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Edu&Subject 3 : 두 개의 평면과 하나의 공간

두 개의 평면과 하나의 공간

교육계에서 특히, 가르치는 측의 입장에서 보면 [(가르치는 데 혹은 배우는 데 도움이 될테니) 사용하자] vs [(가르치는 데 혹은 배우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으니) 사용하지 말자] 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교육계를 벗어나서 일반적인 어른들의 세계에서 생각해보자면, [(일하는 데 도움이 될 테니) 사용하자] vs [(일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으니) 사용하지 말자] 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기 할 일에 도움이 될지 되지 않을지는 사용자 본인이 판단하면 됩니다. 혹은 팀이나 조직 단위에서 판단하면 됩니다. 다자간 토론, 결과를 남겨 사후적으로 공유해야 하는 토론에서는 만나서 얼굴보고 하는 토론보다 이메일이나 협업지원 시스템이 더 도움이 되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이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성인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에 비해 교육계는 교사 본인이 판단할 수 있는 선택의 범위가 그리 넓지 않습니다. 수업 활동을 명확하게 실무적으로 도와주는 기술을 제외(할 수 있다면 제외)한 뒤, 그 기준에 의해서 제외되지 않는 대부분의 기술은 ‘그 교육적 적용여부’가 검토의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검토 결과가 긍정적이지 않다면 사용하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디지털 교과서가 그렇고, 자유발행되는 역사책이 교재가 될 수 없는 것이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수 많은 기술들 중에서 왜 특정한 기술이 교육적 판단 즉 의사결정을 위한 토론의 대상이 되는지는 자명합니다. 특히 그 기술을 개발하는 측에서는 그 기술을 교육적으로 사용하려는 계획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적 토론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역시 자명합니다. 예를 들어,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의 직원이 나와서 [사용하자] 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있어야 하는 이유, 즉 이번 토론회에 소프트웨어 개발회사의 직원이 참석하여 특정 기술 사례를 소개하는 것이 허용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 기술이 만들어내는 사회적인 변화가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사용하지 않더라도 학생들 대부분은 그 기술을 사용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회사가 ‘교육적으로 사용할 것을 목표로’ 그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교육적 논의의 대상으로 그 기술들을 다루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론, 교육이 ‘인간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의 특수한 형태’에 불과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인간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에 영향을 주기 위해 개발되는 기술은 모두 교육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교육적으로 검토할 가치가 있는 기술인지, 그럴만한 가치는 없어 보이는 기술인지를 논의하기 전에, ‘특정 기술이 교육적인 검토의 대상이 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술은 ‘교육적인 맥락과는 무관하게, 앞으로도 계속, 등장할 것’이라는 점을 교육계에서도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교육계가 미래의 교육 매체에 대해서 어떤 논의를 하건 말건, 종이책보다 효과적으로 지식을 저장하고 전달할 뿐만 아니라 그 저장과 전달 과정을 더욱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술은 끊임없이 개발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식과 정보를 뇌에 직접 전달하는 기술은, 초중고등학교 교육에서는 논란이 되어 그 적용이 지체될 수 있겠으나,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흔히 평생교육이라고 부르는 세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입니다. 누가 긴 시간을 투자하며 재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며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려 할까요? 교육계에서 어떤 논의를 진행하건 성인들은 정보를 다운로드 받으려 하지 않을까요?

질문을 몇 개 더 만들어 보겠습니다.

사용해야할까요? 사용하지 말아야할까요?

사용해야 한다고 말해야 할까요?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라고 말해야 할까요?

사용할 필요가 있다 라고 말해야 할까요? 사용할 필요가 없다 라고 말해야 할까요?

혹은 ‘지금은 판단하기 어려우니 좀 기다려보자’ 라고 말해야 할까요? (분명하지 않다면 일단 멈추어야 할까요?)

우리가 내릴 수 있는 답변은 하나로 보입니다.

“그들이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미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그러한 기술들을 사용하지 못하게 할 수는 없다. 단지 그들이 발달해가는 과정에서 획득해야하는 기본적인 능력의 획득을 방해한다면 그 사용을 제한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 방해 여부를 알 수 없다. 가급적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그 방해 여부가 확인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미래 사회를 살아갈 우리의 아이들에게 현재 제공해야 하는 교육적으로 유의미한 활동/경험이 무엇인지 우리가 아직 분명하게 알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우리의 의사결정을 제한한다는 점도 인정하고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의사결정을 해야 할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자원을 배분하고 에너지를 소모하기 전에 풀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사실 이게 이번 토론에서 또는 앞으로 한동안 진행될 유사한 토론에서 제가 선택한 저의 위치입니다. 누구는 실행자의 입장에 서서 사실과 가치를 유통시키고, 누구는 기획자의 입장에서 서서 사실과 가치, 그리고 계획을 유통시킵니다. 전쟁이라고 치면 말단 병사와 장교, 그리고 그 위의 존재들이 해야할 말이 달라야 하지만, 사용하는 단어와 문장이 오해를 만들면 안됩니다. 그럼 죽을 테니까요. 저의 질문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이 현상을 다룰 단어와 문장을 찾을 수 있을까?”

지금의 답변은 ‘지금 이 상태로는 찾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찾아야 한다’ 입니다.

토론에서 다루는 현상(기술의 교육적 사용)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과 여러 집단이 정보를 공유하고 입장에 합의하고 합의한 실행계획을 함께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100% 동일하지는 않더라도, 정보의 유통과정에 심각한 오해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것을 보장할 만큼의 ‘공유되고 합의된 단어와 문장’이 필요합니다. 속된 말로, ‘아! 라고 말하면 아!라고 전해져야 합니다. 아!라고 말했는데 뭐! 라고 하면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말을 섞으려는 노력조차 무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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