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무엇을 통제해야 하는가 - 몸 (1)

인간의 마음에 담겨 있는 감정과 생각은 한 사람의 인생을 천국으로도 지옥으로도 이끌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이 마음은 개인의 본질에 해당하는 우주적 에너지인 영혼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기에 인간의 마음은 개인의 삶을 이끌고 결정하는 신과도 같다(여기서의 신은 종교적인 의미를 포함한 영적이고 초월적인 존재를 지칭하는 넒은 의미로서의 신을 말한다). 마음 그리고 영혼은 실체가 없는 자유에너지로 시공을 초월해 이동할 수 있으며 개인의 영역을 넘어 타인의 영역으로도 확장할 수 있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러한 특징 덕분에 인간의 마음은 시간을 거슬러 과거에 머무를 수도 있고, 상상을 통해 미래를 앞당겨 체험할 수도 있으며, 프로이트가 ‘무의식에 이르는 왕도’라고 표현한 꿈을 통해 이 두 가지를 모두 경험할 수도 있다. 또한 감정은 공감을 통해서, 생각은 이해를 통해서 개인 간에 공유되고 확장된다. 이러한 공감과 이해를 통해 인간은 타인의 마음을 체험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우리는 각자의 육체로 한정된 개인의 영역을 초월해 타인과의 영혼의 합일에 가까워질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몸은 그렇지 않다. 몸은 불완전하고 폐쇄적인 에너지 소비체계로서 그 기능의 유지와 개발을 위해 필요한 에너지를 외부로부터 지속적으로 공급받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몸이 실재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인 지금, 여기에 그 지각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몸의 필요에 대한 신호를 면밀히 파악할 수 없어 몸의 요구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몸의 기능에 이상이 생기기 쉽고 심각한 경우 생존에 위협을 가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몸의 관점에서 인간을 보면, 개인 간의 영역은 자신의 신체로 분명히 제한되고 이 영역은 서로 간에 결코 하나로 공유될 수도 융합될 수도 없다. 따라서 육체를 갖고 있는 인간은 언제까지나 독립된 하나의 개체로서만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몸과 마음의 뚜렷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영역이 인간이라는 유기체 안에 하나로 연결돼 통합된 상태로 존재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두 영역으로 구분된 인간시스템의 작동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무엇이 더 중요한지는 단정할 수 없다. 누군가는 육체가 있기에 마음이든 영혼이든 이 세상에 ‘나’라고 의식할 수 있는 존재가 있는 것이라 믿으며 본인의 정신 건강을 유지, 계발하기 위해 신체 활력을 증진시키는데 생활의 초점을 맞출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영혼이 육체를 선택해 이 세상에 구현되는 것이라 믿으며 본인의 신체 활력을 유지, 개발하는데 있어 내적 평온함이나 의지 같은 정신작용을 보다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다. 둘 중 어느 쪽에 공감하더라도 상관 없다. 왜냐면 둘 다 완벽히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보다 정확한 답을 말하자면, 둘 중 하나의 영역에 초점을 맞춰 본인의 내적, 외적, 시스템을 개선하려고 해도 결국, 인간 유기체는 두 영역이 분리되어 결합된 하나의 체계이므로 온전한 계발과 성장을 위해선 어떤 방법으로든 다른 한 영역에도 주의를 기울여 몸과 정신의 균형 잡힌 계발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몸과 마음 그리고 육체와 영혼 간에 긴밀한 연결 통로를 구축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인 자아실현을 협력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 이것을 바로 인간 유기체 내외의 통합, 그리고 통합된 성장이라고 부른다.

인간에 대한 이러한 통합적 관점은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 아들러(Alfred Alder, 1870~1937)의 개인심리학(individual psychology)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인간을 프로이트처럼 원초아, 자아, 초자아라는 내적 요인의 갈등으로 이해하기보다 자신의 목표를 향해 통일성 있게 나아가는 전일적인 존재로 이해하고자 했다. 그의 관점에서 개인의 삶은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서 신체, 정서, 지각, 사고를 포함하는 성격 전체의 움직임이고, 개인은 이러한 목표를 향해 일관성 있게 나아가는 통합적인 전체다. 아들러는 이러한 개인의 분리불가능성(indivisibility)에 초점을 맞춰 자신의 이론을 ‘개인(individual)’ 심리학이라고 명명한 것이다(참조: 권석만, 2012, <현대 심리치료와 상담이론>, 서울: 학지사, 4장 “아들러 심리치료”, pg. 128).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20세기에 들어와 인본주의 심리학(humanistic psychology)을 배경으로 하는 교육사조에서 전인(whole person)의 개념으로 등장, 교육에서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설정되었다. 전인교육은 인간이 갖고 있는 모든 자질 즉, 인간의 신체적, 지적, 정서적 자질 그리고 사회성 등을 조화롭게 통합, 성장시켜 균형 잡힌 전일체로서의 인간을 육성하고자 하는 교육이념이다(참조: 임재윤, 2006, <교육의 역사와 사상>, 서울: 문음사). 이러한 개념들은 앞서 언급된 몸과 마음(감정과 생각)의 통합된 연결을 정신의학적으로, 심리 및 교육학적 관점으로 이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몸과 마음의 연결과 통합은 개인으로 하여금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쳐지지 않은 진정한 의미의 종합적인 성장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일생을 통해 추구해야 할 목표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이처럼 중요한 통합적 시각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직업적, 기술적 능력과 같이 특정 자질 계발에만 힘쓰는 경우가 많고 이를 위해 다른 영역에 대한 계발 욕구를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억압 또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자의든 타의든 지속적으로 강화되는 속성을 갖고 있는데, 일단 한 번 통합적 시각을 상실하면 그 시작이 어찌되었던 간에 결국엔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개인의 성장은 점점 더 비균형적이고 비통합적인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는 한 쪽 바퀴가 없는 수레를 끌거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상황과도 같은데, 그 이유는 몸과 마음의 연결과 통합을 간과한 편협한 발달이 한 쪽 바퀴가 없는 수레를 끄는 일처럼 불가능하고,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이다. 아들러가 주장한 개인의 분리불가능성은 인간의 특정 부분만을 독립적으로 계발시키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과, 설령 이것이 가능하더라도 몸과 마음 사이에 흐르는 에너지 순환이 부자연스러워짐으로 인해 계발의 효과를 거두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래서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한 제한된 시각으로 자기계발에 뛰어든다면, 사지 멀쩡하고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젊음과 열정을 낭비하거나 병약하고 불건강한 신체에 발목 잡혀 만성적인 게으름과 사기 저하에 빠지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실제로 몸짱이 되기 위해 다이어트나 운동을 시작한다 해도 이러한 행동을 뒷받침하기 위한 동기부여나 의지가 충분하지 않다면, 다가오는 여름 날씬하고 멋진 몸매를 해변가에서 자랑하는 일은 평생의 꿈에 그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적성에 맞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학업계획을 아무리 멋지게 세우고 이에 대한 실천의지 또한 강할지라도,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실행력과 지속적으로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체력이 없다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해 마음껏 꿈을 펼치는 일 역시 잡을 수 없는 신기루가 될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진정한 자기계발을 위해 몸과 마음이 하나의 체계로 통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이를 자신의 삶에서 실천을 통해 구체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즉, 몸과 마음의 통합적 성장을 위해 매일 의식적, 의도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몸과 마음의 통합을 이루어야 할까. 아니 그보다 먼저 어디서부터 통합을 시작해야 할까. 앞서 글의 초반부에서 개인마다 몸과 마음에 대한 신념과 그에 따른 계발의 초점이 다를 수 있음을 언급했다. 즉, 사람에 따라 몸에서부터 마음으로 혹은 마음에서부터 몸으로 통합의 방향에 대한 선호와 선택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몸에서 마음으로의 통합 방향이 그 반대의 통합 방향보다 효과적이고 한편으론 불가항력적이라 생각한다.

그 이유는 인간이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움을 체험하는 영적인 존재이고, 마음의 힘으로 몸의 기능을 눈에 띠게 회복 및 향상시킬 수도 있으며, 때때로 자신 혹은 타인의 생명이 위험한 긴급상황에서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 할지라도, 이러한 경험을 지금, 여기서 할 수 있게 하는 현실적 근거가 되는 것이 바로 인간의 몸이기에 몸을 먼저 돌봐야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설령 누군가 인간의 영혼이 육신을 달리하며 환생을 반복한다는 윤회사상을 굳게 믿고 있어 이를 근거로 영혼에서 몸으로의 통합 방향을 선호한다 할지라도, 정작 그 영혼이 육신으로 들어와 ‘나’라는 인식의 실체를 구축하지 못한다면 지금 영혼의 존재를 자각하고 믿고 있는 그 누군가는 자신의 존재 근거를 상실한다. 즉, 인간의 마음은 애당초 이를 담을 수 있는 몸이 없으면 성립할 수 없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혹, 미래에는 사용 기간이 100년 남짓으로 제한된 인간의 몸을 기계나 다른 물질로 대체하고, 여기에 웹상에 존재하는 인간의 마음을 다운로드 하는 휴머노이드 기술이 개발 및 상용화될지도 모르지만, 현재까지는 정신이 존재하기 위해선 먼저 신체가 온전히 갖춰져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몸에서 마음으로의 통합 방향을 선호하고 선택했다. 그리고 이 방향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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