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은 어떻게 가는가 #2.
서른두 살의 마리우스 푸지아노스키는 세계에서 가장 힘센 남자였다. 맨몸으로 경비행기를 끌거나 냉장고 두 대를 들고 걸어야 하는 월드 스트롱맨 대회에서 다섯 번이나 우승했다. 전화번호부를 손아귀로 찢거나 프라이팬을 우그러뜨려 둘둘 말아버릴 수도 있다. 목은 나무둥치처럼 굵다. 어깨에는 단단한 승모근이 울퉁불퉁하게 붙었다. 육중한 몸을 두른 근육덩어리는 마치 갑옷 같다. 군살은 한 점도 없다. 매일매일 단련하고 운동한 육체다. 바늘구멍처럼 좁은 길을 통과해 세계 최고에 도달한 몸이다.
푸지아노스키는 링에 올라왔다. 싸우기 위해서다. 그는 폴란드 사람이다. 우리는 작은 나라의 영웅으로 사는 것이 어떤 일인지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바위 같은 그의 육체가 냉장고를 들고 당당히 앞으로 걸어갈 때, 러시아와 미국에서 온 이들보다 몇 발을 더 나아갔을 때, TV를 보는 폴란드 국민들은 열광했고, 몇몇은 울었을 것이다. 그가 어깨에 두른 붉고 흰 국기는 아마 꽤 무거울 것 같다.
장내 아나운서의 호들갑스러운 외침, 공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시합이 시작되었다. 상대는 한물 간 타격가, 영국 출신의 제임스 톰슨이다. 왕년에 그의 별명은 ‘아드레날린 과다분비자’였다. 온몸이 시뻘겋게 변해서 앞뒤 안 가리고 상대에게 덤벼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로의 세계는 냉혹했다. 흥분만으로 이길 수 있는 상대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는 팔이 꺾이고 목이 졸려서 랭킹 밖으로 굴러떨어졌다. 결국 돈이 필요한 코미디언이나 투포환 선수, 럭비선수 등을 상대하는 서커스 매치의 단골 출전 선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서커스 매치? 서커스라고? 야속하게도 사람들은 이 경기를 그렇게 부른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힘센 사나이 마리우스 푸지아노스키는 고향의 숲에서 육 개월 동안 열심히 연습했다. 바위를 들어올리고, 나무등걸을 뽑아 휘두르고, 맨몸으로 절벽을 올랐다. 샌드백을 치며 격투기 훈련도 했다. 제임스는 맥주를 마시며 놀았다. 뱃살은 희멀겋게 처졌다. 눈알에 감돌던 살기는 사라진지 오래다. 그러나 그는 겁도 없이 마리우스를 돼지 같다고, 엄마가 어렸을 때 바닥에 떨어뜨려서 못생기게 된 거 아니냐고 놀려댄다.
마리우스 푸지아노스키는 기습적으로 톰슨을 쓰러뜨리고 누른다. 톰슨은 억지로 몸을 비틀어 간신히 일어난다. 마리우스는 온몸에 아드레날린이 치솟아 흐르는 것을 느낀다. 뻗은 주먹은 톰슨의 얼굴에 맞는다. 제법 묵직한 느낌이 든다. 두 방, 세 방이 연달아 꽂힌다. 톰슨은 비칠비칠 뒷걸음질친다. 마리우스는 사정없이 돌격한다. 톰슨은 그의 허리를 껴안고 늘어진다. 빨리 상대를 때려눕히고 싶지만 찰거머리처럼 붙들고 달라붙는 톰슨을 어떻게 하기가 쉽지 않다. 마음이 급해진다. 마리우스는 상대를 힘으로 코너에 몰아넣고 묵직한 주먹을 마구 날린다. 톰슨은 가드를 단단히 올리고 버틴다. 순간적으로 마리우스의 다리를 살짝 걸어 넘어뜨리고 때리려 했지만 마리우스의 방어는 완벽했다. 공이 울린다. 첫 라운드가 끝났다. 세계에서 가장 힘센 사나이의 압도적인 우세다.
잠시 쉬는 시간. 마리우스의 숨은 거칠다. 입에 잠시 물을 머금었다가 뱉는다. 톰슨은 오히려 여유가 있다. 코치와 이야기를 나눈다. 찢어진 이마의 피부에 코치는 바셀린을 바른다. 다시 라운드가 시작된다. 둘은 링 중앙으로 나간다. 글러브를 마주댄다. 다시 시작이다. 서로를 맴돌며 빈틈을 노린다. 마리우스는 주먹을 두어 번 휘두른다. 톰슨은 마리우스의 정강이를 찬다. 잠깐 비틀거리는 사이에 톰슨의 주먹이 마리우스의 눈 사이에 명중한다. 마리우스는 가드를 올리고 뒷걸음친다. 그리 강한 펀치도 아닌데, 뭔가 이상하다. 톰슨은 마리우스의 허리를 붙잡고 쓰러뜨린다. 몸 아래 깔린 마리우스의 팔을 꺾는다. 암 락, 혹은 기무라 락이라고 불리우는 저 기술에 걸리면 빠져나오지 못한다. 마리우스는 발버둥친다. 그의 팔을 누르는 톰슨의 몸 전체가 들썩인다. 하지만 팔을 놓아주지는 않는다. 항복하지 않으면 팔이 부러진다. 마리우스는 이를 악물고 탭을 친다. 톰슨은 마리우스의 팔을 놓아주고는 두 손을 번쩍 들고 링을 빙빙 돈다. 세계에서 가장 힘센 사나이는 삼류 격투가에게 그렇게 맥없이 패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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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살이 된 나는 선배의 스튜디오에 틀어놓은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마리우스와 톰슨의 싸움을 보았다. 느린 화면을 틀어놓고 해설자는 말했다. 제임스 톰슨 선수가 무난히 승리했습니다. 마리우스 푸지아노스키, 워낙 힘이 센 선수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혹시나 했었는데요. 하하,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 느린 화면을 보시면 주먹이 날아와서 얼굴에 맞았을 때 푸지아노스키 선수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아버리거든요. 저런 게 사실 결정적인 차이죠. MMA 선수들은 절대 눈을 안 감도록 훈련이 되어 있거든요.
이건 좀 묘하다고 생각했다.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남자가 아마추어 취급을 받는다. 그가 흘린 땀의 십 분의 일도 흘리지 않은 이에게 맥없이 두들겨맞고 팔이 꺾여서 패배한다. 상대보다 근성도 힘도 체력도 스피드도 훨씬 월등한데도.
그러나 나는 내가 그와 비슷한 처지라는 걸 전혀 몰랐다. 나는 사진과 관련된 거라면 뭐든지 익히고 공부했다. 암실도, 디지털 후작업과 프린팅, 컬러 매니지먼트도, 스튜디오 조명도. 심지어는 다양한 필드 경험을 쌓겠답시고 상업사진 일도 많이 받아서 했다. 정치인도, 영화배우도, 인테리어도, 음식도, 제품도 찍었다. 지식을 마구 집어삼켜서 울퉁불퉁한 근육을 만들면 강해질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작업에 관련된 지식과 경험이 축적될수록 정작 작업을 하는 것은 더욱 괴롭고 힘든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촬영도, 디지털도, 프린트도 잘 아는 사람은 그 분야에서 흠결이 있는 작업을 내놓을 수 없다. 특히 외국의 작가들이 어떤 미학적 성취를 이뤄내고 있는지까지 안다면, 개념적으로도 매끄럽고 아름다운 작업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완벽한 작업은 거의 없다. 있다고 해도 상대의 얼굴을 피투성이가 되도록 여러 번 때리고, 또 두들겨맞아보지 않은 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지식은 밧줄처럼 나를 옭아맨다. 더 많이 알수록 오히려 몸을 조여든다. 작가들은 작업을 통해서만 성장한다. 작업을 하고, 그것을 세상에 내보이고, 부끄러워하고, 다시 작업을 하고, 부끄러워해야만 더 좋은 작업을 하게 된다. 작가란 길 위에 있는 존재들이다. 무엇을 지금 가지고 있느냐보다, 어느 방향을 향해 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똑똑한 이들은 어설픈 작업을 할 수도 내보일 수도 없다. 그러면 작가는 성장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지식은 작업을 이상화하며, 작업은 점점 두렵고 싫은 것이 된다. 나는 작가들이 전화를 걸어서 얻어가길 원하는 내 지식들이, 사실 나를 옭아맨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단지 언제든 작업을 시작하기만 하면 내 작업의 든든한 자산이 되어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마리우스 푸지아노스키가 열심히 단련한 자신의 육체를 믿고 있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