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만난 사람

맞다. 면없는 우동 국물을 안주로 소주 몇 병에 취하면서 내 삶이 얼마나 재미없는지 내 상사는 얼마나 엿같은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이런 얘기는 아내에게도 할 수 없고, 기밀유지 서약서 때문에 글로 쓸 수도 없다. 유일하게 얘기라도 꺼낼 수 있는 상대는 직장동료인데 꺼내고 나면 더 깊고 어두운 심연의 공이 네트를 넘어 날아온다. 이런저런 이유로 내 친구들은 거의 대부분이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인데 이런 얘기를 영어로 바꾸면 굉장히 짧아진다. 늘 나에게 이번 주 어떻게 보냈냐고 물어보는 이 친구들에게 ‘늘 같지 뭐’ 라고 대답할 수 밖엔 없었다. 그들도 즐겨야 하는 주말이니까. 또 내 영어 실력이 안되니까.

세바스찬이라는 캐나다에서 온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티머시라는 친구의 고등학교 친구로 서산에서 영어 선생님으로 있는데 매주 주말 서울에 올 때마다 늘 우리는 웃고 춤추고 즐겁게 떠들고 술마신다. 토요일 이태원에서 홍대로 가는 택시 안에서 세바스찬은 자신의 직업과 언어에 대한 아이러니에 대해 늘어놓았다. 한국어를 정확하게 구사하는 것에 굉장한 열정을 가지고 있는 그는 학원에서 주로 4–12살의 학생들을 상대한다. 언젠가 숙제 검사를 하고 있는데 어떤 아이가 숙제를 해오지 않아서 다음에는 제대로 해오라고 했더니 그 아이는 한국말로 무엇인가 말했다고 한다. 마침 그 교실에 있던 한국인 선생이 그 소리를 듣고 그 아이에게 큰소리로 질책하며 혼냈다고 한다. 세바스찬은 그제야 아이가 욕설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몰랐단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하는 말을 이해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놀라며 절대 아니라고 했다. 아마 알게 되면 큰 상처가 될 수도 있고 그럼 아이들이 싫어질 거라고 했다. 그런 일들을 나에게 주절주절 설명하는 것을 듣고 대화하면서도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속시원히 말할 수 없는 내 영어실력이 한심스럽다고 느꼈다.

그리고 이해한다. 나 역시 고객과의 통화가 싫어질 때가 있다. 고객들이 하는 말의 행간의 뜻까지 정확하게 이해할 때마다 전화기를 집어던지고 싶은 순간들이 분명하게 있다. 사실 내 친구들은 굉장히 잘 들으려고 하고 배려해주지만 난 그들이 하는 것처럼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이런 이야기를 가만히 고개 끄덕여 들어줄 그런 사람이 없다.

‘런던 시계탑 밑에서 사랑을 찾을 확률’이라는 말도 안 되는 영국 로맨스 코미티를 보며 하이라이트에서 울어버린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매주 주말마다 나가서 누군가를 만나고 얘기하고 웃고 춤추지만 메워지지 않는 마음속 공허함은 술로도 쉬이 메워지지 않는다. 결국 내 편이 있다는 것이 사람을 안도하게 하는 것이다. 나이가 어릴 때도 지금에 와서도 내 편을 찾는 것이 마치 하나의 판타지처럼 느껴진다.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내가 하는 헛짓거리에 맞장구치며 좋아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물론, 가족을 찾는 것이 아니다. 가족은 그런 헛짓거리를 끝내고 내가 돌아갈 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이어야 한다. 물론 내 역할도 동일하다. 나의 미친 짓에 맞장구치는 것이 아니라 헛짓거리에서 붙은 먼지들을 툭툭 털어주어야 하는 사람들이 가족이다. 혈연관계로 이어져 있든 아니든 그런 존재도 필요하다. 나는 그런 존재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으니 그 이전에 나의 미친 짓에 동조해 줄 사람부터 구해보고 싶은지도 모른다. 한 가지 일을 십여 년 정도 시도했는데 아직 실패인 것으로 보아 성공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술로 메운 구멍은 술이 깨는 순간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무방비로 노출된 자신의 모습에 놀란다. 매주 일요일 오전과 오후 사이에 벌어지는 일이다. 애써 돈과 시간을 소비하며 채워놓은 구멍이 무너져 내리고 나면 조금의 허탈함과 차주 토요일에 같은 짓을 해야 하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온다. 하지만 다음 주에는 별로 친하지 않은 아는 사람의 생일파티가 있고 조금은 뭔가 다를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해야 한다. 그런 곳에서 수염이나 매만지면서 서있을 수는 없으니까.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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