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을 아주 좋아한 사나이



작은 마을에 사는 한 사내를 떠올려보죠. 그는 평생동안 연극을 좋아해왔습니다. 딱한 사정이 있어서 집밖으로 자주 나갈 수 없는 처지라, 극본을 읽으며 지내왔습니다. 아주 허접한 극본부터 소포클레스, 셰익스피어, 베케트까지 읽었죠. 극본을 읽을 때면 그는 아주 다른 사람이 됩니다. 지문을 그대로 흉내내며 방 안을 분주히 왔다갔다 하기도 하고, 격앙된 어조로 소리를 지르며 두 다리를 벌리고 가슴을 탕탕 치기도 합니다. 날이면 날마다 극본을 읽으며 연기까지 하는 통에 외워버리고 만 연극이 어림잡아도 구 백 편이 넘습니다. 사소한, 아주 사소한 지문까지 달달 외운 것만 해서 말입니다. 그 연극 안에 등장한 등장인물을 모두 더해보면 천 칠백 명 정도될 겁니다. 어렵사리 모은 돈으로 마을 소극장에서 이따금 연극을 볼 때면 그는 맨 앞자리에 앉아 배우들이 대사를 읊기 전에 가만가만 한 문장씩 앞서 중얼거리곤 했습니다. 배우들이 대사를 틀리거나, 대본에 나온 동작을 건너 뛰면 웃으며 고개를 살짝 젓기도 했죠.

그런데 말입니다. 어느날 밤, 그에게 작은 사건이 생겼습니다. 마을 소극장의 주인이 그에게 말을 걸어온 겁니다. 연극 끝나고 붉은 커튼이 무대 위로 내려왔을 때 즈음, 주인은 손님이 거의 없는 좌석 사이로 성큼 성큼 걸어와 그의 옆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습니다. 예전에는 한 번도 얘기를 나눠본 적이 없는 사이였죠. 그는 놀란데다 낡은 의자에서 솟구쳐오른 먼지를 마신 탓에 콜록 콜록 기침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인이 말했습니다. “ 놀라게 해서 미안합니다만, 당신에게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주인은 한동안 침울한 표정을 짓더니 말을 이었습니다. “사실 다음 달에 극장이 문을 닫습니다.” 그는 안타까운 마음에 탄식하고 싶었지만, 사실 그러기엔 극장에 찾아 온 횟수가 좀 부족하지 않나 싶어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극장 문을 닫기 전에 마지막으로 딱 한 번, 연극을 한 편 올리고 싶습니다.” 사내는 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주인의 마지막 제안을 들은 순간 귓등과 목덜미까지 빨개지고 말았습니다. “혹시 마지막 공연에서 당신이 역할을 하나 맡아주지 않겠습니까? 아무 연극이나 정해봅시다. 딱 한 번 하는 공연이니까 부담도 없을 겁니다.”

사내는 길게 묻지 않았습니다. 극장 주인에게 목례를 하며 악수를 청했을 뿐입니다. 왜 제게 이런 제안을, 이라는 대사는 클리셰인데다 그런 모습을 보였다간 일생일대의 기회가 날아가버릴까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는 서둘러 극장을 빠져 나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밤하늘의 별은 고흐의 그림에서처럼 어지럽게 돌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단 한 편의 연극이라. 조지 버나드 쇼가 좋을까? 아니야, 마지막이잖아. 좀 더 클래식한 걸 해야겠지. 대작이라고 할 법한 걸 해야지. 아냐, 아냐. 아주 현대적인 게 나을지도 몰라. 요즘 사람들은 누군가 한 명 벗는 그런 걸 좋아하지 않나? 에쿠스? 고도를 기다리며? 뮤지컬적인 요소가 들어간 건 어떨까? 문을 닫는 소극장 자체를 주인공으로 한 실험 극? 그것도 아니면 부조리극? 추리극은 어떨까? 탐정이 나와서 관객석 안에서 이 안에 범인이 있다고 소리치는 건 어떨까?

어떤 역할을 맡을지도 고민이었습니다. 역할을 제안해줬다고 뻔뻔스럽게 주연 역할을 하겠다고 나설 건지, 수풀더미나 지나가는 행인처럼 단출한 역할에 만족하는 욕심 없는 사람처럼 굴어야 할 지. 여자로 변장해봐야 할 지, 아니면 1인 21역에 도전해봐야 할 지. 연극을 보고자 하는 욕망이 컸던 만큼, 남에게 연극을 보여주고자 하는 욕망도 컸다는 걸 사내는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극장 주인과 다시 만나기로 한 사흘 뒤까지 사내는 끙끙 앓으며 때로 눈물짓기도 하고 한숨을 깊이 내쉬기도 했습니다. 왜 공연을 딱 한 번만 하겠다는 건지, 여러 역할을 한꺼번에 맡으면 안 되는 건지. 사내는 옷장 문을 열어 이 옷, 저 옷을 꺼내 입어보다가 지쳐 쓰러져 잠들었습니다.

마침내 극장 주인과 만나기로 한 날입니다. 사내가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미 연극은 평범하고 대중적인 것으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주연과 친한 친구지만 결국에는 배신을 하고야 마는 조연 역을 맡는 게 어떻겠느냐고 극장 주인이 제안했습니다. “입체적 인물이고 흥미로운 역할이지요. 당신에게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듯 합니다.” 주연 역할은 연극을 자주 보러 오던 잘생긴 청년에게 맡겨졌습니다. 사내는 청년의 딱 벌어진 어깨와 귀여운 큐피드 같은 미소를 힐끗 힐끗 쳐다봤습니다. 청년이 선뜻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자 그는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뒤로 물러났습니다.

연습은 바로 시작됐습니다. 청년의 서툰 대사와 어설픈 몸짓은 주연 역할에 썩 적합해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청년이 죄송하다고 사과하며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환하게 웃을 때면, 그를 나무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청년이 연습하는 파트가 되면 그는 무대 구석에 앉아 중얼 중얼 주연 역의 대사를 한 문장씩 앞서 읊었습니다. 다른 조연들이 대사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건 그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단 한 번의 연극 무대가 될테고 그는 무대가 완벽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연습에 늦기 일쑤였고, 배역을 맡은 사람 중 전문 배우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연극은 엉성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연습이 한 번, 두 번 되풀이 될 때면 그는 답답함 때문에 눈에 눈물이 맺힐 지경이었습니다. 예전에 관객석에서 무대를 지켜보며 까탈스럽게 비평하던 때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나머지 사람들은 점점 나아지는 호흡에 고무돼 서로 손뼉을 부딪히기도 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연습 무대에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날의 해가 떴습니다. 오늘은 극장이 문을 닫는 날입니다. 마을의 소극장일 뿐이고, 그런 극장이 자금난 때문에 문을 닫는 건 지금까지 수도 없이 일어난 일입니다. 그러니까, 이건 아주 아주 자그마한 사건입니다. 하지만 바지를 반쯤 입다 말고 침대에 걸터앉아 입을 벌리고 있는 사내에게 이건 평생 일어난 일 중 가장 큰 사건입니다. 오늘 그는 주연급 조연으로 연극 무대에 오르게 됩니다. 물론 대사는 전부 외우고 있고, 몸짓 하나 하나, 다른 배역들의 것까지 외우고 있습니다.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가 딱 하나 있다면 그에게 이 한 번의 연극이 지나치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는 연극을 격렬하게 사랑합니다. 그런데 딱 한 번으로 끝난다는 것. 문제는 바로 이겁니다.

저녁이 되면 그는 무대에 설 테고, 그 뒤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박수를 약간 받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연극은 완전히 영영 끝나버립니다. 자신을 조연으로 한 연극이 영영. 완전히. 두려워서 그는 지금 바지를 입다 말고 멍청히 앉아있습니다. 그가 이 연극에 만족하게 될 가능성은 아주 낮습니다. 그는 취향이 까탈스럽고 웬만한 연극 비평가보다 훨씬 수준이 높은 관객입니다. 그러나 그는 연극 무대에 직접서봤던 적이 없지요. 이번 딱 한 번입니다. 아무리 희망적으로 봐줘도, 이후에 무언가 더 있으리라고는 기대하기 힘듭니다. 그는 작은 마을에 사는 평범한 사내이고, 갑자기 브로드웨이나 오프 브로드웨이, 오프오프 브로드웨이로 진출해서 평생의 꿈인 연극에 모든 걸 던진다던지 하는 건 영화에나 나오는 일입니다.

그는 무대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작정입니다. 실수를 해서는 안됩니다. 돌이킬 수는 없으니까요. 이건 초연이자 마지막 공연입니다. 그의 인생에서나, 문을 닫는 소극장에서나 그렇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일요일이네요. 그가 마지막 무대에 오른 날과 똑같은 요일입니다. 당신의 너그러운 상상력에 모든 걸 맡기며 여기서 붉은 커튼을 내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