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어느 아침의 시선.

난 오늘도 여느때처럼 서울로 올라가는 빨간 버스에 올라탔다. 내가 타는 곳은 출발지점과 멀지 않은 편이라 별일이 없다면 항상 자리가 남는 편이다. 그렇게 버스가 다 채워질때까지 여러 정류장을 지나며 강남을 향해 가고 있다.

4월의 마지막 푸르른 가로수들을 보고있던 내 시야에 마르지만 핏줄이 돋아나 굳세보이기까지 한 손이 눈에 들어왔다. 그 손이 눈에 띈 이유는 짧은 손톱에 있었다. 참고로 나의 손톱은 긴 편이고 살과 손톱이 붙어 있어 짧게 자르지 못한다. 어릴적 손톱 자를때 아파하는 나를보며 아버지는 종종 집안일을 하지않아 손톱이 붙어 있다며 혀를 차시곤 했다. 뭐 이미 붙어버린 손톱을 고통스럽게 떼어낼 수는 없지 않나…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떼어질 줄 알았던 손톱은 20대 중반이 지난 지금에도 아직 온전히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이렇듯 그 손톱에는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 알 수 있는 힌트가 있을 것이다. 지금 앞자리에서 더위를 참지못해 에어컨이 틀어져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저 손에도 (내 앞의 손보다는 더 크고 단단한) 마찬가지로 말이다. 눈 앞에 있는 의자의 손잡이를 잡고 있는 그 손은 고속도로에 오르기 위해 비탈길을 오르는 버스의 움직임에 저항하기 위해 더욱 더 힘을 주고 있었다. 힘이 들어간 엄지 손톱에는 언젠가 물집이 있었던 흔적과 무엇인가 잡아 뜯다가 생긴 상처들이 있었다. 어떤 순간에 손톱을 가만두지 못하고 있던 걸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제서야 어떤 사람의 손인지 고개가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키가 나보다는 훨씬 작은 20대 초반의 어느 여성이었다. 아무렴 남성의 손이었다면 나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어깨에는 많은 짐이 들어있을 법한 가방과 다른 손에는 옷이들어있는 에이랜드, 무지의 종이가방들이 들려있었다.마치 머물던 곳을 떠나 어딘가로 떠나는 모습이다. 오늘은 금요일이니 아마 중간고사가 끝나 아늑한 집으로 떠나는 길일지도 모른다. 빨간 트레이닝복 바지에 크록스 슬리퍼가 나의 추측에 힘을 더해주는 것만 같다.

불과 3년전만 해도 나 또한 그녀처럼 언젠가 읽을 책들과 사용할지 모를 맥북, 아이패드 모두를 싸들고 집으로 가던 적이 있었다. 그토록 익숙한 곳에서 4월의 살랑거리는 바람을 맞다보면 어느새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누워 있게 되었다. 지금 이 시간은 어쩌면 그런 날일지도 모른다. 1월부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느라, 3월에는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느라 긴장했던 몸과 마음이 따뜻한 햇살에 녹아져 나를 사랑해주던 사람들을 찾게 되는 날.

어느덧 버스는 강남에 도착했는지 멈춰 있던 그녀의 발이 움직였다. 그 모습에 이끌려 나도 어느새 그녀 뒤에 섰다. 나보다 훨씬 작을 것이라고 했던 예상은 빗나갔다. 지금도 손잡이를 잡고 있는 마른 저 손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버스는 멈추고 앉아있던 사람들이 내리기 위해 미리 줄서 있던 사람들 사이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녀와 나 사이의 거리 또한 멀어졌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그녀는 내리는 중이었다. 나도 서둘러 내려 그녀가 걸어간 방향이 어디인지 찾았다. 그리고 저 멀리 횡단보도를 건너는 그녀의 뒷모습을 봤다.

어느새 저만치 걸어간 그녀는 짧지만 따스한 봄날처럼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내년 이맘때에도 나타나줄까? 확실하지 않은 물음을 갖고 나는 발걸음을 돌렸다. 내가 가야하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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