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회사 동료가 곧 결혼을 한다.
술자리나 사석에서 이 친구를 볼 때마다, (꼭 이 친구가 아니더라도 결혼한다는 사람들을 보면) 지금이라도 도망치라던가 다시 잘 생각해 보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이 친구는 늘상 “사랑”을 내세우며 자신은 행복할 거라고 다짐하곤 한다.
우리 부부는 결혼 후에, 결혼이라는 것을 왜 하는지에 대해, 서로에게 진지하게 물었던 적이 있다. 사실 우리의 결론은 만약 다시 결혼 전으로 돌아간다면(이 기억을 가진 채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다던가…)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두가지를 의미하는데, 첫째, 우리가 결혼에 대한 환상이 너무 컸다는 것을 의미하고, 둘째, 결혼은 그렇게 즐거움과 행복함이 계속되는 일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은 호르몬의 노예다. 음식을 먹고 싶은 욕구, 잠을 자고 싶은 욕구,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고 싶은 욕구, 섹스에 관한 욕구들까지 이 모든 것은 호르몬에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인간은 호르몬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작년 한참 돌풍을 불러일으킨 바 있는 LCHF(고지방저탄수화물식) 다이어트도 그 원리는 인간이 탄수화물과 당분에 과다하게 노출되면서 비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인체의 호르몬(인슐린과 랩틴)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에 그 기반을 둔다.
결국, 우리가 게으름이나 과식의 산물이라고 생각했던 비만 조차 알고 보면(물론 게으름과 과식이 원인을 제공하는 것이긴 하지만) 호르몬의 문제일 정도로 우리는 호르몬의 노예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인간이 섹스를 하고자 하는 욕구는 다른 동물들의 종족번식의 욕구와는 별개로 작동하는 것이다. 아주 오래 전도 아닌 얼마 전까지, 우리 조상들은 섹스가 곧 임신인 세상에서 살아왔었다. 피임이라는 개념이 없던 그 시절에 말이다.
하지만, 성행위가 곧 출산으로 이어지는 사회 속에서,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스스로의 경제적 능력을 갖고 있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였고, 남자들의 경제적 뒷받침이 없으면 여자도 아이도 살아남을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이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 졌다. 그래서 종교의 권위를 빌려 결혼을 하지 않고 섹스를 하는 것을 “혼외정사”라 부르며 죄악시 하기도 했고, 법으로 금지하기도 했던 것이었다.
결국, 인간은 섹스를 하고 싶어하고, 가장 많은 사람이 ‘섹스’라는 신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 그리고 ‘섹스’로 인해 발생하는 후손이라는 골치덩이에 대한 책임소재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결혼이라는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이 시스템은 약 6천년 이상 이 지구를 지배해 왔다.
일부일처제냐, 일부다처제, 혹은 일처다부제냐 하는 사회 시스템의 차이와는 무관하게, 섹스와 종족번식의 욕구, 그리고 그렇게 발생한 아이들을 키우는 일을 해결하는 가장 적합한 시스템으로서 결혼은 유지된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 들어와서 이 시스템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아까도 언급했던 “피임”의 개발에 의한 것이었다. (물론 근대에도 물고기의 부레 등으로 콘돔을 만들어 썼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지만, 안정성(?) 측면에서 지금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겠다.) 다양한 피임 방법들이 나오면서 1. Birth Control이 가능해 졌고 (저임금 등의 열악한 자본주의 경제환경에도 영향을 받아)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늘어났다. 2. 섹스 = 출산이라는 공식이 깨지게 되고 3. 남자들의 경제적 도움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여자들은 굳이 결혼을 해야 할 필요가 없어지게 되었다.
남성 역시 마찬가지다. 1. 섹스 = 출산이라는 공식이 깨지고 2.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늘어나면서 남성의 일자리는 (아주 미미하게나마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고, 3. 경제적 능력이 충분한 남자는 결혼할 필요 없이 섹스를 할 수 있게 되고, 경제적 능력이 없는 남자는 결혼을 할 수 조차 없게 되었다.
자본주의가 부의 재분배에 실패한 결과, 특정 계층에 부가 집중되고 실업자나 저소득층이 늘어나면서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면서 이런 현상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그 크기가 증폭되고 있다.
여기에 조금 더 다른 요소들이 등장하는데 위에서 얘기했듯이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늘어나면서 남자의 경제적 도움에 의존하지 않게 된 일부 여성들은 남성과의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게 된다. 이것이 패미니즘 등 다양한 사회 운동 등으로 발현되면서 여성의 인권은 실질적으로 많은 수준 향상 되었다.(남성과 동등한 수준의 향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현대 한국 사회만 놓고 보면 많은 남성들이 맞벌이를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아직도 가사는 여자에게 의존하는 비율이 높다. 유교적/한국적 가치관 등이 당연한 평등을 제약하고 있는 상황이라 볼 수 있다. 그런 반면에 외벌이를 하는 남편들도 우리 아버지 세대처럼 직장생활에만 충실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경제적 능력을 가진 여성들의 권리 향상은 경제적 능력이 없는 여성들의 권리도 함께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사족이지만, 그렇게 보면 맞벌이 하는 여자와 외벌이 하는 남자가 둘 다 불쌍할 것 같은데 사실 맞벌이 하는 여자는 가사 노동 중 많은 부분을 돈으로 커버할 수 있겠지만, 외벌이 남자는 정말 돈을 많이 벌지 않는 이상 그렇게 하기도 힘들다. 물론, 이 역시 수입의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섹스’라는 측면에서는 그렇다 치고, 출산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아이는 꽤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또는 당연한 듯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요소(참 비인간적인 어휘선택이지만 결혼의 목적을 구성하는 요소이긴 하니.)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실 육아는 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내 자신을 내려놓는 일이다. 엄마는 더더욱 그렇고, 아빠 조차도 아이가 생긴 이후에 삶 속에서 “나 자신”을 포기하는 일이 늘어난다. 아이가 태어나고 젖을 때기까지 1년여의 기간 동안 엄마는 절대 8시간을 연속으로 잘 수 없다. 보통 강심장인 아빠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아빠도 그러하겠지.
그렇게 어느정도 키워서 돌이 지났다고 하면 그 때부터는 애가 기고 걷고 달릴 때가 된다. 넘어질까 다칠까 전전긍긍하다가 정신차려보면 어린이집에 가고 유치원에 가고, 허구한 날 아프고 열나고, 누굴 때릴까 맞진 않을까 걱정하다가 초등학교에 간다. 그 때부터 12년간의(또는 수년이 추가되는) 교육비 대장정이 시작된다. 결혼할 때 집 구해주는 건 인구가 줄고 있는 지금 한국에서는 크게 걱정할 문제가 아닌 것 같으니 쓸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이 글을 읽고 있는 대부분의 여러분이 그렇겠지만, 여러분은 그렇게 여러분을 키워내신 여러분의 부모님에게 어떤 존재인가? 여러분의 불효를 탓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원래 그렇게 만들어졌고, 응당 나이가 차면 부모로 부터 독립하여 스스로의 앞가림을 해야 하는게 맞는 것이다.
고로, 아이를 꼭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중이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라. 단순히 임신해서 살이 찢어지는 아픔을 겪으며 아이를 낳는 것이 육아의 가장 힘든 부분이라 생각한다면 정말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지금 15세가 되지 않은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의 미래도 그리 밝지 많은 않다.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대체될 수많은 직업들 때문에 “누구나 제 밥수저는 들고 태어난다”는 속담도 더 이상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여러분의 직업 또한 그러하다.) 점점 심화되는 환경오염과 이상 기후들 때문에,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당신의 가족은 함께 몰려오는 쓰나미를 바라보면서, 또는, 알 수 없는 질병에 피를 토하며 최후를 맞을 수도 있다.
이야기가 좀 멀리 돌아오긴 했는데, 다시 결혼에 대한 이야기의 결론을 내려보자면 그렇다. 이 시대의 남자들에게나 여자들에게나 결혼 자체는 유일한 선택지는 아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왜 결혼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하는지 깊이 생각하지 못한 채 결혼을 하고 있어서 안타깝다. (하지만, 더 안타까운 사실은 내가 지금 이런 얘기를 쓸 수 밖에 없게 된 이 현실이다.) 결혼이나 임신을 준비하고 있거나, 그 전 단계라면 스스로 한 번 잘 생각해 보길 바란다. 결혼 또는 아이를 갖는 다는 것은 나에게(우리에게) 무엇이며, 앞으로 무엇이 될 것이며, 이에 대한 나의 각오는 명확히 서 있는지를 말이다.
만약, 당신이 이미 늦어버렸다면, 끝없는 인내와 노력으로 열매를 맺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