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전, 아프리카로 옮겨간 사람들

케냐에서 먹은 ‘커리’가 가장 맛있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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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min readJan 24, 2019

아프리카에서 돌아오고 난 뒤 한동안 괜찮다가, 요즘 유난히 인도 음식과 레바논 음식이 땡긴다.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 한국에서 이 두가지 음식이 너무 비싸기도 하고, 더 중요하게는 ‘맛’ 자체가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 조금 바뀐 것 같아서다. Authenticity 가 조금 부족하다고 할까. 그런 아쉬움 때문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워진다.

인도음식 (왼쪽) 과 레바논 음식 (오른쪽)

그럼, 아프리카에서는 어떻게 제대로 된 인도 음식과 레바논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된 걸까?

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 사람들을 유럽이나 미국으로 넘어가는 ‘이민자들’ 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넘은 1800년대에 아프리카로 넘어와, 지금까지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로 ‘인도’ 사람과 ‘레바논’ 사람들이다.

(이렇게, 자의 혹은 타의로 원래 살던 땅에서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한 사람들을 ‘디아스포라 diaspora’라고 부른다)

1. 서아프리카에 정착한 레바논 사람들

1800년대 후반, 중동의 레바논에서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기 위해 항해를 하는 도중, 잠시 아프리카 대륙 서쪽 끝에 위치한 세네갈에 정박을 한다. 확실하진 않지만, 정박한 사이, ‘Welcome to America’라는 말에 속아 넘어간 사람들도 있고, 항해를 계속 할 수 있는 돈이 떨어져, 어쩔수 없이 세네갈에 정착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암튼, 그 사람들이 세네갈에서 시작해서 코트디부아르, 가나, 나이지리아 등으로 퍼져 나가면서 서아프리카 국가들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잘 찾아보면 세네갈, 가나, 나이지리아 다 눈에 보일거다!

실제로, 레바논 사람들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디아스포라 그룹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한 예로 몇 년전에 세상에서 가장 돈 많은 사람으로 뽑히기도 한 ‘까를로스 슬림 Carlos Slim’도 레바논계 멕시코 사람이다.

‘래리킹’과 인터뷰 중인 까를로스 슬림, 슬림하진 않다 ㅋ

그래서인지, 서아프리카에서는 좋은 레스토랑이나, 새로운 사업이 생기면 레바논 사람들이 오너owner인 경우가 굉장히 많다. 또한, 이미 정착한 사람들이 새로 오는 이민자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서로 도와주는 네트워크와 커넥션으로도 유명하다.

벌써 아프리카에서 4–5세대가 지나고 있고 실제로도 아프리카 국가들의 국적을 가지고 있는 레바논 사람들이 많지만, 원래(?) 현지 사람들과 온전히 통합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르게 생기고 다른 문화를 가진다는 것은 10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나도 완전히 해결되기는 어려운가 보다.

하지만, 문화가 다르더라도 거부하기 가장 힘든 것이 바로 음식이지 않은가.

미국에서도 멕시코 사람들이 못 넘어오도록 장벽을 세우려고 하면서도, 열심히 타코를 먹고 있는 것만 봐도 음식의 힘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멕시코 음식 먹는 트럼프 대통령 ㅋㅋ

레바논 음식 중에서, 개인적인 페이보릿은 ‘샤와르마Shawarma’ 다.

바로 이거지

특히, 나이지리아 같은 곳에서는 샤와르마가 국민 음식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어딜가나 사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전통적인 레시피와 다르게 조금 특이한 점은, 안에 소시지나 감자튀김을 넣어서 먹기도 한다는 것인데, 언제부터 그렇게 바뀐 건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소시지를 넣으면 추가금액을 내야 해서, 나는 맨날 빼달라고 했다 ㅋㅋ

맛있게 먹는 방법은, 아프리카식 핫소스인 ‘piri-piri 삐리삐리’(나이지리아에서는 ‘뻬뻬 pepper’라고 발음되는) 소스를 찍어먹거나 뿌려 먹어야 한다. 너무 매워서 다음날 배가 아플수도 있지만, 당장에 맛있게 먹는게 더 중요하다.

한국에 엽떡이 있다면, 아프리카엔 삐리삐리가 있다!!

이 외에도, 레바논 사람이 직접 운영하는 식당에서는 국내에서도 유행의 조짐을 보이는 ‘후무스Hummus’나 ‘팔라펠Falafel’과 같은 중동 음식들이 너무나도 맛있다.

후무스를 둘러싼 팔라펠 무리들

2. 남동부 아프리카에 정착한 인도 사람들

1860년, 342명의 인도인들이 영국의 ‘계약 노동자Indentured Labor’ 신분으로(노예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신분으로) 남아공에 도착하는 것으로 이민 역사가 시작되었다. 현재도, 인도 사람들의 규모가 가장 큰 곳은 남아공인데, 우리가 다 아는 ‘간디’도 24살이었던 1893년에 남아공에 와서, 21년간 변호사로서 활동하며 지내기도 했을 정도.

중앙에 앉아있는 간디와 창문에 적혀있는 이름

또, 눈 여겨볼 곳은 허니문으로도 종종 가는 ‘모리셔스Mauritius’ 인데, 인도 사람들이 두번째로 많은 나라기도 하고, 무엇보다 인구의 60%정도가 인도계라고 한다. 아프리카 국가임에도 인도계 사람들이 더 많다니, 참 묘하다.

모리셔스 독립기념일 사진, 진짜 인도 사람처럼 보인다

케냐에도 인도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케냐에서 먹은 인도음식을 베스트중 하나로 꼽는다.

하지만, 인도의 영향력은 음식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우리에겐 ‘세 얼간이’로 유명한 ‘발리우드Bollywood’의 영화의 인기가 엄청 나다. (발리우드 드라마도 종종 레스토랑에서 틀어주는 경우가 있다)

발리우드의 영향력은 남동부 지역에서만 그치지 않고 저 멀리 서아프리카까지도 이어지는데, 여기서 재밌는 사실은, 인도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은 나이지리아에서도 인도 발리우드 영화가 인기가 많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사업수완이 좋은 레바논 사람들이 ‘비즈니스 정신’으로 발리우드 영화를 열심히 수입하여 헐리웃 영화들보다 싸게 유통을 해서 그렇다. 둘이 정착한 지역은 다르지만, 잘 도와주는 느낌이다 ㅋㅋㅋ

이처럼, 인도/레바논 사람들은 정말 오랜 시간동안 아프리카에 정착해서 ‘아프리카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겪은 어려움들을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이들 덕분에 우리는 어느 아프리카 국가에 갈 때마다, 기대치 못한 다양함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아프리카에서 먹은 ‘커리’와 ‘샤와르마’가 가장 맛있다 하더라도, 전혀 놀랄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지구를 구한 후, 말없이 샤와르마 집어 먹는 어벤져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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