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보고 묵상하면서 사는가?

오늘날 세속화된 세상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두려워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은 골리앗을 상대하려고 했던 사울과 이스라엘 백성을 연상케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상실했기에 — 골리앗이 너무 거대해 보이고 커 보인다.
믿음으로 골리앗 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기에 — 영적 중풍에 시달리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묵상이 없기에 — 골리앗을 묵상하며 기죽는 것이다.
(전도와 선교가 안 되는 수백가지 이유를 대면서 기죽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 속에서 신앙생활이 얼마나 힘든지만 생각하면서 기죽어 있는 것이다.)
이런 때에,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골리앗을 추격하는 거룩한 전사들이 필요하다.
크고 위대하고 전능하신 하나님 밖에 안보이는 — 하늘의 능력으로 사로잡힌 전사들이다.
시냇가에 무릎을 꿇고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고르는 그리고 힘차게 그 골리앗을 향하여 믿음으로 돌진하는 하나님의 특공대가 필요하다.
알다시피 — 이스라엘은 그날 엘라 골짜기에서 전쟁의 패배로 인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완전히 잃어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새에게 다윗을 그 곳으로 심부름을 보내게 하시고 — 베들레헴 들판과 골짜기에서 영적으로 단련된, 하나님의 마음의 합한, 젊은 특전사 다윗을 그 전쟁터에 파견하신다.
아직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하나님의 젊은 청년 다윗은 그 엘라 골짜기에서 — 거인 골리앗을 본 게 아니라 —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을 본다.
그리고 말한다.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삼 17:26)
그의 눈에는 대단히 크고 무서운 그리고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두려워하는 골리앗이 안 보인다.
오직 그의 믿음의 눈에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보인다.
그리고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추격한다.
돌진한다.
그리고 물리친다.
그대의 눈에 무엇이 보이느냐? 그리고 무엇을 묵상하면서 사는가?
무엇이 보이는가의 따라, 묵상의 대상에 따라— 그대의 운명이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