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고독은 무엇인가

만약 당신이라면. 성공을 향해 하루하루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당신. 당신에게는 모든 상황과 조건이 갖춰져 있다. 부모님의 든든한 지원과 기대, 동생과 친구들의 응원, 편안하고 쾌적한 작업실, 쾌청한 날씨, 그리고 건강한 몸까지. 그 동안 목표에 대해서, 스스로에 대해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일과 이룰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많은 것을 고민하고 준비해왔다. 나의 성공을 위해 내가 준비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했다. 이제 나의 구체적인 상상을 머리 속에 담고 내 손 안에 있는 이 계획표에 따라 그대로 실천하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당신은 눈을 뜨자마자 알 수 없는 지독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어디서 이렇게 곰삭았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지독히도 쓸쓸하고 농도 깊은 외로움이 나의 머리 꼭대기로부터 온 몸 구석구석으로 진득하게 흘러내린다. 내 방은 순식간에 무겁고 어두운 공기로 가득 찬다.

짐작하건대, 오늘의 가슴 시림은 분명한 고독감이다. 하지만 고독감의 맨 얼굴을 마주하기 전에 먼저 한 가지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고독감과 비슷한 감정인 외로움이다. 외로움과 고독감은 모두 홀로 있음으로 인해 느껴지는 쓸쓸함과 허전함의 감정이다. 그러나 외로움은 타인과 함께하지 못함 즉, 타인과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었을 때 느끼는 감정이지만 고독감은 타인의 존재 유무와 상관 없이 느끼는 감정이다. 즉, 당신이 해외에 홀로 있어 친구들이 보고 싶고 함께 하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혼자 라면에 식은 밥을 말아먹을 때 느끼는 감정이 외로움이다. 이에 반해 고독감은 분명히 어제 친구들을 만나 신나게 놀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알 수 없는 쓸쓸함에 휩싸이거나, 친구들하고 신나게 놀고 있을 때조차 허전한 것을 말한다. 외로움은 일정한 조건(필요한 사람이 당장 내 곁에 없다)이 형성되면 발생하는데 반해, 고독감은 특별한 조건 없이 불쑥 나타나기 때문에 예측할 수 없고 그렇기에 보다 당혹스럽다. 그래서 오늘 아침의 나처럼 모든 것이 순조롭게 잘 풀리고 있다고 믿고 있는 상황에서 고독감을 만나면 보다 낯설고 생생한 당혹스러움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고독감은 다른 감정들보다 훨씬 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그 이유는 고독이라는 감정이 죽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수렵채취를 하던 선사시대부터 산업화 시대 그리고 지금의 정보화, 지식화 시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누군가와 연결되지 않고 홀로 존재한다는 건 곧 죽음을 의미했다. 타인과의 상호작용 그리고 협력이 없이는 그 누구도 자신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자원을 충분히 갖출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은 끊임없이 타인과의 연결을 추구하고 또 그 연결을 만들어왔다. 그래서 이러한 인간이 고독감을 느낄 법한 상황이란 대개 무리에서 외면 또는 배척되는 상황이거나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하는 상황 즉, 죽음의 문턱에 홀로 남겨졌을 때를 의미했다. 본인이 원하지 않았고 예측할 수 없었으며 갑작스럽게 찾아온 고립의 상황. 이 상황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고독의 감정뿐이다. 그리고 고독한 인간에게 남겨진 단 한 하나의 일은 자신을 향해 조금씩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맞이하는 것이다.

또한 인간에겐 죽음을 향한 본능이 내재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측면에서 인간은 죽음을 바라고 기다린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갖고 있는 이러한 죽음의 본능을 타나토스(thanatus)라 불렀고, 이를 자기 자신을 파괴해 생명이 없는 무기물로 환원시키고자 하는 죽음충동이라고 설명했다(출처: 윤가형 외, 2012, <심리학의 이해>, 서울: 학지사). 이러한 죽음의 충동이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표출되는 것이 공격성의 발현이다. 만약 공격성이 내부로 향해 있다면 인간은 알코올이나 약물 중독, 폭식 또는 거식, 무분별한 섹스 등을 통해 자신의 몸을 학대하거나 자기비하 혹은 연민, 지나친 열등감, 과대 또는 극단적 망상에 빠져 자신의 정신을 파괴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공격성이 외부로 향해 있다면 인간은 지나치게 경쟁적이고 호전적인 성격을 갖게 돼 모욕적이고 파괴적인 언행으로 타인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힐 것이다. 이는 곧 작용에 대한 반작용을 부르는 행위이며 그 결과 타인으로부터 똑같은 가해를 당할 수 있는 상황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죽음을 향한 인생의 진행 속도를 높이는 일이고 이 일에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대는 것이 다름 아닌 고독감이다.

인간은 바로 이 고독감을 영원히 피할 수 없다. 우리가 고독감을 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고독감은 더욱 강하게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짓누를 것이다. 우리 인간은 이 세상에 홀로 나와 다시 저 세상으로 홀로 떠나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존재이자 한정적인 생의 시간을 살며 죽음을 향해 쉼 없이 달려가는 존재다. 우리가 바로 이러한 존재기에 필연적으로 고독감을 느낄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고독감조차 살아있음이 선사하는 생생한 삶의 감정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의 삶엔 모든 감각을 열고 매 순간을 살 때 느낄 수 있는 생생한 삶의 감정인 실존의 행복감이 있고, 동시에 바로 정확히 그 반대편에 동전의 양면처럼 생명의 유한함을 자각할 때 느낄 수 있는 또렷한 죽음의 감정인 실존의 고독감이 있다. 실존의 행복감과 실존의 고독감.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감정의 거울인가. 가장 행복한 순간의 이면에 가장 고독한 순간이 함께하고 가장 고독한 순간마저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주는 행복한 순간이 될 수 있다니. 이처럼 행복과 고독은 언제나 똑같은 얼굴을 하고 거울 앞에 마주 서있다. 그렇기에 모든 것이 잘되고 있다고 이제 목표를 향해 달려 가기만 하면 된다고 행복해하던 순간, 갑자기 온 몸에 힘이 빠지고 모든 것이 잿빛으로 변하는 고독의 순간을 직면할 수 있는 것이다. 이토록 끔찍하게 내 목을 옥죄는 무력감의 실체가 인간이기에 극복할 수 없는 실존의 고독이라면 이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우리는 영영 고독감의 절망 속에서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가혹한 운명의 존재일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이는 엄연한 선택의 문제다. 고독감을 삶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그렇게 하지 못하고 두려워하며 피할 것인가 하는 문제. 정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고독감을 우리 삶의 한 부분으로 그저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고독감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어떻게든 피하려고 발버둥친다면, 고독감은 이내 괴물로 변해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잡아먹을 것이다. 즉, 죽음의 본능을 자극해 우리를 서서히 죽음으로 이끌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고독감을 인정하고 이 감정과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우리는 고독감의 족쇄에서 벗어나 새로운 친구가 주는 선물을 기꺼이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고독을 기꺼이 선택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의 위대함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 즉, 우리는 고독 속에서 만이 내 삶을 발전시킬 수 있는 자기성찰, 우리의 재능과 흥미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 그리고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영감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이러한 고독의 장점은 우리가 고독의 시간을 수동적으로 버팀으로써 생기는 것이 아니라, 고독의 시간을 선택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고독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우리가 원하는 성취를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함께해야 하는 인생의 친구다. 보통 우린 고독을 두려워하거나 피해야 할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홀로 있는 것이 친구가 없고 사교성이 부족한 것이며 때론 한 가지 생각에 너무 외골수로 빠져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의 주제에 대해 장시간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은 모든 성취의 시작이다. 이러한 집중력은 하나의 대상 혹은 사건에 대해 여러 가지 측면으로 분석할 수 있는 사고력과 이를 바탕으로 창의적인 해결책을 도출할 수 있는 능력 즉, 문제해결능력을 키워준다. 또한 고독을 통해 완성된 자신만의 생각의 틀은 우리가 세상의 문제를 나름의 시각으로 판단, 연구, 해석할 수 있도록 하는 도구가 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우리는 이 도구를 사용해 우리가 원하는 인생을 스스로 창조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잠시도 홀로 있을 수 없어 어떻게든 고독을 피하려고 애써왔다면, 우리는 평생 동안 환경의 자극에 그저 수동적으로 대응하고 반응하는 방식으로밖에 살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환경을 해석하고 창조할 수 있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채 말이다. 우리는 단언컨대 그러한 삶을 원하지 않는다.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는 사람들도, 그냥 흘러가는 대로 편하게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가슴 속 깊은 곳에는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이들이 꿈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단지 그들이 아직 그 꿈을 만나지 못했고 만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모든 성공에는 값이 있다. 아무리 작은 성취라 해도 여기엔 반드시 이에 상응하는 값이 있다. 다만 이것이 숫자로 쉽게 환산되지 않고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단지 이 값을 대가라는 단어로 뭉뚱그려 표현할 뿐이다. 이 대가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매일의 노력인 성실성, 꿈을 향한 순수한 열정, 목표와 계획에 대한 헌신, 자기절제와 규율, 반복되는 일상에 대한 인내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것에 앞서 고독을 마주하는 능력, 고독감을 내 존재의 일부로 인정하고 이 감정을 기꺼이 다루는 능력이 가장 필수적이라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고독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지금 우리가 있는 곳에서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삶을 원하지 않는다.

실존의 행복과 고독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고독을 마주하니 다시금 행복이 찾아온다. 마찬가지로 행복을 마주한 뒤에는 언제든 고독이 찾아올 수 있다. 나는 기꺼이 반갑게 고독을 맞이할 것이다. 왜냐면 고독은 나를 해치는 괴물이 아니라, 언제나 내 삶에 꼭 필요한 선물을 양 손 가득 들고 찾아오는 친구이기 때문이다. 고독을 괴물로 만들 것인가 친구로 만들 것인가. 모든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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