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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중독’과 ‘강박’

‘게임 노동’의 담론의 확대 및 전개, 그리고 현제의 게임 ‘중독’ 논쟁에 대입하여 보고 더 나아가서 시뮬라시옹까지 끌여들여 보는 실험적 담론.


(게임 노동 http://leviathan.tistory.com/1798 )


한국에서는 게임 중독에 대한 논의가 진행중이다, 아니 ‘마녀사냥’이 한창진행중이다. 게임 ‘중독’ 담론이란 규제를 행하는 행위자나 그 규제를 받는 대상이나 하나같이 똑같은 방식으로 경기를 일으키는 거대한 히스테리에 불과하다. 게임은 영유아나 하는 것이라면서 진심어린 헛소리가 소위 입법전의 방청회에서 열리는가 한편, 게임을 마약물질로 규정하려면 게임 만드는 단계에서부터 우리를 잡아가라는 히스테리성 일갈이 개발자 사이에서 튀어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양극론-게임은 중독물질이다, 아니다- 사이에서 본질적으로 중요한 의문은 제기되고 있지않다;게임 중독 상태란 무엇인가?

우리가 ‘중독’을 언급할 때는 마약류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마약의 중독이란 본질적으로 가역적이면서 수학적이며 완벽하게 논리적이다;마약을 복용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은 마약 중독 상태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게임 ‘중독’은 어떠한가? 게임을 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게임 중독 상태에 빠지는가? 아니다. 게임 중독의 문제는 개개인마다, 그리고 게임마다 그 편차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온라인 게임 중독 문제 기사는 많이 봤지만, 정작 윈도우에 기본적으로 설치되어 있는 지뢰찾기에 중독되서 인생을 망쳤다고 서술하는 기사나 이야기는 보지 못했다. 게임마다 중독이 되고 안되고의 극명한 결과가 생기는 것, 모든 게이머들이 모든 게임중독자가 아니라는 지점들. 그렇기에 소위 게임 중독 상태는 전적으로 비가역적이며, 마약류의 중독 상태와 1:1로 놓고 비교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기본적으로 게임 ‘중독’의 허구성을 역설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무시못하는 지점들은 분명히 존재한다;게임 때문에 일상생활을 망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보통의 게이머들 또는 게임 중독 반대론자들은 이들을 가리켜 ‘개인의 조절 실패’ 상태로 아주 쉽게 정의하는 경향이 있다. 이 정의가 전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다, 게임과 일상생활 사이를 조절 못하는 것은 개인의 통제력 문제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식으로 게임에 과도하게 빠지는 상태를 개인의 통제력 상태로 규정하는 것은 그 기저에 ‘게임은 게임일 뿐이며, 인간이 과몰입할만한 기저 시스템을 갖고 있지 않다’ 라는 태도들, 게임을 ‘무고한’ 또는 ‘무죄’의 존재로 만들려는 시도들은 어딘지 모르게 꺼림칙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정말로 게임은 게임 ‘중독’ 상태에 대해서 무죄인 것일까?


본인이 롤에 대해서 갖는 감정은 전적으로 사적인 증오다.

과거에 서술한 게임 노동의 담론( http://leviathan.tistory.com/1798 )에서, 본인은 소위 이야기하는 엔드 컨텐츠들의 문제에 대해서 역설한 지점이 있다;성과와 목표를 무한히 던져주며 무한하게 거기 빠져드는 상태, 결국 게임의 구조 자체로는 그것이 불가능하니 ‘인간’이라는 요소를 끌여들인 ‘멀티플래이’로 게임을 계속 붙잡게 만드는 지점들. 한병철의 피로사회에서 지적을 하였듯이 사회 자체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다’라는 명제의 과잉으로 인간을 정신적 소진 상태로 몰고 가듯이, 게임 자체도 이야기가 끝나고 모든 것이 끝나도 과제와 목표를 지속적으로 갱신하고 계속되는 지점들을 통해서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다’의 과잉으로 인간을 소진상태로 몰고간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보통 한국 언론에서 게임 중독을 야기하는 게임이라 지목되는 게임들의 특징을 잘 살펴보자. 타인과의 경쟁이 기반에 깔려있는 게임들, MMORPG의 경우, 리니지와 피씨방에서 사는 아저씨들의 결합인 린저씨의 존재라던가, 수많은 온라인 게임 폐인들의 존재, 최근에는 하나의 광풍처럼 한국 게임계와 소비자층을 강타하고 있는 AOS와 LOL의 존재 등등…고발의 대상이 되는 게임들은 대부분 ‘인간과의 경쟁’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게임들이다. 그렇기에 언론의 마녀사냥적 고발이 아주 최소한의 진실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이들 게임들은 끝나지 않는 게임들, 성과를 위한 노동이 되는 지점을 가진 게임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많은 것을 설명한다. 게임 중독 상태가 왜 중독이라는 물리적이며 가역적인 상태에 도달하지 못하는지, 왜 게임이 사람마다 다양한 형태의 비가역적인 반응을 도출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게임 중독이라 일컬어지는 상태란, 게임 내에서 성과를 도출하기 위해서 빠져드는 ‘강박’(불합리하다고 자각하면서 어떤 관념이나 행위에 사로잡혀 억제할 수 없는 일)상태라고 볼 수 있다. 특정 행위에 대한 강박증이란 논리적인 행위가 아니며, 그 강박증에 걸린 행위는 스스로 비논리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또는 인지하지 못하면서도) 끊임없이 그러한 행위를 지속적으로 반복-확대-재생산하게 된다. 소위 게임 중독이라는 이 강박증 상태도 유사하다;게임 내에서 타인보다 강해지기/타인을 제압하기 위해서 과도하게 몰입하는 것, 게임을 하는 행위 자체를 반복-확대-재생산 하며 ‘현실’과 동떨어진 비논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는것까지 말이다.


강박 자체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일 수 있다. 그 상황에 빠져드는 동력, 개인적인 원인, 심지어는 강박증이 행해지는 지점들마저도 개개인마다 다 다르게 발현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 있다;한국 게임들은 그 강박증을 유발하는 시스템을 게임에 집어넣어서 수익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강박증을 유발하는 시스템, 메카니즘은 보통 IAP(In App Purchase)의 형태로 구현된다;이제 게이머는 게임을 사고 플래이하는데 들어간 비용들(돈, 시간 등등)과 별개로, 강해지는데 또 돈을 지불해야 한다. 기존의 게임들이 인간과 인간의 경쟁을 통해서 ‘끝없는 목표’와 성과를 향한 게임 노동의 개념을 제시하였다면, 이 강박증 구현 기제들은 그 목표에 대한 ‘지름길’을 제공하면서 게이머를 끝없이 유혹한다. 그리고 이러한 IAP의 족쇄는 게이머가 게임을 그만두지 못하게 만드는 족쇄로서 작용한다.(내가 투자한게 얼마인데, 들어간 가치와 비용에 대한 안타까움)

물론 게임 자체에 IAP 개념을 집어넣지 않은 게임이 존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MMORPG들에게는 자체적인 IAP 개념만 존재하지 않을 뿐이지, ‘현질’이라는 외부적인 요소가 존재한다. 게임 내 화폐를 만들어서 파는 장사꾼들은 충실하게 게임 회사가 IAP로 하는 일을 행한다. 결과적으로 현질이라는 시스템을 본질적으로 막지 못한다면 IAP가 있나 없나는 부차적인 문제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던파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도 전적으로 사적인 증오다.

넥슨의 던전 앤 파이터를 예를 들어보자. 던전 앤 파이터는 게임의 재미와 완성도와 별개로 위에서 이야기한 IAP 개념과 현질의 개념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최악의 사례이자 현재의 한국 게임들이 처한 대표적인 상황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던파는 ‘무료’ 게임이다;하지만 그 말은 아무도 안 믿는다. 게임은 기본적으로 아바타/앰블럼 기능을 통해서 그것이 있는 게이머와 없는 게이머의 차이를 분명하게 만들어놓는다. 게이머가 아바타를 사서 플래이하는 것은 자유의 탈을 쓴 ‘강요’이다. 아바타를 사지 않고 플래이하는 게이머를 게임은 다양한 방식으로(모양세나 이런 저런 지점들에서) 차별하며, 심지어는 다른 게이머들이 그 게이머를 차별하는 기제로서 작용되기도 한다.

현질이란 기본적으로 게임 내의 희귀한 아이템에 대해서 현실의 가치를 들이는 것이라면, 던파는 끝없이 희귀한, 동시에 ‘꼭 필요한’ 아이템을 만들어낸다;그것은 바로 강화 요소다. 이 강화 요소의 악랄한 지점은, 장비를 강력하게 만드는 도중에 장비가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이며 더 악랄한 것은 이 장비는 강하면 강해질수록 더 파괴되기 쉬워진다는 것이다.(물론 지금은 이런저런 파괴에 대한 대비가 되었지만, 과거의 경우에는 악랄하기 그지없었다) 이렇게 희소한 장비/재원이 꼭 필요한 게임 클래스들이 존재한다는 점, 그리고 어떠한 보험 요소가 존재하지 않은 점에서 이 고강화 장비에 대한 게임 내 수요는 아이템에 ‘과도한’ 가치를 부여하기에 이른다. 던파의 현질은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나지만, 이 고강화 장비에 대한 현질이야말로 던파 현질 문제의 최고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한번 게임내에 강박증이 퍼지기 시작하면, 이 강박증은 막을 수 없게 된다. 이런 게임들의 기본 베이스는 ‘경쟁’이다;내가 남보다 더 잘나야 하는 것.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내가 들인 노력에 비해서 더 손쉽게(돈을 써서) 자신의 성과에 도달하고 이로 자신을 이겼다고 가정해보자.(그것이 실제적인 승리든, 아니면 과시적인 지점이든 간에) 그렇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자신도 돈을 써서 더 쉽고 빠른 성과를 도출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전염병처럼, 하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게이머들 사이에 퍼지게 된다;마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리치왕의 분노 말기에 소위 십자군 쇼핑을 발판으로 레이드를 가는것이 자연스러워지고 이 쇼핑에 들어갈 돈을 현질로 사거나 많은 시간을 들여서 확보하는 지점들처럼 말이다. 누군가 경쟁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돈 또는 그 곱절의 시간을 투입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지는 지점들. 이러한 열기가 가열되고 가열되면, 자연스럽게 게임에 ‘비정상적인’ 가치를 투여하고 몰입하는 강박증세를 가진 사람들이 등장하게 된다.

만약 진정으로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게임 중독의 담론을 박살내려 한다면, 게임 자체가 현제의 모습을 벗어나 새로운 모습에 도달해야한다;이러한 논쟁 자체를 어불성설로 만드는 문화와 환경, 그리고 모두가 게임을 즐기는 상태로 말이다. 하지만 한국의 게임들은 여태까지 너무나 무사안일한 태도로 일관하여 왔다. 물론 이것은 개발자들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회사를 운영하는 주체들의 속물적인 사고들, 문제가 일어나기 전까지 최대한 돈을 벌고 내빼면 그만(일본으로?)이라는 무사안일한 태도가 더 큰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게임업계는 이미셧다운제에서부터 비정상적인 침묵을 지켜왔고, 게임중독 법안에 있어서도 히스테릭한 반응 이상으로 어떠한 반응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게임과 게임업계가 나아가야할 방향은 현제에 있어서 중요한 분수령이자 기점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여기서 다같이 몰락하느냐, 아니면 되돌아보고 반성하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낼 것이냐. 이 모든 것은 업계의 손에 달려있다.


(이 글에서는 IAP나 부분유료화에 대해서 대단히 부정적으로 썼지만, 본인은 이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오히려 게임에 대한 큰 비용 없이 게임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점에서 새로운 형태의 비지니스, 또는 새로운 형태의 게임 문화가 될 수 있을거라고 본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IAP나 부분유료화는 게이머를 강박증으로, 그리고 끝나지 않는 경쟁으로 몰아넣어서 거기서 게이머를 착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첨언으로 던파의 피로도 시스템을 게임 중독의 방지책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진정한 기만이다;던파의 피로도 시스템은 전적으로 한 케릭터에서 다른 케릭터로 육성하게 만들기 위한 기제이다. 기본적으로 게임이 빠른 패이스로 진행되기에 한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데 몇분 남짓 걸리는 게임에서 게이머의 컨탠츠 소모 속도를 의도적으로 줄이기 위한 제한이자, ‘기본적으로’ 무료 게임인 던파에서 가장 확정적인 수익을 내는 지점은 바로 게임 케릭터의 능력을 올려주는 필수 아이템인 ‘아바타’를 판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 케릭터만 줄창 파는 것은 회사에게 손해일 수 밖에 없다. 만약 피로도 시스템이 게임 중독에 대한 방지책이었다면, 한 케릭터에서 다른 케릭터로 갈아타는 것 자체도 같이 막혔어야 할 것이다.)


미로속으로 들어가다.

첨언이자 긴 사설:

여기서부터는 보들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의 담론을 끌여들여 보는 실험적인 담론이다.

게임하는 행위가 노동이 되고 강박증세가 되면, 자연스럽게 게임은 일상이 된다. 그리고 게임은 더이상 긴장을 풀고 재미를 느끼기 위한 행위가 아닌 성과를 내기 위한 행위로 전락한다. 그리고 한국의 게임들은 게이머를 노동자로, 그리고 게임회사는 자본가가 된다. 성과를 위해서 노동하는 게이머들, 그리고 게이머에게 계속 성과를 강요하는 게임회사들. 이러한 메타포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자 특이한 지점은, 성과를 내는 것은 분명 게이머들이지만 돈을 버는 것은 게임회사들이다;즉, 성과를 위해서 돈을 쓰는 세계가 바로 게임(적어도 한국 게임)의 지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지점들은 게임이 현실로부터 유리된 것이 아닌, 철저하게 현실의 ‘연역’이라는 점을 시사한다;현실 역시 게임과 같다. 과도한 긍정, 스펙의 사회가 도래하면서 이제 예비 신입사원들은 스펙을 쌓기 위해서 돈을 써야하는 시대가 되었다. 돈을 벌기 전에 돈을 써야하는 사회, 이것이 과도한 긍정이 지배하는 아이러니의 사회인 것이다. 다만, 현실은 더 비정하고 잔인하다. 더이상의 컨티뉴도 없으며, 노력으로 극복될 수 없고 다만 자본과 돈에 의해서만 극복가능한 세계인 것이다.

그렇기에 한국 게임 개발자들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현실로부터 연역된 ‘공정한’ 가상현실을 만들어내고야 말았다. 그렇기에 더이상 현실에서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은 게임으로 회귀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게임이야말로 현제 사회의 유토피아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적은 돈을 들여서 성과를 낼 수 있으며, 노력이 인정되는 사회, 잉여들이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세계, 그것이 바로 게임인 것이다.

하지만 게임의 존재는 철저한 현실의 연역이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이 사실을 감추고 숨겨져야 한다;왜냐면 현실의 공정한 대안이 게임이기 때문이며, 이는 기득권(부모, 정부 등등. 여기에 편승하는 정신과의사는 그냥 기생충에 불과하다)에게 큰 타격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수많은 기득권들은 게임은 비현실적이며 의미가 없다는 지점을 역설한다. 게임이 현실의 철저한 연역임을 숨김으로서 길을 잃게 만드는 것, 현실의 시뮬라시옹을 공고하게 만든다. 같은 것을 아닌 것처럼 포장해서 어느 한쪽이 이득을 보는 것. 어찌보면 게임 중독 담론은 현실의 시뮬라시옹을 공고하게 만드는 담론일지도 모르겠다.


후기:어려운 담론을 너무 쉽게 들고와서 막 던지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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