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홍콩을 다녀왔습니다. — 1일차(끝)

6/19 일요일 홍콩여행 1일차
드디어 홍콩 시내로 나왔다.



홍콩 숙소에 도착하는 데 무려 12시간이나 걸렸다.

숙소에 짐을 풀고, 우선은 그래도 나 혼자 자는 방이 아니기 때문에 이후에 어떤 사람이 들어올 지 모르니까 최대한 내 물건들을 캐비넷에 넣어두고, 샤워를 얼른 하고 나왔다. (막상 한국에 와서 보니 화장실 사진이 없다. 엄청 깔끔했는데) 이미 출발한 지 12시간이나 지나서 거뭇거뭇 자란 턱수염하며, 얼굴에 개기름을 어휴, 얼굴도 초췌하기 그지없어서 씻고 상쾌한 기분으로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습도 85%를 자랑하는 날씨에 상쾌함이란 게 존재 할 수가 없었다.

들뜬 마음으로 호텔 로비를 나서자 마자, 무거운 증기로 몸을 코팅당하는 느낌이었다. 푹푹 찌고. 하아… 왜 지금이 비수기인 지 절실하게 느껴지는 시작이었다.

호텔 건너편 거리에 있던 1881 헤리티지. 쇼핑몰 + 호텔 이라고

호텔을 나서서 8시에 시작되는 심포니 오브 라이트를 보기 위해 스타 페리 선착장 쪽으로 향했다. 시간이 거의 40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지만 거리상으로 5분이면 갈 수 있었기 때문에 우선 목을 축이기로 했다. 기내에서 마신 음료 이후로 거의 2시간동안 아무것도 마시지 못한 데다, 이 푹푹찌는 날씨에 땀을 흘린 만큼 마시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자주 이용하게 될 허유산

출발하기 며칠전부터 그냥 틈틈이 홍콩 여행을 알아보며 발품 팔던 중, 홍콩 가면 뭐 먹어? 이런 글이 있어서 봤던 내용이

그냥 밥은 맘에 드는 거 아무거나 다 먹고, 길에서는 항상 허유산이나 에그타르트 입에 달고 있었던 듯.

이라는 글을 봤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찾은 곳이 허유산. 주로 파는 것이 망고 주스. 그 외에는 망고 푸딩, 망고 빙수 등이 있는데, 망고 주스 종류만 해도 열 댓 가지는 되는 것 같았다.

A3 를 주문

그냥 허유산이 괜찮다는 정보만 보고 간 상태라 그냥 제일 화려해 보이는 A3로 시켰다. 매장 안에서 주문하면 밖에 나가서 기다리라고 한다. 처음에 나는 밖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주문하려고 기다리는 사람인 줄 알고 뒤에 서 있었는데, 종업원이 바깥까지 나와서 어떻게 한 명씩 다 기억하고 주스를 나눠주더라. 여튼 기분이 새치기 하는 것 같았지만, 인파를 다 제치고 나도 주문하는 데 성공. 주문할 때 보니 옥토퍼스 카드로도 결제 가능한 것 같았다. 처음에 나는 만들어온 은련카드로 결제하려고 했는데 긁어보더니 이건 안된다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냥 현금으로 결제.

앞으로 받침대로 자주 쓰일 여행책

얼마 기다리지 않으니, 바깥까지 나와서 건네 주신다. 오오 색깔 봐.

우선 맛은 차치하고 시원한 걸 먹는다는 게 너무 좋았다. 얼음같은 건 없었지만 충분히 시원했다. 근데 안에 들어있는 젤리가 좀 계속 거슬리긴 했는데 너무 더워서 100걸음도 못 것고 비워버렸다. 저 초록색부분보다 노란색 부분이 훨씬 맛있었다. 흰색부분은 아예 기억이 안나. 첫 시작이 나쁘진 않았다. 홍콩 음식.

심포니 오브 라이트를 보러 시계탑 광장으로

거의 8시를 15분 정도 남기고 시계탑 광장에 도착했는데 벌써 이미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난간에 자리를 잡고 준비하고 있었다. 저 시계탑은 원래 근처에 홍콩-중국을 연결해주던 구룡역이 있었는데 다른쪽으로 옮겨가면서 역은 철거되고 그 자리에 시계탑만 상징적으로 남아있는 것이라 들었다.

홍콩섬 빌딩들

낡은 아이폰으로 야간사진 찍기에는 노이즈가 너무 자글자글하네… 이제와서 후회중. 아직 해가 조금 덜 지기도 했고, 8시가 되지 않아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반대쪽에 있는 홍콩섬 빌딩들을 보면서 내일은 저기에 직접 걸어다니겠구나 생각을 하며.

어떻게 어떻게 인파속에 자리를 잡아서 계속 기다리는 중.

지난 미국여행 때는 해당 도시에 가면 꼭 보려고 했던 것들이 몇가지 있었다. 박물관, 미술관, 야경. 그런데 8개 도시를 여행하면서 매번 박물관, 미술관을 다니니 감상 능력이 손톱만큼도 없는 나는 점점 지칠 수 밖에 없었고(도슨트가 있거나, 한국어 해설이 있는 경우는 그나마 나았다). 그래서 마지막 도시인 뉴욕에서는 그런 일정을 다 빼버리고 그 시간에 햄버거나 사먹었었다. 그러나 야경은 항상 볼 때마다 좋았던 것 같다.

야경도 보기 전에 굉장히 기대가 됐다. 특히나 높은 곳에서 보는 게 아니라 바다를 가운데 두고, 섬쪽 마천루에서 펼쳐지는 야경이라니.

심포니 오브 라이트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는데 백문이 불여일견!

기다리던 8시가 되었다.

내 폰은 너무 구려서… 하늘에서 막 레이저 나오는 데 안 잡힐 뿐이고… 싫고… 아이폰 조리개값 너무 낮은게 아닌가… 너무 어둡게 나왔다 ㅋㅋㅋ

처음에는 진짜 분위기가 좋았다. 거리에 음악이 나오는데 반대편에서는 그 음악에 맞춰서 마천루의 불들이 켜졌다 꺼졌다 박자를 타는게. 근데 이게 생각보다 금방 질렸다. 누군가는 심포니 오브 라이트가 너무 좋아서 3일 연속 보러 갔다는 데 그 정도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그나마 제일 잘나온듯
레이저 나가는 거 보이게 겨우 찍은 사진

언젠가부터 기대치를 너무 높이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게 될 때가 자주 있었는데, 심포니 오브 라이트를 보면서도 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야경 자체는 엄청 좋았지만, 그게 막 음악이랑 어우러진다거나 그렇지도 않고 기승전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ㅋㅋㅋ.

그렇다보니 지겨워서 쇼 시작후에 3분 27초까지 사진을 찍다가 그 이후로 피곤이 몰려와서 자다 깨다 하고 사진도 더 이상 찍을 게 없었다. 같은 풍경의 반복이었고.

졸면서 계속 있는 내가 한심하고 지겨워서 다른 데 가기로 했다. 아직 쇼가 끝나지 않아서 그런지 난간에는 사람들이 여전히 반대편 풍경을 찍고 있다. 위 사진은 침사추이 프롬나드 길.

이제는 어디로 갈까 하다가 우선 저녁을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콩섬을 넘어가야 기본적으로 맛집이 많지만 오늘은 피곤하기도 하고 우여곡절이 많아 침사추이 안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들고있는 가이드북에서 찾은 성림거 라는 운남식 쌀국수 집이 현지인들도 자주 찾는 맛집이라고 해서 찾아가 보기로 했다.

그 사이를 못 참고

너무 오래 안 먹은 탓인지 당 떨어지는 신호가 왔고, 길을 가던 중 거리에 아이스크림 트럭이 있었는데, 거기에 또 주문하는 사람이 많길래 본능적으로 아까 허유산에서 잔돈으로 받은 동전을 주머니 속에서 짤랑거리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알고보니 그냥 단체 손님이었다, 유명한 게 아니었어) 너무 덥기도 했고, 목도 축일 겸 9 HKD 바로 지급!

아이스크림!

맛있었다. 그치만 특별하진 않고 맥도날드 아이스크림 생각하면 될 듯. 이럴 거면 진짜 맥도날드를 갔으면 더 싸게 먹었을려나.

또 손에 들고 얼마 안 가 다 먹긴 했는데, 이 날씨엔 진짜 너무 더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밤 9시가 다 되어 가는데도 30도는 족히 되는 것 같았다. 거기에 습도가 하아…

저녁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곳

사진을 찍으면서 난 곧 저녁을 먹겠지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으나, 가이드북에서 말해준 위치 주변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여기서 거의 15분 넘게 낭비했으나 결국 찾지 못했고, 그래서 스마트폰으로 검색했더니 전혀 다른 위치에 있었다.

이 때부터 솔직히 가이드북에 대한 신뢰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루하루 지날 수록 거의 못 믿게 되어가고…

네이버 블로그를 찾아서 겨우겨우 도착했고, 메뉴는 이렇게 생겼다.

필요한 부분에 체크를 하면된다.
제일 위에 H1, H2 중에 하나를 고르면 되는데 H1은 국물 있는 국수, H2는 국물 없는 차가운 쌀국수였다.
A 부분에 있는 아이들은 어묵이나 소시지 같은 추가 재료, C는 매운맛 강도, D는 신맛 강도, E는 그 외 요청사항.

내가 고른 조합은 국물 있는 쌀국수에, 소고기 완자, 게살 완자, 약간 맵게, 신맛 없이, 고수 빼고(이게 중요). 이렇게 주문서에 체크를 하고 보여드렸다.

고수를 도전해보고 싶었지만, 굳이 내가 직접 내 여행을 망칠 필요도 없었다.
비주얼은 볼품 없을지 모르나

진짜 맛있었다.

홍콩여행 내내 이 쌀국수보다 맛있는 한끼를 먹은 적이 없다. 진짜 뻥 안치고 내가 먹어본 국수 중에 제일 맛있었던 것 같다. 물론 엄청 배고픈 상태에서 먹은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그걸 차치하더라도 인생 국수였다. 국물, 면 완벽했다.(소고기 완자는 좀 질겨서 별로였지만, 또 게살볼은 엄청 맛있었다) 누가 홍콩 간다고 하면 한 끼 정도는 여기서 먹는 걸 추천해주고 싶을 정도다.

가격이 잘 생각이 안나는데 저 메뉴판 대로면 38 HKD 쯤 했던 것 같다. 우리돈으로 5700원 정도? 이정도면 진짜 가성비도 최고. 배도 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게살볼 히트다

밥을 먹고 나와서, 여긴 진짜 홍콩이구나 싶으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분위기가 진짜 으스스한 건물이 있어서 봤더니 청킹맨션이었다.

청킹맨션

청킹맨션과 옆에 있는 미라도 맨션은 오래되기도 오래 됬고 예전에는 범죄도 자주 일어나고 그런만큼 치안도 안좋다고 하던데, 그래서 입구쪽으로 잠깐 들어가봤는데 분위기가 으스스해서 바로 나와버렸다. 지금은 리뉴얼하고 블링블링 해진 것 같지만 내부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청킹맨션을 빠져나와서 침사추이 주변을 잠시 구경하려고 걷고 있는데, 주변에서 자꾸 중동사람들이 말을 건다.

시계있어요. 가방있어요.
짝퉁시계 짝퉁가방 사가요

유독 침사추이 대로를 중심으로 특히나 저 청킹맨션하고 미라도맨션 주변에만 가면 한국사람인지 어떻게 알고 자꾸 가짜 시계랑 가짜 가방을 권한다. 여행 가기전에 미리 들어본 내용이었는데 실제로 겪게 되니까 좀 당황스러웠다. 그냥 무작정 눈 안마주치고 됐습니다 괜찮습니다 라고 한국말로 거절한 나도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웃긴 것 같다.

침사추이 주변 걸어다니면서 찍은 사진들

계속 걷다가 다리도 아프고 해서 너츠포드 테라스 쪽만 갔다가 숙소에 돌아가기로 했다.

너츠포드 테라스 사진

너츠포드 테라스는 약간 뒷골목 같은 곳에 위치해 있는데 여길 들어가면, 홍콩같지 않고 이태원 같은 분위기의 펍이 많이 있었다. 그렇게 시끄럽지도 않으면서, 특히나 서양인들이 많았던 것 같다.

너무 피곤해서 술먹어야겠다는 생각이 안들었고, 일단 내일을 위해서 체력을 비축해야겠다는 생각에 얼른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방에 들어 갔을 때 누군가 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반, 혼자 편하고 자고 싶다는 생각이 반이었는데, 도착해서 문을 열어보니 아무도 없었다. 아쉽기도 했고 안도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너무 피곤해서 바로 침대에 쓰러졌고, 11시쯤 잠들면서 첫째날이 지나갔다.

첫째날 좀 더 활기차게 홍콩에서 시간을 오래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주중으로 맞춰놓은 핸드폰 알람이 이렇게 큰 나비효과를 가져올 줄 몰랐다. 이런 것도 다음엔 분명 경험이 되겠지.

홍콩 첫째날.

3일치 숙박비 $1188 
옥토퍼스카드 $150
허유산 $39
아이스크림 $9
성림거 쌀국수 $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