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피플들의 점심식사



강용석, <동두천 기념사진>, 1984.

오랜만에 본 이영준은 몸에 딱 맞게 떨어지는 베이지색 모직 코트를 입고 빨간 머플러를 둘렀다. 여기 있는 분들이 다 착하셔서 무슨 싸움이 될지 모르겠네, 아예 좀 합을 맞춰서 들어갈까요? 브루스 리랑 척 노리스처럼? 희끗희끗한 머리의 강용석이 부드럽게 웃는다. 독하게 밀고 들어가던 작가는 이제 시골 선생이 되었다. 김정은은 상대방의 팔을 잡으며 말하는 버릇이 있다.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눈을 피하지 않고 웃는다. 아이, 좀 써주세요. 네?

사실 내게는 그녀를 질투하는 못생긴 마음이 있다. 나도 유학을 가고 싶었고, 사진책을 만들고 싶었다. 잡지 편집장을 해보고 싶었다. 나라면 더 잘 만들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친절하게 웃는다. 아우 죄송하지만 여기 이사빈 큐레이터한테 이미 예약됐어요. 누나 그치? 어 누나예요? 이 누나가 이상하게 안 늙어서 그렇지 나이 사실 완전 많거든요. 야 너 장난해? 전 의외로 어려요. 타고난 기품 탓에 좀 들어보이는 거지. 근데 저 효율이 낮아서 마감 세 개는 절대 못 해요. 김정은은 웃는다. 이번 국립현대 도록이 글 쓰는 분들 다 가져가서 잡지를 만들 수가 없네요.

강운구와 최재균이 들어온다. 한국 사진을 병들게 하는, 늙은 정신주의자가 왔구나. 자리에 일어나서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 선생님, 오셨습니까? 어어 그래, 선수들 다 여기 모여 있네. 지나가다 그냥 들렀는데 오늘 뭐 하나 보지? 박진영이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아 선생님 오시면 너무 역정나실까봐 연락 안 드렸는데 또 알고 오셨네요. 아냐 나 전시만 보고 갈 거야.

지하 소극장에는 사람이 가득하다. 돈 많은 건축가 윤성준이 맨 앞에 앉았다. 독일 출신의 작가 원성원은 맨 뒤에서 다리를 꼬고 있다. 대담은 지루하다. 몇 번 도발하려 했지만 잘 되지 않는다. 사실 젊은 작가들도 문제라고 봐요. 너무 지루하고 단조로워서 요즘은 전시장 잘 못 가죠. 보는 힘은 현격하게 약해졌다고 생각해요. 작가 박승훈이 흥분한다. 아까부터 자꾸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혼자만의 생각 아닌가요? 그래요? 다채로운 양상이 펼쳐지는 막 졸업한 작가들 말씀해 주시면 제가 가서 다시 볼께요. 아, 중대 나오셨죠. 생각해 보니 작년 한미에서 천경우 선생님이 학생들 데리고 한 전시는 좋았어요. 그러네요. 젊고 좋은 작가들이 없지는 않네요. 제가 틀렸네요. 중대 교육은 좋은가 봐요. 그의 말문이 막힌다.

젊은 작가들이 와서 인사를 한다. 제발 그런 짓 좀 하지 마. 예의바른 작가 지겨워. 아 반가워요. 작업 잘 보고 있어요. 웃으며 손을 잡는다. 비평을 하고 싶어하는 젊은 이기원을 끌고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이 친구 좀 데려다가 쓰세요. 20대 유일의 비평가인데. 우리 개체수가 프로레슬러보다 더 적은 거 같아. 관장님이 좀 밀어주셔야지 어떡해요. 아니 어떻게 밀어줘요. 어떻게든요. 수단 방법 가리지 마시고. 이기원은 옆에서 뻘쭘하게 서 있다. 그는 내가 2010년에 받았던 격년제 미술평론상의 작년 최종심에서 미끄러졌다. 나는 묘한 쾌감을 느낀다. 하지만 속물 놀이도 이제 좀 지겨워진다.

이사빈과 함께 빠져나온다. 누나 내가 요즘 바르트랑 아고타 크리스토프랑 카트린 밀레를 봤는데 그게 진짜 윤리적인 거 같아. 아고타 누구? 크리스토프. 적어둬야겠다. 카트린 밀레 그 아트 프레스 편집장. 아 책도 있어? 응. 좋은 거 같아. 읽기는 고통스럽지만. 근데 사진은 아라키가 윤리적인 거 같고. 살가도는 완전히 이번에 마각을 드러냈더만. 진짜 천박하더라. 넌 윤리에 원래 관심이 많은가봐. 그러게 나의 성감대 같은 거라고 할 수 있겠지. 나도 요즘 앉아서 책이나 읽고 싶다. 서울관 디렉터 완전 미쳤어. 이지윤? 학예연구관들이 그런 장사꾼 말 들으려면 진짜 짜증나겠다. 누가 아니래니. 수틀리면 회의 소집하는 게 일이야. 흐 누나 나 여기 세워줘. 그래 조심해서 가고, 안녕,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