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상상을 어떻게 하는가 (2)

우리는 확고한 자아개념을 갖고 있을 때만이 외부로부터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고 스스로를 동기부여하며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 이러한 자아개념은 상상의 힘을 활용하고자 할 때 특히 더 중요하다. 그 이유는 아직 우리 곁에 오지 않은 미래인 상상이 상상하는 사람 본인의 마음을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상하는 자는 자신의 상상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나 경험의 기회를 다른 사람들에게 제공하기가 쉽지 않다. 그 결과 자신만의 상상 속에 자주 빠져있는 사람들은 주변사람들로부터 철 없는 몽상가,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 그리고 외골수 등의 조롱 아닌 조롱을 받기 쉽다.

비난하는 주변인들의 생각은 주로 너는 왜 남들처럼 살지 않냐는 것이다. 이 말을 좀 더 풀어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생의 정해진 시간표와 자신들의 처지 그리고 능력에 맞춰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데, 너는 뭐가 그렇게 잘나고 특출 나기에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호언장담만을 늘어놓고 있냐는 말이다. 이들의 말은 분명한 사실이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이 평범하지 않게 사는 사람보다 훨씬 많다(여기서 평범하지 않게 산다는 건 성공의 유무를 떠나 자기가 원하는 미래를 스스로 상상하고 이루며 사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들의 삶은 개인의 수준에서 각각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가치와 의미를 추구하는 삶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리 개인적인 수준에서 그리고 개인적인 영역에서 가치와 의미가 충분한 삶을 살고 있다 해도, 그것이 단순히 내게 주어진 삶을 성실히 살아감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라면 충분히 만족할 수 없다. 누군가 만들어 준 타인의 삶 속에서 누군가에 의해 제공되는 가치와 의미를 수동적으로 받아 드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내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적극적으로 찾고 만들어갈 때 우리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 속엔 이러한 삶을 살고자 하는 갈망이 언제나 차고 넘친다.

인본주의 심리학자인 매슬로우(Abraham H. Maslow, 1908~1970)와 칼 로저스(Carl Rogers, 1902~1987)는 이를 각각 자아실현의 욕구(self-actualization needs)와 실현 경향성(actualization tendency)로 표현했다. 이는 인간이 자신의 모든 잠재력을 발현해 좀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존재로 성장하려는 선천적인 특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권석만, 2012, <현대 심리치료와 상담이론>, 서울: 학지사, ‘8장: 인간중심치료’). 즉,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인간에게 예외 없이 적용되는 자연의 법칙이며 우리들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다. 따라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자아실현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가 자리하고 있으며,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를 깨닫지 않는 것(will not)이 아니라 깨닫지 못하고(cannot)있는 것뿐이다. 그 이유는 주로 자신들의 상상력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부정적인 피드백과 그에 대한 온갖 종류의 조롱과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상상력을 폐기하거나 억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폐기하거나 억압해버린 상상력을 다시금 회복 또는 계발시키기 위해서는 거꾸로 자신의 상상력을 외면하고 무시했던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상상의 대한 재능 그 자체에는 그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았음을 우선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나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타인들의 평가가 사실이 아니며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즉, 나의 마음이 지금까지 외부의 다양한 압박으로부터 상상력을 굳건히 지켜왔고 또 앞으로도 기꺼이 지켜나갈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이 믿음은 나의 자아개념의 확고함과 비례해 강해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상상력을 활용하기 위해, 상상을 통해 스스로의 가치와 의미를 찾고 만들기 위해, 그리고 궁극적으로 자아실현을 위해 가장 먼저 자아개념을 튼튼히 세울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눈으로 볼 수도 손으로 만질 수도 없고 오직 행하는 사람의 마음으로만 경험할 수 있는 상상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지 배우고 연습하면 된다. 이 방법 또한 일정한 시간만 투자하면 자전거 타는 방법을 배우듯 쉽게 익힐 수 있다. 늘 그렇듯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은 언제 어디서든 우리가 원할 때 우리의 삶으로 끌어올 수 있다.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는 과정은 그림을 그리는 과정과 같다. 인간관계, 건강, 직업, 경제력, 내적인 삶의 질 등 우리 삶의 중요한 영역들을 펼쳐 놓고 그 중 자신이 개선하고 싶은 분야를 먼저 선정한다. 그리고 마치 스케치를 하듯 대략적으로 내가 원하는 미래 모습을 마음 속에 그려본다. 가령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해 부와 명예를 쌓고 싶다면 자신이 부와 명예를 이루었을 때 어떤 모습일지 대충 생각해보는 것이다. 고층 빌딩에 있는 고급스러운 개인 사무실에서 여유 있고 능숙하게 일을 처리하는 모습이나 화려한 시상식에서 멋진 정장을 입고 상을 받는 모습 등을 떠올려 보는 것이다. 즉, 내 마음 속에서 내가 최고로 잘 됐을 때의 모습, 정점에 올랐을 때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이다. 만약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미래의 자기 모습이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면 내가 누군가를 부러워하거나 질투했던 때를 기억해보자. 바로 그때의 상대방 혹은 상대방의 상황이 지금 내가 가장 바라고 도달하고 싶어하는 미래상에 가까울 것이다. 인간의 감정은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가장 예리하고 명확하게 말해주기 때문이다.

부러움은 내가 누리지 못하는 것을 누리는 상대방을 인정하고 자신도 기꺼이 그와 같은 모습이 되고자 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반면 질투심은 내가 누리지 못하는 것을 누리는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고 도리어 무시하고 깎아 내리고자 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이러한 질투심이 생기는 이유는 상대방이 누리고 있는 것을 지금의 나는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박탈감 때문이기도 하고, 미래의 나 역시 누리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기도 하다(여기서 누리는 것의 종류에는 사회·경제적 지위, 학력, 문화예술적 취향과 안목, 삶의 질 그리고 내적 평화 등이 포함된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 이면에는 내가 상대방의 수준을 따라갈 의지도 능력도 갖추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열등감이 자리하고 있다. 보통은 이러한 감정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자주 섞인다. 부러움과 질투심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감정이다. 이는 개인이 자신의 삶을 남과 비교하지 않고 얼마나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가 즉, 주변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얼마나 스스로를 동기부여하며 이끌 수 있는가에 따라 바뀐다. 내가 확고한 자아개념을 갖고 있다면 나는 상대방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나 또한 저처럼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상대방의 행복은 나의 불행이 되어 나는 박탈감, 불안감, 열등감과 같은 자기파괴적인 감정에 빠져 스스로 파멸할 것이다. 따라서 내 마음으로부터 상상의 재료를 찾을 때는 내 안의 부정적인 감정들로 인해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수준에 대한 느낌과 이미지를 제공하는 경험 또는 대상을 폄하하지 않도록 자신의 자아개념을 지속적으로 관찰 및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상상력의 재료를 수집하는데 있어서도 확고한 자아개념은 필수다. 하지만 이 자아개념이 확고하지만 부정적인 경향성을 갖고 있는 경우라면 어떨까. 부정적으로 자아개념이 확고할 바에야 차라리 자아개념이 약하더라도 긍정적이거나 아예 없는 것이 속 편하지 않을까. 이는 개인의 자아개념이 자신을 포함한 주변세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문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무리 부정적인 자아개념이라 할지라도 자아개념이 약하거나 없는 것보다는 확고한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자아개념이 약해서 주변 사람들의 말에 이리저리 줏대 없이 흔들릴 바에야 부정적이지만 확고한 자아개념을 바탕으로 일관성 있는 선택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 본인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고 만들어가는데 훨씬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정적이지만 확고한 자아개념이 본인의 삶을 나름의 방식으로 구축해간다는 의미가 있을진 몰라도, 이것이 본인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인지는 알 수 없다. 만약 부정적이지만 확고한 자아개념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자기 방식대로 삶을 살아보겠다고 각종 범죄를 일삼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만 주고 산다면, 이러한 삶을 바람직한 삶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이는 결코 바람직한 삶이 아니다. 바람직한 삶이란 개인이 자신의 자아개념과 세계관, 그리고 삶의 태도를 추구할 때 자신의 행복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행복, 그리고 나아가서 본인이 살고 있는 사회와 국가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는 삶을 말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신의 자아개념이 부정적으로 흐르는 것을 최소화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스스로를 인도해야 한다. 이때의 인도는 자신이 부정적인 자아개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고 억압하는 활동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부정적인 자아개념과 긍정적인 자아개념이 혼재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자기 내면의 어두운 면을 극복해 밝을 면으로 향하려는 향상의 노력을 의미한다. 이러한 노력이 계속될 때 우리는 개인이 갖고 있는 한계를 뛰어넘어 시공간을 초월하는 우주적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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