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고 이야기하기와 알면서 모르는척 하기.

talking layman or ignoring expert

“위악은 위선보다 나쁘다.”라는 말이 있다. 알듯 모를듯한 이 문장을 되뇌면서, 남을 인식해 자신을 포장하는 거짓(僞)의 허무함과 불편함에 대해 생각한다. 한편, 선과 악을 알고 모름으로 치환해 보는 유희를 즐겨본다. 아무래도 ‘안다'는 것은 긍정적인 이미지니까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것은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 것보다 나쁘다.” 정도가 될터.

알면서 모르는 척 한다

아무래도 저것은 ‘지식인’, 혹은 ‘당사자'의 <침묵>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반대로 ‘문외한’의 <문제제기>는 아무래도 무게가 떨어지기 마련. 하지만 이러한 ‘문외한'의 <문제제기>가 “귀를 기울일 가치가 없다”라고 잘라 말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시사in 기사(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8367)를 보고는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논의가 활발히 일어나야 내부 고발자도 늘어나고, 전체적으로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다.

일방적으로 “최류탄 제조자가 나빴네", 혹은 “그게 우리랑 뭔 상관이냐?”, 라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로 여겨야,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비슷한 이야기로,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구글이 ‘빅브라더의 텔레스크린'이 될 능력은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글의 표어가 “악해지지 말자 (Don’t be evil)”이라는 것은 다른 표어가 있는 것보다 아주 조금이나마 심리적 안정감을 유발하는 효과가 있다.

from http://pjmedia.com/lifestyle/2013/10/16/dont-be-evil-or-whatevs/

지금은 어떨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대학에서 공대생의 기본 교양 커리큘럼에는 “과학 철학”과 관련된 과목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치 중고등학생 시절 “도덕"과 같은 느낌이 드는건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그 커리큘럼을 짠 사람은 이러한 고민을 (앞으로 기술의 영역을 담당할 공대생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사실, 문제제기를 “전문가"만 해야 한다는 관점은 그 자체로 굉장히 권위적이다. 게다가 해당 사안이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이상 대부분의 사안에 대하여 우리는 직간접적 ‘예비 당사자'니까.

“전문가"의 사회적 역할은 ‘자신의 양심에 따른' 의사표현과 함께, 오히려 저러한 문제 제기 이전에 “문제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도”를 높여주기 위한 끊임없는 <눈높이 정보제공>이 아닐까 싶다.

정보의 부족이 가져올 수 있는 예를 하나 들어보자. 나도 전문가는 아니지만, 올해 노벨 물리학상에 빛나는 ‘신의 입자’ 힉스 입자는 원래 ‘Goddamn Particle’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출판과정에서 (편집자에 의해) ‘Damn’이 잘려 나가 버려 “God Particle”로 변신. 그러니 처음 이름을 지었을 때의 의도와 언론이 뻔질나게 “신의 입자"라고 반복해 보도하는 가운데, 우리가 받아드리는 뉘앙스가 다를 수 밖에.

난, 우리사회가 <문제 제기>는 누구나. 거기에 따르는 <전문적 논증>은 “전문가들끼리 검증된 논거를 이용해 치열히 싸우되,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눈높이로 각자의 입장을 풀어내는 논증”으로 이루어 졌으면 하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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