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의 작은 우연이 교차하다 #3



금요일 저녁이다. 도시는 한껏 달아오르고 있을 시간이다. 창밖으로 내려다보는 시골의 풍경은 어둡고 적막하다. 멍하게 앉아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 머리는 이상할 정도로 맑고 차분하다. 잔뜩 울고 난 뒤와 비슷한, 그런 묘한 기분.

어제는 총장 면접을 보았다. 정규직 전환을 위한 것이었다. 말끔한 정장을 입고 기관의 ‘미션’과 ‘철학’을 죽어라고 외우는 긴장한 지원자들 사이에서 구겨진 재킷만 걸치고 멍하게 앉아 있는 기분은 묘했다. 심지어 논술시험도 봤다. 기관의 조직문화를 선진적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서술하라는 말이었다. 나는 비정규직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휘갈기고 시험장을 제일 먼저 나왔다. 마음껏 채점해 보라지. 사실 떨어지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 어떤 핑계도 대지 않고 서울로 돌아갈 수 있도록.

총장은 언제나처럼 다정했다. 나는 그를 좋아한다. 그는 한국의 총장들 중 가장 뛰어난 과학자다. 옆자리에 앉아서 서류를 내려다보는 행정처장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그는 나를 떨어뜨리자고 목소리를 높인 사람이다. 고작 옷차림이나 지각 따위를 이유로. 총장은 물었다. 김현호 씨는 자유로운 영혼인 것 같아. 그래도 여기는 공공기관이니까 기본적인 것들은 지켜야 해요. 나도 양복 입고 아홉 시까지 출근하잖아. 앞으로 그럴 거지?

네. 나는 대답했고 결국 정규직이 되고야 말았다.

즉, 연말에 서울로 돌아가는 계획을 포기한 것이다.

처음에 잡 오퍼를 받을 때 계약직을 선택하면 연봉 오백만 원을 더 준다고 했었다. 나는 냉큼 받아들였다. 다들 미쳤다고 했지만 내게는 계산이 있었다. 통합연금인 사학연금에 가입하면 조기 퇴사시 퇴직금도 손해를 보고 실업급여도 못 받는다. 게다가 사람들과 정들면 떼어내기 쉽지 않을 거라는 걸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전 직장의 동료들과 헤어지는 일은 끔찍했다. 그들은 그야말로 울며 매달렸다. 화를 냈다가 사정했다가 다시 화를 냈다가 했다. 힘든 기억이었다.

여기 와서는 아예 2년 후에는 돌아갈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다. 교수들과는 정이 많이 들었지만 오히려 동료들과는 정을 붙이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들을 위해 싸우는 모습을 보인 적도 없다. 못 하는 것을 억지로 해내려 노력한 적도 없다.

화를 낸 적은 한 번 있었다. 팀원 한 명이 정규직 전환 서류심사에 떨어졌을 때였다. 나는 학장실에 쳐들어가서 사납게 따졌다. 이게 그렇게까지 대단한 자립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가요. 어린아이 같은 구석이 있는 학장은 눈시울이 벌개졌다. 나 역시 그의 탓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공공기관 선진화니 뭐니 해서 새로 나오는 정규직 자리가 일 년에 대여섯 개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학장이 아니라 총장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팀장이나 센터장도 계약만료로 그만두는 이상한 직장이었다. 하지만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왜 사람 밥벌이를 가지고 그렇게 장난치는 겁니까.

하지만 아무리 싸워도 나는, 여전히 ‘떠날 사람’이었다.

수백 권의 책을 만들었지만 진짜 내 거라고 느껴지는 책은 고작 서너 권 뿐이다. 서울대 출판부에서 아무리 열심히 자신을 깎고 다듬어도 나는 그저 책 만드는 기능공에 불과했다. 책은 오직 교수들의 것이었다. 그게 분했다. 눈을 점점 더 날카롭게 단련했다. 작년 서울대 디자인학부 특강 때는 교수와 강사, 학생들 앞에서 웃으며 말했다. 원래 디자이너들은 눈이 단련되지 않아서 색을 잘 못 보거든요. 제 경험상으로는 10년차 실장들이 2,3년 된 초짜 사진가들보다 더 색을 못 봐요. 아니, 인쇄소에서 쓰는 가색-감색과 RGB모니터의 용어가 달라야 한다는 것 자체를 몰라요. 그 자리에 있었던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

나는 점점 심술궂어지고 있었다. 전자책 업무 프로세스를 세팅한 이후에는 일을 멈추고 책을 읽었다. 2년 동안 할 일은 대부분 해냈다고 생각했다. 성균관대 국문과 출신의 신입 편집자 두 명이 서울에서 내려왔다. 둘 다 나에 대한 일종의 레퍼런스 체크를 한 모양이었다. 천정환 교수와 출판학교 강사들이 나한테 일을 배우면 좋을 거라고 대답했다며 순진하게 말하는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미안한데 저 그분들 잘 몰라요. 같이 일한 적도 없고. 근데 생각해 보세요. 말 새어나가면 입장 곤란해질 게 뻔한데 나쁜 말 하겠어요? 그렇게 순진해서야. 속은 거지 뭐.

사무실에는 몇 달 전에 들어온 영남대 디자인과 4학년 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정재완 교수에게 다른 건 다 괜찮으니 툴 다루는 기본기만 된 학생을 보내달라고 했었던 것이다. 키가 아주 크고 날카로운 인상의 복학생이었다. 말이 없었고 자신감이 부족했다. 집안 형편도 그리 좋지 않은 듯했다. 작업은 학생치고 깔끔한 수준이었다. 단지, 디테일을 끝없이 다듬기 위해 자기 시간을 무한히 쏟아붓는 점이 기특했다. 작업한 걸 가져와 보라고 하면 깔끔하게 자른 인쇄물을 조심스레 내밀고 고개를 숙인 채 손톱을 바라보며 쥐어뜯었다.

몇 달 후, 나는 그를 불러냈다. 눈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재원씨 사업자등록 해. 당분간 내가 먹고살면서 돈 모으게 해줄께. 그 다음에는 유학 가. 지금 취업하면 안 돼. 미안하지만 지금 당신이 갈 수 있는 회사 사수들한테 일 배우다가는 작업 습관 망치기 딱 좋아.

그는 언제나처럼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손톱만 뜯고 있었다. 나는 마음이 조금 급해져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한국 최고의 피드백을 받게 해 줄께.

그는 결국 사업자를 냈다. 세 사람을 키우는 일은 조금 재미있었다. 매일매일 실력이 느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누가 이렇게 챙겨줬으면 얼마나 좋아,하고 투덜거리기도 했다. 고작 일이 년 같이 일할 사람들이니 지금 좀 더 즐거웠으면 좋겠다. 어디 가든지 타박받지 않고 일할 사람으로 만들어놔야 한다. 그 교수와 선배들은 내 이런 성격을 알았던 걸까.

올해 초, 나는 글을 포기할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저 열 매짜리 짧은 리뷰나 서평을 취미로 쓰는 것으로도 비평가라는 알량한 이름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이곳은 얄팍하다. 연말에 서울에 올라가면 예쁜 책을 만드는 출판사와 아름다운 서점을 하면 어떨까. 글 쓰는 시간은 확보하기 어렵겠지만, 글보다는 아무래도 일이 더 쉽다. 일은 그저 하면 된다. 굶지 않을 자신은 있다. 마음도 더 편안할 것이다. 유명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함께 작은 프로젝트나 전시기획 같은 걸 하면 어떨까. 그런 것으로도 충분히 이 언저리를 맴돌며 행세할 수 있다. 나는 두 가지를 다 ‘온전히’ 가질 수는 없다는 걸 뼈저리게 알고 있다. 정말 많은 밤을 새웠다. 나는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는 걸 배우고 말았다. 그러므로 빼앗길 거라면 차라리 버리는 게 낫다.

굳이 하나를 버린다면 글쓰기다. 글쓰기는 막막하다. 밥벌이도 되어주지 않는다. 나는 같은 자리를 계속 맴도는 자신에게 지쳐 있었다. 계속 고쳐쓰던 글을 내려다보며 평생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마지막으로 쓰는 긴 글이 될 지도 모르는데, 누가 읽어주면 좋겠다.

스승은 한번도 내 글에 코멘트를 해준 적이 없다. 서동진에게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선배들에게 부탁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후배들은 모진 소리를 하지 않을 것이다. 휴대폰의 전화번호 목록을 두세 번 훑었다. 똑똑하고 글을 잘 읽을 것 같은 사람. 가급적이면 친하지 않을 것. 예술이나 사진의 영역에 속한 사람이 아닐 것. 그러나 열심히 읽어줄 이유가 조금은 있을 것.

결국 내 눈은 하나의 이름에 멈추었다. 아주 오래 머뭇거리다 번호를 눌렀다. 그리고 다시 취소했다. 그러니까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팔십 매짜리 글을 읽어달라고 뜬금없이 전화를 한다는 말이지. 이게 과연 제정신으로 보일까. 아니 나는 제정신이 맞기나 한 걸까.

하지만 나는 꽤 절박했다. 결국, 버튼을 누르고야 말았다.

돈 때문이기는 하다. 하지만 돈 때문만은 아니다. 삶이 공허한 사람은 생각보다 많은 모양이다.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여러 선배와 친구들이 지분투자를 하면 안되겠냐고 말해왔다. 나 목숨 걸고 할 거긴 한데 망할지도 몰라. 사양산업이잖아. 다들 개의치 않았다. 나는 그 마음을 안다. 누군가를 쏘아올리며 같이 날아가는 기분을 조금쯤 느끼고 싶은 것이다. 지금 내가 그러하듯이.

장난삼아 ‘장단점’을 써 보았다. 명확해 보였다. 무엇보다도 내가 가진 추는 그렇게 많지 않다. 나는 양팔저울의 한쪽에 ‘글’을 올린 후 다른 한쪽에 ‘서점’과 ‘내 출판사’를 올린다. 여전히 위태로운 균형을 이룬다. ‘글’ 쪽이 조금 더 무거운 것처럼 흔들거린다. 예전에는 ‘서점’과 ‘내 출판사’가 훨씬 무거웠었다. ‘글’ 쪽에 ‘돈’을 얹어도 꼼짝하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고작 몇 달 동안 ‘글’ 쪽이 많이 무거워진 모양이다. 정말로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매일 한다.

이제 ‘글’ 쪽에 ‘돈’을 얹으니 양팔저울은 확 기울어지고 만다. ‘일류인 사람들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의 즐거움’을 서점 쪽에 얹는다. 미동도 하지 않는다. 나는 내 자신에 만족하지 못하는 채로 그들과 함께 있고 싶지 않다. 그거야말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시골에 처박혀 점점 감각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공포’를 서점 쪽에 얹는다. 조금 떨리는 듯도 하지만 여전히 균형은 그대로다. 나는 내 감각을 혼자 단련하는 법을 안다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세헤라자데’를 집어든다. 손에 잡히는 느낌이 생각보다 묵직해서 조금 놀란다. 이걸 어느 쪽에 올리는 게 맞는 걸까, 망설인다. 역시 ‘글’ 쪽이겠지. 이미 기울어진 저울에 무거운 추를 올리니 이제 전혀 흔들리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이곳에 남게 되었다.

하지만 이 추는 내 것만은 아니다. 아쉽지만 언젠가는 예쁜 소리를 내며 굴러가버리고 말겠지. 추가 갑자기 눈을 반짝 뜨고 인사를 할지도 모른다. 재밌었어. 잘 놀았어. 안녕. 그러면 나는 놀란 척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웃을 것이다. 그러게. 정말 재미있었어. 그리고 고마워. 뭐가? 읽어줘서, 읽게 해줘서. 응 나도 고마웠어. 그래. 자주 연락하자, 친구. 응. 안녕. 안녕.

추가 줄어드는 일에는 아주 익숙하다. 나는 비틀거리며 많은 추를 잃었고, 또 버리며 걸어왔다. 앞으로도 그렇게 걸어갈 것이다. 다시 양팔저울을 꺼내 무게를 재면 되는 일이다. 다시 재면 다른 추들의 무게가 또 바뀌어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오래 고민하지는 않을 것이다. 잠시 멈추어 생각한 후 그저 터벅터벅 걸어가면 된다. 더는 걸을 힘이 없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