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Edu&Subject 2 : 개발되는 기술 vs. 필요한 기술

개발되는 기술 vs. 필요한 기술

MS 직원은 ‘기술 사용이 필요하다’ 라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기술 사용의 ‘필요’에 대해서는 교육공학 전공 교수가 (누구는 높임말을 누구는 낮은말을 쓰는 게 어색해서, 모두 낮은말로 적었습니다.) 이야기 했다고 생각합니다. 혹은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가치가 있기 때문에 필요하다’ 라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학문 세계의 기본 태도라고 할 수 있는 ‘(본질을 탐구하는) 질문’ 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는) 제안’을 더 중요한 역할로 생각하는 교육공학 전공의 교수라서 그런지 ‘제안’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분에게 ‘사실’ 이 아니라 ‘가치’에 대해서 의견을 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여, 자신의 ‘맞는’ 위치를 찾을 기회를 주는 것이 토론 주최측의 역할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질문’은 오랜 경력의 초등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나왔습니다. ‘이런 식으로, 기술을 어린 학생들에게 그대로 가져가도 되는지 모르겠다.’와 같은 우려를 담았습니다만, 토론회 주최측을 향해서 ‘질문’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분은 유일하게 남 이야기가 아닌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토론자였습니다. (본인의 경험에 기초하여 보다 풍요로운 질문을 제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토론 주최측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산으로 가지 않는 토론을 위해서 전제를 합의하고 공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번째 전제는 ‘우리가 그 기술의 효과를 사전에 알 수 있는가?’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알 수 없다’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기술, 아직 그 효과가 확인되지 않은 새로운 기술을 어린 세대에게 가져다 주면 그 아이들에게서 어떤 효과가 발생하는 지 알 수 있을까요? 앞으로 등장하게 될 기술들은 그 영역이 어디이고, 무엇을 사용하여 무엇을 대상으로 하는 기술이건 간에 동일한 특성을 가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사전에 그 기술의 효과를 검증할만한 충분한 시간을 우리가 확보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혹은 역사적으로 그러한 시대(기술이 폭발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시대를 벗어나지 않는 한, 앞으로 등장하는 기술은 ‘기술이 등장하기 이전에 상상이라도 하면서, 그 기술이 발생시키는 파장을 곱씹어볼 수 있는 시간이 모자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풀어야 하는 문제는 “검토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 기술들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기준에서 판단을 내려야 하는가?” 입니다. 우리는 분명하게 알지 못할 경우 일단 멈추어야 할까요?

두번째 전제입니다. 두번째 전제는 교육학 또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생물학의 전제입니다. 인간은 미성숙상태에서 성숙상태로 자라난다는 사실입니다. 생물학적으로 (혹은 법적으로) 말입니다.

HoloLens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홀로렌즈는 인간의 생물학적 감각 시스템을 물리적으로 조작한다기 보다는 인간의 감각시스템이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데이터를 제공하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현실 데이터를 수용하는 감각시스템에 가상의 디지털 데이터를 겹쳐서 전달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스키고글 같은 걸 뒤집어써야 하는 번거로운 기술이기는 하지만 인류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것입니다. 그런데, 10살짜리 아이에게도 좋은 경험일까요? 8살은 어떨까요? 15살은?

지금껏 인류가 확보한 과학지식에 근거하면 인간은 태어나서 꾸준히 자라나고 모든 인간을 표준화시킬 수 있는지 없는지는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개별적인 인간의 기준에서 보면 인간은 미성숙상태에서 성숙상태로 변화합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상태에 적응된 사회 시스템이 ‘교육’입니다. 어른에게 좋은 것이 아이들에게도 좋을까요?

어른에게 좋은 것이 반드시 아이들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는 것이 교육을 탐구의 대상으로 교육학의 기본 관점입니다. 물론, ‘그 경계가 몇살이냐?’ 라는 질문에는 명확한 답변은 없습니다. 자라나는 속도와 가속도는 아이들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시대(예를 들어, 풍요롭게 먹을 수 있는 시대와 그렇지 않은 시대)에 따라 자라나는 속도와 가속도가 달라지기 때문이고, 속도와 가속도를 측정하는 기술과 방법이 달라져 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생물학적으로 몇 살을 경계로 해야할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어른에게 좋다고 해서 아이들에게도 당연히 좋지는 않다는 것이 생물학에 근거한 교육학의 전제입니다. 이 전제 역시 우리 토론의 전제이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좋은 홀로렌즈는 무엇일까요?

생물학적 감각 능력이 자라나는 속도와 가속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또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10살짜리 아동을 위한 홀로렌즈는 어떤 모습일까요? 인지능력의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제공할, 10살짜리 아동을 위한 코타나는 어떤 모습일까요? 현재의 코타나와 홀로렌즈의 교육적 사용에 대해서 [사용하자] 와 [사용하지 말자]의 직선 위에서 위치를 정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현재의 코타나와 홀로렌즈는 교육적으로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육적으로 설계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그게 현재의 생물학과 교육학의 한계’이기 때문입니다.

One clap, two clap, three clap, forty?

By clapping more or less, you can signal to us which stories really stand 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