의 대사를 읊어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래 좋아했던 미디어를 즐기다가 어느새 그 안에 녹아있는 작가, 감독들의 철학적 질문에 대해 심취했고, 그런 질문들을 나에게 끝없이 자문하며 나를 형성해왔다. 어떻게 보면 수많은 작가와 감독들이 나를 키웠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 내가 겪었던 정말로 수많은 질문과 깨닭음의 과정을 적어보고 싶어 졌다. 대중 미디어는 대중이 소모하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넓다고 생각되며, 이를 통해 스쳐 지나갔던 장면과 대사들에 대해 재고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본다.

최종적으로는 내가 깨닫고 성장한 것을 님들도 각자 만의 인생관이나 가치관에 넣어, 자기 것으로 만들어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 주제는 ‘학습’과 ‘인지’에 대한 것이다.

The Matrix

때는 1999년, 밀레니엄 버그가 발생하기 1년 전(군입대 1년 전…) 혁명적인 영화 “The Matrix”가 개봉했다. 더 설명해서 뭐하리… 말 그대로 ‘Revolutionary’ 하다.

초반부 모피어스와 네오의 도장 격투씬은 매트릭스가 보여주는 액션의 시작점이라고 볼 수 있는데, 여기에서 모피어스는 네오를 때려서 넘어뜨릴 때마다 철학적 질문을 쏟아붓는다.

첫 번째 힌트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Do you think that’s air you’re breathing now?

네오는 사이버 공간에서 숨을 쉴리가 없지만 너무나 현실적인 상황에 현실과 동일 시 한 것이었다. 알고는 있지만 마음과 몸이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한 마디

Don’t think you are, Know you are.

대략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인지해”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데, ‘인지’도 맞지만 ‘지각’도 해당되는 단어라고 볼 수 있다. 이 대사는 정말 내 머리를 강타했다.

모피어스는 영화 내내(본인 입으로도 몇 번 말한다) 네오가 스스로를 깨닭게 위해 도움을 주는 ‘가이드’ 역할이다. 그 과정에서 모피어스는 여러 조언을 해주며, 도장 결투씬은 네오에게 ‘심心신身’의 학습을 도와주는 명확한 장면이다.

이랬던 모피어스가 네오의 가이드

이 장면을 100번도 넘게 본거 같은데(사실 매트릭스 1, 2편을 부분 부분 엄청 돌려봤다), 모피어스의 대사는 나에게 새로운 가치관 형성, 성장의 계기가 되는 씨앗을 심어주었다. 누구나 다 이미 들었고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지만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한 그런 것 말이다.


의천도룡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중학생 시절로 간다. 나의 중학생 시절은 ‘컴퓨터’와 ‘게임’에 집중되어 있었다. 어느 날 컴퓨터 박람회를 갔다가 게임을 하나 구매했다.(그 당시 전시회, 박람회에는 꼭 게임을 판매하는 부스가 있었다.) 구매한 게임은 “의천도룡기”인데 사실 난 RPG(Role-Playing Game) 게임을 그리 즐기지 않았다. 그래도 어드벤처형 진행이라 아-주 열심히 플레이했다. 앞선 글에서도 언급되었지만 그 당시 나는 가치관이나 그런 게 형성되지 않은 시기였다. 그런데 그 당시에도 게임 진행 중, 20년 넘게 그 의미를 고민했던 너무 인상적인 대화 내용이 있다.

게임 장면을 찾을 수 없기에(너무 고전게임이 돼버린 건가… 세월이란..) 실제 소설의 내용을 참조해본다.

김용의 <의천도룡기>에 나오는 장면. 장삼봉이 태극검법을 장무기에게 전수한다. 그리고 묻는다.
“얘야, 똑똑히 다 보았느냐?”
“예.”
“모두 기억했느냐?”
“벌써 잊기 시작했습니다.”
“잘했다.”
장삼봉은 한참 후에 다시 묻는다.
“지금은 어떠냐?”
“절반 가량 잊었습니다.”
장삼봉은 다시 한번 태극검을 시전하고 다시 묻는다.
“얘야, 지금은 어떠냐?”
“아직 3초招가 남았습니다.”
잠시 후 장무기가 외친다.
“태사부님, 이제 다 잊었습니다. 한 초식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지워버렸습니다.”
“훌륭하다. 아주 훌륭해! 정말 빨리도 잊었구나. 됐다.”
장무기는 드디어 검을 들고 대결에 나선다.

당시 나는 ‘뭔가 대단한 깨달음을 주는 거 같은데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설명 좀….

소설 상에서 해석을 빌리자면 다음과 같다.

김용은 의천도룡기에서 이 경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만약에 단 일초라도 남김없이 깨끗이 지우지 못하면 그 검초에 구애받아 순수한 검법을 구사할 수가 없었다.
참조: 초록불의 잡학다식

당연히 8살의 지능을 보유한 당시의 나는 이 의미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요지는 인간의 배움, 앎, 깨달음 등 인지와 지각에 대한 내용인 것이다. 이러한 말은 다른 곳에서도 여러 사람이 언급했다. “버리지 않으면 배울 수 없다”, “쥐고 있는 손을 펴지 않으면 잡을 수 없다” 등 모두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사람의 용량과 속도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지식을 배우는 것은 생각과 행동을 통해 몸과 머리에 스며들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진정 내 것이 되면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흘러갈 수 있는 ‘융통무애’의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 이렇게 지식이 내 것이 되면 머리 속에서 그것을 지우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배움은 이러한 과정의 연속이다. ‘학(學:배울 학)’과 ‘습(習:익힐 습)’을 모두 거쳐야 진정 나의 것이 되며, 받아들여 생각하고 내 것으로 만들고 버리는 과정을 통해 하나의 과정이 마무리된다.

머리에서 잊혀진다고 그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머리에 기억한다고 그것을 알았다고 할 수 없다.

Man from Earth

약간의 사족으로 ‘Man from Earth’에 나오는 대화를 살펴본다. 주인공은 가상의 설정이라고 말하며 14,000년을 살아온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중 이런 대화가 나온다.

“14,000년이나 살았으면 모든 것을 다 배우고 천재이겠군요?”

“14,000년을 산다고 천재가 되지는 않아요.”

이미 배웠던 것을 다른 것을 배우기 위해 오랜 시간 방치하면 그 지식은 사라집니다. 또한 아무리 오래 살아도 한 사람의 속도가 시대를 앞설 순 없고,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지식은 전파되는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럼 천재는 어떻게 해야 되는거냐

피아노와 악보

이런 깨달음은 언젠가부터 내 삶 구석구석에 행동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중에 하나가 ‘피아노 연주’였다. 나는 피아노를 아주 좋아한다. 어릴 적 배울 때는 너무 재미없었지만…..(꼬맹이 데려다가 체르니를 몇 시간씩 연주시키니….)

망할 체르니…

지금은 종종 취미 정도로 연주하는데 큰 문제가 있다. 악보를 못 외운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피아노가 있어도 악보가 없으면 연주를 할 수 없고 집에서만 홀로 연주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계속 같은 곡을 연습하다가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난 실제로 악보를 거의 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악보를 덮고 다시 연주를 시작하면 몇 마디 가지 못하고 멈춰버린다. ‘뭔 이런 X 같은 상황이지??’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해봤을 때, 같은 곡을 계속 연습하는 동안 나는 그 곡을 몸으로 익히게 되었고 실제로 악보는 필요가 없는 상황까지 온 것이었다. 하지만 악보에 의존성이 있다 보니 중간중간 확인이 필요한 것이었다. 내가 몸으로 익힌 것을 중간중간 상기시키는 매개체랄까?

악보는 지식이었고 이를 보며 피아노를 치는 행위는 학습, 악보가 없이 곡의 흐름을 이해하고 연주하는 것이 그 마무리라고 비유할 수 있다. 결론을 아름답게 포장한다면 다음과 같다.

머리로 배우고 마음으로 행동한다.

마지막은 얼마 전에 봤던 (본 주제와 직접적으로 관계없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에서 욘두가 했던 대사로 마무리해 보겠다.

가오갤의 간지남 욘두의 귀여운 미소
애송아, 난 이 화살을 머리로 쏘는 게 아니야. 마음으로 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