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히트 관련 트윗 모음 정리

트위터 로그에서 발췌

발렌슈타인 감상 완료:
어떤 의미에선 실러 군도의 완성 확장판이라 할 수 있다. 뛰어난 재능을 타고 났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안목도 갖추었지만 인간적인 망설임과 우유부단함으로 인해 몰락할 수 밖에 없었던 한 시대의 ‘영웅’에 대해서.
30년 전쟁 이전에 독일이라는 국가나 그 비슷한 정체성이 있지 않았다고 본인은 생각하며 그러한 전제에서 본다면, ‘양측 종교의 공존과 두 제국으로부터 자유로운 국가의 출현’이라는 관점에서 발렌슈타인이 만들어내고자 했었던 세계는 근대 독일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위대한 자 주위에는 까마귀 같은 자들이 득시글 거린다, 군도의 주인공이 친구에 꾀임에 넘어가 ‘도적’으로 타락하였듯이 발렌슈타인의 주변에도 수많은 협잡꾼들과 속인들이 넘실거린다:전쟁의 로맨스의 매료된 젊은이들, 부귀를 쫒는 부관들 등등… 그런 인간들과 숙명이 발렌슈타인을 파멸로 몰고간다.
기본적으로 실러의 희곡들은 매우 뛰어난 대사 표현을 사용한다. 몇몇 장면에서는 사람을 쥐고 들고 흔드는 마력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갖고 있는 파국의 위험성(전쟁에의 찬미, 영웅에의 광적 신봉 같은)을 현대 독자가 인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매료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완벽한 냉소주의로 이 작품을 바라보지만 않는다면 좋아하는 대사 한 두줄 쯤은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실러 희곡의 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실러의 낭만주의 뽕은 어떤 의미에서 가장 위험한 부분이기도 하다:재밌는 점은 발렌슈타인이란 영웅을 따르는 병사들이 영웅 뽕에 취해서 사회를 갉아먹고 발렌슈타인을 파국으로 몰아갔었던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하게도 실러 역시도 그 위험성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적 때의 주인공 카를이 결국 자유로워질 수 없었던 것, 자신의 연인을 스스로 쏘아 버리는 극단적인(동시에 지극히 인위적이고 어색한) 선택을 하는 것도 그러한 연장선상이라고 본다.
하지만 발렌슈타인과 대비되어 브레히트의 억척어멈의 일생을 생각해보기도 한다:전쟁과 그에 대한 로망이 한 인간에게서 계속 무엇을 빼앗더라도 끔찍하게도 그 삶이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처녀 벙어리 딸이 지붕위에 올라서 야습을 경고하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군종목사나 언뜻 언뜻 비치는 인간에 대한 작은 믿음이 극에 드러나기도 한다. 브레히트의 극은 형식으로서의 극을 부숴버렸지만, 그 속에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을 삽입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장면들은 극을 기억하게 만드는 ‘중력’을 구성한다.
브레히트는 시니컬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희망은 잃지 않은 인물이었다. 운이 나빴으면 죽어서 나뒹군 것은 내 친구가 아니라 내가 되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살아남은 것을 저주한 이 극작가는 그 당시 상황에 맞는 그런 예술가였다.
발렌슈타인에 있어서 전쟁의 비극은 시적일 수 밖에 없으며, 미학적으로 비극적이지 사람을 소름끼치게 만드는 무언가는 아니다:어떻게 보면 그것이 실러의, 아니 그 시대의 한계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브레히트는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억척어멈의 일생에서 무려 몇십년에 걸쳐서 서술한다. 큰아들은 영웅이 되었다 범법자가 되어 끌려가고, 작은 아들은 사단 금고를 탐내던 노략꾼들의 손에 죽고, 딸은 야습을 경고하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이 모든 과정이 너무나 덤덤하게, 그리고 끝나지 않을 것처럼 묘사함으로서 사람을 질리게 만든다. 전쟁이 일상인 곳에서는 고통과 비극마저도 일상인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계속 살아야한다. 그것이 억척어멈의 일생의 비극을 무게있게 만드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트위터 발췌본)

요즘 브레히트에게 끌리는 것은 브레히트의 케릭터들이 갖는 특징들, 평론가의 표현을 빌린다면 모순된 성격이 한 곳에 모여있다는 점이나 극의 여운이 길게 남는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본인은 그것이 모순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인간은 원래 모순된 존재이며, 그것이 어떻게 보면 인간의 본질을 구성하는 주요한 특질인 것이다. 갈릴레이가 이성을 신봉하면서도 미식을 즐기고 고문도구 앞에서 굴복하는 육체적인 존재였던것처럼.

브레히트의 작품에서 흥미로운 점은 케릭터에게 감상자가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기 쉽게 극이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갈릴레이의 생애에서 갈릴레이는 때로는 비굴하게 권위에 호소하기도 하며 망원경 발명으로 시예산을 뚜룩치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이에게 지구가 자전한다는 것을 가르쳐주면서 흥분하기도 하고 목숨을 걸고 이성에 의한 증명을 호소하기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 극의 끝에서는 세상에 굴복하게 된다.
이 과정은 십년 단위로 길게 이루어지며, 마치 삶의 편린을 들여다보듯이 이야기들은 이어지지 않고 토막나있다. 극은 갑자기 고조되지 않고 차분하게 진행이 되며, 사건이 일어나도 극은 흘러가게 된다. 마치 인생처럼.

브레히트의 희곡에서 케릭터들은 종종 관객들이 그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정도로 선악 개념이 모호한 경향을 보여준다:30년 전쟁을 배경으로 전쟁을 장사의 기회로 삼지만 그 전쟁 때문에 자식을 모두 잃는 억척어멈이나, 나일롱 군목이지만 묘하게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목사나 취사병, 같은 행위로 몰락과 번영을 동시에 경험하는 첫째 아들, 벙어리 셋째 딸 등등…독일, 스위스, 프랑스 등의 피가 섞인 개족보지만, 어떻게 본다면 이 모호한 세계관이 우리가 사는 세계일지도 모르겠다.
케릭터가 동정이 되냐고,밉냐고? 브레히트의 케릭터들은 묘하게 그런 감정에서 빗겨나 있다. 희곡의 그 순간순간에서 감정을 날카롭게 뒤흔든다기 보다는 묵직한 감정을, 여운을 느끼게 만든다:서푼짜리 오페라 마지막에 느껴지던 묵직한 파국적 해피엔딩처럼말이다.
Like what you read? Give Leviathan a round of applause.

From a quick cheer to a standing ovation, clap to show how much you enjoyed this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