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hrazadMar 19Unlisted
이토록 기나긴 단 한 번의 독서 (1)
- 1943년 12월, 왜소한 사내가 철조망 안에 서있다. 이름은 프리모 레비, 스물 네 살, 유대인이다. 팔뚝에는 174517이라고 새겨져있다. 수인번호다. 이 안에서 죽는다면 그는 레비로서 묻히지 못하고 174517로 끝장이 난다. 독가스 치클론 B를 들이마시고 다른 시체 2,000구와 함께 켜켜이 쌓여 소각된다. 머리카락은 잘려 카페트와 가발이 되고 옷과 신발은 재활용되고 말 것이다. 레비는 눈을 감고 단테의 <신곡>을 암송한다. 그러나 여기는 수용소 중에서도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단테를 외우는 영리한 청년이라는 사실이 생존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세계다.
- 2014년 10월, 한 여자가 철창 바깥에 서있다. 하얀 꽃다발을 한 팔로 안고 다른 팔로는 단단히 잠긴 철창을 흔들고 있다. 여자는 한국 인천 국제공항에서 에어프랑스를 타고 프랑스 파리에서 내렸고, 파리에서 다시 이탈리아 토리노로 오는 비행기를 탔다. 비행에는 총 16 시간이 소요됐다. 토리노의 호텔에서 이 철창 앞으로 오기 위해 버스도 두 번 갈아탔다. 철창이 열리지 않으면 모든 움직임은 무의미해지고 만다. 여자는 철창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그녀가 찾고 있는 사람은 이 철창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