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어 흐름으로

최근, 콜세라를 통해 프린스턴 대학교 로버트 라이트 교수의 <Buddhism and Modern Psychology> 강의를 듣고있다.

첫 강의를 듣고 느낀 점은, 대박. 지난 4년간 대학 강의를 들었지만, 차원이 다른 느낌을 받았다. 이 강의에서는, 이미 존재하는 분야의 이론을 단순히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넘어서서 두 다른 분야(종교와 심리학)에 동시에 접근하면서 생각의 새로운 범주를 만들어낸다.

강의를 선택하기 전 라이트 교수의 연구분야를 읽어보았는데, 저널리즘에서부터 종교, 심리학까지를 아우르며 마땅히 전문성이 있다고 보기 힘들만큼 광범위하게 연구 범위가 펼쳐져있었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강의를 하시는 분이 전문성이 없다는게 말이 되나?’하며 반신반의했던 나의 생각은, 방금 끝난 첫 수업에서 그것이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우리는 사람을 분야(category)로 판단하고 평가한다. 공대생, 미대생, 문과, 이과, 선생님, 의사, 예술가, 공무원… 그리고 그 틀에 맞는 성향으로 사람을 규정짓는다. 그 평가가 확률적으로 어느 정도의 경향성을 띤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으나, 잊지 말아야할 것은 우리가 기존에 존재한다고 믿고있는 ‘분야(category)’ 다시말해 ’틀’은 인간이 집단으로 움직이기 위한 편의를 위해 임의로 쳐놓은 울타리일 뿐,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들어, 인간은 지구 위에 국경이라는 ‘틀’을 씌워서, 세계지도 위에 금을 그어 놓았다. 그러나 지질학적으로 접근하면, 완전히 새로운 땅의 경계가 만들어 진다. 지구라는 자연을 인간 이성의 편의를 위해 나누어서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인간은 인간이라는 자연, 즉 자기 자신에게도 이러한 굴레를 씌우고 있다.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지금까지 나뉘어진 ‘틀’들은 오래되고, 익숙해져서 그것이 편리하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언급했던 것 처럼, 그 틀이 우주(universe)로서의 ‘세계’를 절대적으로 ‘분리’시키지 않는다.

나는 지난 몇 달동안, 가장 작은 우주이자, 내 피부에 맞닿아있는, 그리고 그 존재성을 회의할 수 없는 최전선인 ‘나’라는 우주에서부터 그 틀을 깨는 것을 시작했다. 그 중 발견한 한 가지를 예를들어 설명하고자 한다. 나는 음악 중에 재즈와 힙합을 좋아한다. 그러나 모든 재즈 음악과 모든 힙합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펼쳐놓고 살펴보면, 대체로 ’그루브’라는 새로운 키워드로 수렴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나는 그루비한 리듬을 좋아하는 사람인 것이고, 재즈와 힙합이라는 ‘틀’에 그런 성향을 띄는 곡이 많을 뿐인 것이다. 이처럼 틀로부터 나를 떼어내서 생각하는 습관을 기르고 있다.

또 하나의 예를들어 보자. 의사라는 직업을 하고싶어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그 이유가 다양할 것이다. 사회적 위상이 높아서, 돈을 많이 벌어서, 단순히 학문적으로 좋아서, 생명을 다루는 사명감 때문에 등. 모든 의사가 돈을 좋아한다거나, 모든 의사가 사명감을 가졌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기존에 존재하는 틀(집단)로서 개인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지닌 가장 작은 키워드를 펼쳐놓고, 그 키워드들이 자성처럼 붙는 어떠한 새로운 ‘경향성’을 발견하는 작업이 내가 고민하는 부분이다.

내가 발견하고자하는 그 새로운 ’경향성’이라는 것은, 결국 또다시 자연을 분리시키는 하나의 ‘틀’이기 때문에 그 또한 절대적이라고 할 수 없다. 게다가 ‘새로운 틀’로 바라보는 세상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사뭇 추상적일 수 있고 당장은 효율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기존에 존재하는 경계, 그 넘어의 것을 볼 수 있다는 가능성에 그 의의가 있다. 기존의 틀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고, 새로운 틀로서 우주에 접근 하는 행위를 통해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껏 틀의 경계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던 많은 불평등을 해소하고, 묶여있던 잠재력을 해방시키기를 기대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라이트 교수의 강의가 좋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방식, 기존의 틀을 존중하고 동시에 부정하면서 새로운 범주를 제시하는 것. 그것을 하고있기 때문이다. 다음 번에는 그의 강의 후기들을 간간히 올리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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