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슬레이트>기차를 타고 은폐기억을 수집하다.

트라우마의 구조 그리고 박하사탕

돌아갈래 라고 외치는 영호의 눈은 한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내가 습관처럼 되뇌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진지함과 가벼움 사이 방황하는 그런 류의 느낌은 절대적으로 다른 그런 느낌이었다.

이창동 감독님의 박하사탕은 어렴풋이 듣기만 하다가 영화과 수업 중 한국영화사라는 수업에서 1900년대 작품 중 토론을 하게 된 작품으로 보게 되었다.

어렸을 적 봤던 어린왕자의 책을 성인이 된 이후 읽게 되면 다른 사유와 느낌을 받는 것처럼 영화 또한 그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텍스트는 다시 보게 되면 또 다른 것들을 볼 수 있다. 내가 박하사탕이라는 영화를 두, 세 번 봤다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영화사 수업을 통해 고전영화를 보다 보니 옛날 영화인 탓에 한 번씩 더 본 작품이 있었는데 괜스레 이런 말이 하고 싶었다.

박하사탕을 보면서 영화의 피카레스트식 구성이 신기하다는 생각과 ‘김영호’라는 인물이 왜 이렇게 광적인 행동을 하는 것인가라는 것에 좀 꽂혀서 감상하게 된 것 같다.

사건의 순서사 역순행 인 탓에 말미 즈음에 그가 가지고 있는 아픔이랄까? 일종의 문제점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시대상, 역사적 희생양으로서 김영호가 가진 ‘트라우마’다.

나는 트라우마라는 키워드에 초점이 집중돼서 어느 순간 심리학적 관점에서 영화를 분석하게 되었는데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의식하지 못하는 잠재된 은폐기억은 유사한 사건이 주어지면 잊혀있던 기억 흔적이 환기된다는 것과 트라우마는 하나의 사건만으로 결코 성립되지 않으며 반드시 두 개의 사건이 갖추어져야만 가능하게 된다. 라는 이론인데

예를들어 어떠한 여성이 15살에 옷가게 옷을 사러 갔다고 생각해 보자. 근데 그곳에서 옷을 입은 자신을 향해 점원들이 비웃어 그 충격으로 광장공포증이 생겼는데, 이 사람에 대한 조사 결과 8살때 이 여성은 옷가게에서 성추행을 당했었다는 새로운 단서가 나왔다. 후자를 일명 은폐기억 이라고 하는데 어떤 것에 대한 두려움은 인지하지 못하는 것과 인지가 가능한 것의 복합적인 결과물이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 박하사탕의 구조이자 틀이다. 은폐기억이라고 할 수 있는 영호의 과거, 개별 사건이 결합되어 트라우마가 완성되는 모습이 프로이트가 주장하는 트라우마의 내용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김영호라는 트라우마는 개인만의 상처일까? 각 개개인이 모여 사회가 성립되듯이 이것은 우리나라가 가진 트라우마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가장 과거의 영호가 눈물을 글썽이며 오버랩되는 기차소리는 그것이 인트로의 죽음과 연결 지을 수도 있지만 나는 새로운 가능성이라고 보고 싶다 기차가 끊임없이 어디론가 향하는 것은 그것이 지닌 움직임이라는 동적인 상태로서 열린 결말을 상상했다.

영화의 대사, 장면, 그리고 메타포는 영화가 단지 보는 것이라는 생각을 뛰어넘는다. 교수님이 수업 중 말씀하시는 ‘과자’같은 영화가 아닌 과거의 영화를 보다 보면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박하사탕이 가지고 있는 향긋함과 상쾌함, 달달함은 나에게 남아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