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에서 탈출하기

“등 떠 밀려서 여기 온 사람, 손들어 봐요?”

방송아카데미 강의 첫 날, 던지는 첫 질문이다. 만만치 않은 등록금을 내고 꿈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찾아온 친구들이다. 아무도 손들지 않는다. 대신 눈을 반짝이며 한 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결의와 열정이 강의실에 넘친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도 2달이 지나면 크게 달라진다. 등 떠밀려 온 듯, 마지못해 강의에 임하는 친구들이 많아진다. 주 5일 하루 8시간의 강의와 넘쳐나는 과제의 압박이 주는 당연한 결과다. 그런데 최근 몇 학기 동안을 되돌아보면 강의실 분위기가 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학기 시작부터 조는 친구들이 눈에 게 늘고, 기대 이하의 과제물을 제출하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날이 갈수록 변해가는 강의 분위기와 학생들의 태도를 고민하던 중 ‘왜 헬조선이라고 하는가?’라는 설문조사를 하게 됐다. 원고지 3,4장 분량으로 각각의 의견을 써서 제출한 설문지의 내용은 강의 분위기와 학생들의 태도를 탓했던 나를 부끄럽게 했다.

‘최저시급이 6050원이지만 지켜지지 않는다. 시간당 5700원 받으면서 48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다. 교통비가 또 올랐다. 광역버스비가 시급의 반이다. 통신비는 7만 원 쯤 나오는데 주변 사람들 보면 평균이다. 주말에만 알바를 할 수 있으니 20만원 후반에서 30만원 초반의 돈을 받는다. 식비를 빼도 빠듯한 가계 사정이다. 그래서 도시락을 싸서 다닌다. 그래도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등록금을 부모님이 다 대주셨다. 친구는 학교 다니면서 학원 알바, 학교에서 하는 근로 장학생 알바 2개를 했는데도 지금 갚아야할 대출금이 남아있다. 우리는 시작점이 제로인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세상을 산다. 꿈을 꾸며 살 여도 없다. 잠잘 시간도 쪼개서 취업하고 이직준비를 한다. 생존하기에도 벅차서 꿈을 따라갈 수가 없다.’

방송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대학 재학 중이거나 졸업을 한 학생들로 4백만 원에 가까운 등록금을 내야한다. 풍족하지는 않아도 먹고사는데 문제없는 대부분 중산층 집안의 학생들이다. 그런데 58명 전원이 알바 경험이 있었고, 그 중 학비를 벌기위해 알바를 한 학이 16명이었으며, 방송아카데미에 다니면서도 알바 하는 학생도 8명이나 됐다. 한 친구는 대학 다니는 동안 등록금을 벌기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아르바이트를 했다. 마지막 학기 논문준비며 공부와 병행하려다보니 힘들어서 하나를 포기해야 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택한 건 아르바이트였다. 공부는 못해도 졸업 할 수 있지만, 등록금 없으면 졸업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대학생들이 주변에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다. 그런데 이렇게 퍽퍽한 삶을 살아가는 20대 중반의 취준생들이 힘들어 하는 건, 최저 인건비에도 못 미치는 시급이나, 학비를 직접 벌어야 하는 자신의 환경 때문이 아니다.

한 친구는 엄마 친구 분과 식사 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말했다.

“취업 힘들지 않니? 요구하는 것도 많고…”

엄마 친구 분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격한 동의를 했다고 했다. 그러자 엄마 친구 분이 이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고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저항성이 부족해. 사회가 불합리하단 걸 알면 시위라도 해야지.”

엄마 친구 분의 이야기에서 2가지의 헬조선을 실감했다고 했다. 하나는 지금의 취업난을 긍정하는 것에서, 두 번째는 취업난의 돌파구를 결국엔 젊은이들에 전가하는 것에서 느꼈다고 했다. ‘사회적 이슈에 대한 시위. 예컨대 성소수자 운동과 수요 집회에 우리가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는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정당하다. 그러나 취업난과 경쟁구조에 대한 저항은 젊은이들 이전에 기성세대가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은 명백한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만든 나이 먹은 세대들은 책임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런 사회구조에서 헬조선을 느끼고 나이 먹은 세대들의 말에서 느끼고, 엄마 친구 분에게 아무 말도 못한 스스로에게서도 느낀다고 했다.

나를 포함한 나이 먹은 세대들은 젊은 친구들에게 더 이상 ‘젊은이들이 꿈보다 돈에 연연한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돈에 연연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나이 먹은 세대들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이 먹은 세대들이 만들어 논 불합리한 사회구조에 끼워져 허우적거리는 젊은이들은, 열정을 고사키는 사회구조를 만들어 놓고 열정을 가지라고 한다는 원망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설문 조사를 끝내고 학생들의 처지를 조금 더 알게 됐다. 알게 된 이상 그냥 넘어갈 수 없어, 강의 중 학생들에게 맹자의 말씀을 소개했다. 그리고 나이든 세대의 한 사람으로 변명일 수도 있고 핑계일 수도 있는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맹자께서 제선왕에게 일러 말씀하시었다.

“왕의 신하 중에서 지금 초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죠. 그 사람은 사신으로 가있는 동안 자기 친구에게 처자식을 돌봐달라고 부탁하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초나라에서 돌아와 보니 그 처자식이 모두 추위에 떨고 아사지경이었습니다. 이 경우 왕께서는 그 신하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나는 그 신하를 버리고 다시는 기용하지 않을 것이오. 자기 친구를 분별하는 능력도 없고 처자를 추위에 굶주리게 하였으니 나의 신하의 자격이 없소이다.”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그렇다면 또 왕의 군대를 통솔하는 참모총장격인 장수가 사졸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선왕은 말하였다. “나는 그 장수를 해임시키겠습니다.”

말씀하시었다. “그렇다면 또 국내 사경四境 전체의 민생고가 가중되고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말문이 막힌 왕은 좌우를 둘러보며 딴청을 하였다. — 도올 김용옥 ‘맹자, 사람의 길’ 양혜왕 하 190p

도올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구절에 깔린 논리구조는 이와 같은 것이다. 첫째 인륜에 의하여 처자식은 남편에게 위탁된 것이다. 따라서 남편은 처자식의 안위에 관하여 상황여하를 불문하고 책임이 있다. 둘째 군대의 장군에게는 왕권에 의하여 사졸이 위탁된 것이다. 장군은 상황여하를 불문하고 사졸의 안위에 관하여 책임이 있다. 셋째도 마찬가지이다. 나라와 백성의 안위와 복지를 지키지 못하면 최고의 지도자는 혁명되어야 한다. 더 이상 천명을 수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민의 안위와 복지가 지켜지지 않는다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국민으로서 위중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맹자는 그런 상황이라면 혁명을 해야 한다고 했다. 젊은 세대들의 처지를 배려하지 않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젊은 세대들이 나서서 젊은 세대들을 위한 세상으로 혁명해야 한다. 혁명이란 헌법의 범위를 벗어나 국가 기초, 사회 제도, 경제 제도, 조직 따위를 근본적으로 고치는 일을 말한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겠다고 헌법을 벗어나는 어마어마한 일을 할 필요는 없다. 헌법 안에서 세상을 뒤집을 혁명을 하는 방법이 있다.

링컨은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고 했다. 투표가 혁명이다. 투표의 결과로 세상은 바뀐다. 그런데 선거 때마다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젊은이들의 투표율이 형편없이 낮다는 것이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계속 낮아진다고 한다. 젊은이들을 내팽개치고 있는 지금의 사회구조는 어쩌면 젊은 세대들이 스스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투표로 자신의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그러니 나이 먹은 세대들이 세상을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자신들만을 위한 세상으로 바꾼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유일한 방법, 혁명의 수단은 선거다.

어른들 믿지 마라. 그대들이 나서라. 응답하라 2030… 당신들의 한 표로 스스로 세상을 바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