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탄핵 할 수 없을까?

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2차 촛불집회 참석자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며 촛불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cybercoc@kmib.co.kr

수 많은 시민들이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는 비극의 축제날… 서재에 앉아 이해되지 않는 이 상황을 생각해 본다.

무엇이 문제일까?

이미 국민의 지지와 정당성을 잃은 대통령이 여전히 합법적 권한을 가지고 있는 상황.

국가 기구는 헌법과 법률 상 여전히 대통령의 권력에 복종해야하나 그 권력의 원천인 국민은 이미 그 위임을 철회한 상황.

이해하기 힘든 이 상황 속에서 광장에 모여든 20만 명의 불빛은 대통령에 대한 민주적 위임을 철회하는 의사표시를 했다. 문제는 이러한 의사 표시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위임의 철회는 탄핵이라는 합법적 절차를 통과해야 그 효력이 발생한다. 탄핵은 또 다른 민주적 정당성을 가진 국회의원들에 의해 사법부인 헌법재판소에 대한 소추의 형식으로 시작된다. 마치 검사가 법을 위반한 범죄자를 기소하 듯, 국회(제적 의원의 2/3 찬성)가 범죄를 저지른 대통령을 헌법재판소에 소추하고 헌재는 위법 여부와 위법이 탄핵을 할 만큼 중대한 지를 판단한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권한 위임 철회는 철저히 사법적 합리성(합법성)을 거쳐야만 그 효력을 인정받는다. 권한의 위임은 선거라는 의사표시 행위로 할 수 있으나 그 철회는 법원의 재판이라는 판결 형식을 취해야 하는 것이다.

“권한의 위임은 선거라는 의사표시 행위로 할 수 있으나 그 철회는 법원의 재판이라는 판결 형식을 취해야 하는 것이다.”

탄핵은 정치적 사태와 사법적 사태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기에 선거라는 방식과 다른 형태를 취할 수 밖에 없다. 다만 탄핵의 과정 속에 국민의 위임 철회 의사가 너무나 적게 반영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미국의 탄핵 절차 역시 사법적 형식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 절차와 형식의 주체가 사법 공무원이 아닌 민주적 정당성을 지닌 의회 대표들이라는 점이 다르다.

미상원에서 탄핵 절차를 진행하는 모습

미국의 탄핵은 먼저 하원의 법사위원회가 탄핵 결의를 하고 하원 의원 과반이 이에 찬성하면 상원으로 탄핵 결의안이 넘어가며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의 범죄행위에 대한 수사는 검찰이 아닌 의회의 법사위원회나 특별위원회가 맡아서 하게 된다.

상원으로 넘어온 탄핵 결의안은 일종의 재판 형식을 통해 심사 된다. 우선 연방대법원장이 상원에서 열리는 탄핵 심리의 재판장을 맡게 된다. 하원에서 탄핵 소추를 주장하는 House Manager는 소추안의 내용과 탄핵의 논거들을 설명하고 대통령을 포함한 탄핵의 당사자들은 변호사를 통해 탄핵 내용의 반론과 탄핵의 불가 논거 대며 상호 논쟁한다.

상원의원들은 탄핵 내용 심리를 위해 증인들을 불러 심문하고 증거를 검토하며 각 소추된 범죄의 내용마다 일종의 배심 형식의 찬반 투표를 한다. 제적 상원의원의 2/3가 소추 내용에 유죄(찬성)의견을 내면 소추된 범죄가 인정되고 그 이 후 제적 상원의원 과반이 인정된 범죄가 탄핵 할 중대한 사유라고 인정(찬성)하면 탄핵이 이루어 지게 된다.


반면 우리의 탄핵 절차는 일단 탄핵 소추 자체에서 이미 국회 제적 의원의 2/3의 찬성이 필요하고 헌재로 넘어온 탄핵 소추안에 대한 심리 과정엔 국민의 정치적 의사표시는 사실상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당시 국민 과반의 반대에도 국회의 탄핵 소추가 가능했던 것을 생각하면 우리 국민의 의사표시가 과연 국회에서 온전히 대변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하지만 탄핵이라는 정치적 행위에 있어서 국민 의사의 영향력이 최대한 반영되는 절차와 형식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국민의 80% 이상이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고, 60% 이상이 하야나 탄핵을 찬성하며 권한 위임에 대한 철회의 의사를 가지고 있다. 전국 2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광장에 모여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국회는 움직이지 않는다.

최순실과 대통령 비서진에 대한 검찰 조사가 진행되고 있으나 과연 그들에게 적용된 범죄 혐의와 대통령과의 관련성이 어떻게 입증될지, 그것이 탄핵 할 정도의 중대성을 가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민주주의 제도 속에 살고 있다고 믿는 우리는 정당성을 잃은 대통령이 당연히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직의 합법성은 여전히 유지되는 이 상황에 당황하고 분노한다. 이것은 정당성과 합법성의 괴리다.

“이것은 정당성과 합법성의 괴리다.”

정치권은 대통령의 행동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면서도 탄핵이 아닌 대통령의 하야나 2선 후퇴를 외친다. 탄핵이 가져올지 모를 불확실성과 그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것이다.

누군가는 반대로 87년 6.10항쟁을 떠올리고 오늘의 사태를 혁명을 위한 투쟁으로 묘사하며 광장의 정치를 말하지만 우리는 지금 독재와 싸우는 것도 폭력 진압과 계엄에 맞서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힘도 근거도 없으며, 87년 처럼 미국의 도움을 받을 필요도 없다. 사실상 대통령은 이미 대통령의 권한을 잃었고 그 형식 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이러한 차이 때문에 야권은 하나 된 행동보다는 이미 다가와 버린 ‘그 다음’에 더 신경이 쓰이는 지도 모른다.

국민의 마음은 이미 대통령을 탄핵했으나 현실엔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답답함과 분노. 이는 국민 주권을 몸으로 경험할 수 없는 ‘형식 민주주의’와 ‘국가주의’를 사는 우리의 슬픔일 것이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이 분노와 답답함이 ‘국가의 주인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주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답과 행동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주권을 찾아가고 있는 중일 것이다.

2016년 11월, 이제야 우리 정치는 ‘국가’로부터 탈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