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사랑이에요

두오모

[민현아, 피렌체는 비가 와. 한국은 더위도 한풀 꺾인 여름의 끝이라면서?

나는 아직도 장마 속에 있어. 여긴 세계가 추적추적 접혀 내리는 것 같은 도시야. 오늘은 두오모의 회벽이 시커멓게 젖어드는 걸 보면서 종일 시간을 허비했어. 구시가의 옛 건물들 속에 꺾인 빗자락이 스밀 때마다 기분이 이상한 거 있지. 네 생각을 많이 했어. 쿠폴라 안의 가파른 계단을 빙빙 돌면서. 비에 잔뜩 젖어 축축해진 몸이 회벽에 쓸릴 때마다 몸을 떨면서. 비가 오는 피렌체는 조잡해져. 칙칙한 우산과 칙칙한 사람들이 거리를 채우고, 주황색의 두오모는 암갈색으로 변해 도시를 억눌러. 이상하지, 이 거리 위에 나 홀로 서서 널 기다리고 있다는 게. 지금은 가파른 계단을 또 내려가는 중이야. 오늘은 언덕 위의 하얀 집을 봤거든. 우리가 통화로 했던 말 기억해? 막연하게 했던 온갖 이야기들이 점점 사실이 되잖아.

민현아, 나 실은 이제 그 집에 살아. 주인집 할머니는 굉장히 좋은 분이셔. 빠르게 말하면 아직까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많지만, 웬만한 말은 어렵지 않게 알아듣고 대답할 수 있어. 프로슈토를 만든대. 나중에 타파스를 만들어 먹기로 했는데, 그때까지 내가 여기 있을지는 장담할 수가 없어서 잘 모르겠다.

어쨌든, 민현아. 여름의 끝은 꽤 한적하겠네. 잘 지내. 이제 마지막 편지야. 앞으로는 어디 있는지 알려 줄 생각도 없어. 답이 오지 않는 편지를 꾸준히 쓰는 게 넌 얼마나 소모감이 큰 일인지 모르겠지. 넌 항상 나한테 냉정했으니까. 이젠 애써 구차하게 남기는 일은 없을 거야.

피렌체는 가죽이 유명하대. 예쁘게 써. 그럼 안녕.]

빼곡하게 적힌 글자는 정갈한 자수를 박은 듯이 또박또박했다.

민현은 동봉된 가죽 책갈피를 들어올렸다. 우산과 비 문양이 정교하게 들어간 책갈피는 언뜻 봐도 종현이 한껏 신경을 쓴 티가 났다. 간결한 마지막 인사를 남긴 편지. 피렌체의 두오모가 그려진 엽서에 적힌 작은 글자들을 세심하게 읽던 민현은, 이내 옅게 웃음을 지으며 종현의 편지를 상자 안으로 밀어 넣었다. 열을 맞춰 정리된 방 안의 세 번째 책장 칸막이 안으로 들어간 박스는 벌써 수로 헤아리면 다섯 박스가 넘어간다. 수많은 편지들을 일 년간 받으면서도 민현은 단 한 번도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헤어진 사이에 갖출 구차함은, 한 사람만 가지고 있어도 충분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그 구차함은 늘 종현의 몫이었다.

처음 마지막 편지라는 말엔 심장이 떨어져 하루종일 심란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지만, 그로부터 일주일 뒤에 다시 돌아온 작은 엽서를 보고 맥이 탁 풀려 한참을 욕조 안에서 부유했다. 이번도 마찬가지였다. 가죽 책갈피엔 미련이 남은 비 냄새가 섞여 있었다. 냄새에 예민한 민현이 한참동안 맡은 결과로는 그랬다.

민현은 피렌체에 있을 종현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다. 종현은 놀라울 정도로 행선지를 자주 바꿔 체류 중이었다. 그 어떤 도시라도 종현과 어울리진 않을 텐데. 민현은 언덕 위의 하얀 집에서 걸어나오는 종현을 상상하다, 이내 생각을 접었다. 벌써 출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상념에 빠질 시간도 아까운 한국에서의 하루하루는 언제나 바빴다. 숨 돌릴 틈도 없는 아침이었다. 민현은 드레스룸에서 전날 미리 준비한 옷을 꺼내 입은 채로 시계를 더듬거렸다. 손에 잡히는 대로 건져 올린 시계는 일 년 전, 종현이 스위스에서 보내준 시계였다.

일진이 안 좋다. 민현은 옅게 인상을 찌푸리며 시계를 딸깍였다. 더는 고를 시간도 없었다. 초가을을 향해 흘러가는 계절은 시간과 비례해 숨 돌릴 틈도 없이 빨랐다. 민현은 급히 손이 닿는 그대로 가방을 집어든 채 달리기 시작했다. 두오모의 언덕을 거닐면서 편지를 기다릴 종현의 얼굴이 자꾸만 시야에 배긴다. 때 맞춰 도착한 아침의 지하철은 불쾌할 정도로 꿉꿉한 공기를 동반했다. 민현은 수많은 군상 사이에 낀 몸을 비척비척 뉘인 채로 눈을 감았다. 홍대까지는 아직 삼십여 분이 남아 있었다. 아침에 읽은 편지가 문제였는지, 민현은 도착할 때까지 두오모의 봉긋한 언덕 위를 거닐었다. 꿈이었다. 민현은 분홍색 하늘을 드리운 채 도망치는 종현을 붙잡으려 끊임없이 발을 움직였다. 언덕은 지나치게 푹신푹신한 탓에, 종현을 움켜쥘 참엔 푹푹 발이 빠져 빈번히 놓치기를 반복했다.

열 번째 종현을 놓치던 시점, 민현은 불에 데이기라도 한 듯이 눈을 뜨고 시계로 눈을 돌렸다. 열 시 오십 분. 당산임을 알리는 음성이 들려오고 있다. 민현은 옅게 욕을 씹으며 급하게 역을 빠져나와 택시를 잡으며 생각했다. 이번에야말로, 종현이 보내준 편지를 모조리 가져다 버릴 것이라고.

도착과 동시에 아틀리에 밖에 서 있던 학생들이 민현을 맞이했다. 아직 졸음이 묻은 얼굴들로 오픈 시간을 기다렸을 것을 생각하니 괜스레 더욱 신경이 쓰였다. 민현은 아틀리에의 문을 여는 와중에도 멋쩍은 얼굴로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역을 지나친 탓에 시간은 더욱 오래 걸렸고, 와중에도 상념에 젖어 몇 번이고 골목을 잘못 들어간 탓에 길을 헛디디기 일쑤였다. 종현의 편지를 받아서인지, 아니면 지하철에서 취한 선잠이 문제였는지 알 수 없었다. 민현은 손사래를 치는 수강생들을 뒤로 한 채 곧장 사무실로 걸어 들어가 눈을 감았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끝냈어야 할 시기를 잘못 탄 것이 분명했다. 무엇이든 지난 후에는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민현은 몇 년에 걸쳐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선생님?”

“네, 화정 씨.”

“피곤하면 좀 쉬다 나와도 괜찮아요.”

“고마워요.”

일말의 걱정도 서리지 않은 화정의 아침인사였다. 민현은 애써 웃는 낯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반 년 전에 차린 아틀리에는 민현의 주요 수입원이다. 근근히 그림을 팔아 벌어들이는 수입도 꽤 쏠쏠했지만, 아무래도 있는 집안의 사모들이 주를 이루는 아틀리에 강의에 비하면 수입이 일정하지 못했다. 분수에 맞지 않는 큰 집을 사들인 탓에 출혈이 컸다. 당장이라도 계약을 무르고 작은 오피스텔로 옮기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았으나, 근근히 날아오는 종현의 엽서 덕에 발도 묶인 참이었다.

문을 나섬과 동시에 민현은 곧장 손을 든 화정에게 향했다. 이제 갓 초로에 접어든 그녀는 유독 민현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많았다. 원치 않는 관심은 늘 부담인 것을 이젠 좀 알았으면. 민현은 멋쩍은 웃음으로 화답하며 그녀에게 몸을 기울였다.

“네, 화정 씨. 데셍에서 막히신 거예요?”

“아뇨, 그런 게 아니고. 전 여자 친구라도 찾아오셨나 해서.”

“네?”

“표정이 딱 그렇던데. 들어올 때부터 심상찮은 게.”

민현은 굳어지는 표정을 애써 정리하며 그녀 곁으로 몸을 기울였다. 연필을 쥐고 묵묵히 명암을 덧칠하는 와중에도 속이 답답했다. 숨기자니 죽을 맛이고, 말하자니 정리하기 애매한 사이다. 민현은 좀처럼 말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이는 화정에게 이따금 작은 웃음소리로 최소한의 대답만 남겼다. 이 여자는 늘 긁어 부스럼이었다. 처음 본 순간부터 꾸준히.

“그러고 보니까, 그 친구는 언젠가부터 안 오네요.”

“누구……?”

“선생님 사무실에서 자주 보이던 친구요. 살짝 쳐진.”

“아, 그 친구요.”

“네, 그 귀여운 친구.”

화정이 제 눈을 아래로 당기며 대답을 재촉했다. 민현은 저절로 머릿속이 휘발되는 기분에 한참을 우물거렸다. 그러니까 화정 씨, 여기, 이 부분…… 농도가 진한 부분은 연필을 짧게 잡으셔야 해요. 반사광은 저번에 설명 드렸으니까 잊지 마시고. 아아, 그 친구는 저도 잘…… 네, 하하. 워낙 바람 같은 친구라서. 찬찬히 대답하는 와중에도 입이 썼다. 바람 같은 친구라니. 막역한 사이도 아닌데 말이 자꾸만 기묘하게 뒤틀렸다. 결국 장소만 달랐지, 다른 반도 아래 살고 있는 사람이라 설명하면 됐을 것을. 민현은 새삼스레 후회하며 그림에 더욱 몰두했다. 하필이면 화정이 그리고 있는 그림은 피렌체의 두오모였다. 쿠폴라의 둥근 지붕을 칠하는 와중에도, 민현은 기계처럼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은 버리게 해 주세요. 그 많은 기억. 그 많은 선물.

네 시. 수강생이 모두 떠난 아틀리에는 적막했다. 햇빛이 드는 곳으로 장만한 터라 내려앉는 공기가 제법 따뜻하다. 민현은 지친 얼굴로 손에 묻은 검댕을 닦아내며, 텅 빈 이젤들이 늘어선 화실을 바라보았다. 이젤 하나하나가 이름 모를 사람들의 뼈대처럼 느껴졌다. 외롭게 혼자 말라비틀어진 뼈대. 볼품없는 그림자. 기울어진 몸뚱아리.

“형.”

민현은 피곤에 젖은 눈동자를 굴려 화실의 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 달에 한 번, 현빈이 찾아오는 날임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즐비한 이젤 사이로 어색하게 웃는 현빈을 바라보던 민현이 따라 웃었다. 오늘 같은 날은 정말이지, 모든 전의를 상실한다. 당장 내일 죽음을 선고받기라도 한 것처럼. 현빈은 머뭇거리다 제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형, 이거. 형도 받았죠.

“뭔데?”

“종현이 형이 보낸 엽서요.”

“…….”

“새벽부터 국제전화 종일 걸었는데, 안 받아요.”

“…….”

“먼저 가 볼 생각은 안 해요?”

“내가 무슨 자격으로?”

“그 형은 일 년째 형만 찾고 있었어요. 형이 한 말 하나 때문에.”

단호한 현빈의 대답에, 민현은 울고 싶어지는 기분을 애써 추스렸다.

책장 안의 마카롱

민현이 종현과 만난 것은 삼 년 전의 여름이었다. 뼈가 저릴 정도로 더운 날씨에 끊임없이 몸은 녹아내렸다. 타인과 살이 부딪칠 때마다 오소소 소름이 돋아 집안에 한 달째 칩거하던 날이었다. 복도를 끼고 방이 늘어선 쉐어하우스에 돌연 짐을 챙겨 내려온 종현은, 첫날 민현의 얼굴을 보기도 전에 일본으로 떠나갔다. 두 달치 집세를 내 놓고 두 달간 시부야로 잠적을 탄 것이다. 집주인의 간결한 설명을 듣고 한참 뒤에 본 종현의 얼굴은 그을린 검댕처럼 새까맸다.

“안녕하세요.”

“네.”

“제 선물도 있나요?”

민현은 종현의 손에 잔뜩 들린 쇼핑백들을 보다가, 멍청하게 첫 마디를 꺼냈다. 종현은 예상 외로 당황한 표정이었다. 옴팡지고 다부져 보이는 진한 인상이었는데, 그 얼굴이 무색하게도 종현은 한참을 머뭇거렸다.

“앞으론 어딜 가도 꼭 챙겨 올게요.”

긴 침묵 끝에 나올 말은 아니었다고, 민현은 생각했다.

이후로도 종현은 거짓이 아닌 것을 증명하듯, 끊임없이 자잘한 선물을 챙겨왔다.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모나카, 때론 싸구려 열쇠고리, 어떨 땐 발사믹 소스. 그 해 여름, 종현을 집에서 볼 수 있는 시간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민현은 종현이 바리바리 챙겨 돌아오는 짐을 망연히 바라보다 선물을 받아들고 어색한 고갯짓으로 답례했다. 호의인지, 예의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았다. 다만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선물을 건네는 종현의 표정은 언제까지고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대뜸 종현이 건네는 선물들을 받아든 민현은, 하우스 메이트인 현빈과 함께 한아름의 짐을 가득 든 채로 상기된 종현을 맞이했다.

겨울이 돼서야 종현은 제법 하얘진 얼굴로 거실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장난끼가 많은 현빈이 놀릴 때면 온 얼굴에 어깃장을 놓은 듯 새빨개지는 얼굴이 제법 사랑스러웠다. 옴팡진 인상이라고만 생각했던 얼굴은 시간이 지날수록 유순해졌다. 민현이 종현의 직업을 알게 된 것도 그맘때의 겨울이었다. 날짜와 맞지 않는 기온에 추적추적 진눈깨비가 내리던 날.

종현은 민현과 닮은 부분이 많았다. 커피를 마시면 잠을 자지 못했고, 술에도 취약한 탓에 분위기를 탄 날엔 몇 날을 줄곧 앓아누웠다. 민현과 종현은 침대의 위아래를 차지한 채로 천장을 바라보며 나긋나긋 대화를 나눴다. 민현이 말을 걸 때마다 종현 또한 잠긴 목소리로 차근차근 대답했다. 그러다 누구 하나가 잠들어 버리면, 그것으로 끝나 버리는 짧은 대화들이었다. 그 정도로 가볍고, 그 정도로 남지 않는 대화들.

“왜 이 집에 왔어요?”

“시부야로 빨리 떠나고 싶었어요.”

“떠나는 걸 좋아하시나 봐요.”

“여행 칼럼을 써요.”

“이번 겨울엔 어디 안 가요?”

“네, 안 가요.”

“왜?”

“그냥요.”

“그거 좋다.”

“왜요?”

“그냥요.”

종현이 대답하자 민현이 헛헛하게 웃음을 지었다. 열이 올라 오락가락하는 와중에도 이유 모를 웃음이 흩어졌다. 그제야 드문드문 종현이 켜 놓는 무드등 아래의 빼곡한 글자들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민현은 까무룩 잠에 빠지는 와중에도, 나긋나긋 울리는 종현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있죠, 민현 씨. 나는 나중에 꼭 언덕 위에 하얀 집에서 살 거예요. 여행 칼럼이 끝나서, 나는 새로운 직업을 가지고……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그렇게 살면서,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노을 지는 분홍색 하늘을 볼 거예요. 그 사람도 분명 날 좋아할 테니까…….”

“…….”

“좋아할 테니까.”

종현은 당찬 목소리로 대답했고, 민현은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사박사박 감기던 눈을 감은 채로 잠에 빠져들었다. 주황빛 무드등이 아른거리는 겨울밤의 작은 방 안에서.

종현은 몇 달씩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몇 주씩 집에 틀어박혀 글을 썼다. 선천적으로 밖에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민현과 묘하게 죽이 맞는 행위였다. 민현은 글을 쓰는 종현의 옆에서, 지난 가을에 종현이 선물해 준 마카롱을 꺼내 야금야금 베어물었다. 라뒤레의 마카롱은 한 번 베어물면 혀끝이 아릴 정도로 달았다. 프랑스에서 반나절동안 줄을 서 사 왔다는 마카롱은 그 명색이 무색하게 민현의 입엔 맞지 않는다. 동글동글한 모양이 찌그러질 때마다 민현은 종현을 생각했다. 모난 데 없는 성격. 동글동글한 웃음. 잘 휘어지는 눈꼬리. 늘 울고 있는 것 같은 눈동자.

바삭바삭한 마카롱. 김종현. 민현은 종현의 뻗친 머리카락을 정리하려 손을 뻗었다. 사락사락 감기는 머릿결이 제법 가벼웠다. 손이 닿음과 동시에 종현이 크게 몸을 움찔였다. 민현은 덩달아 불에 데인 듯이 제 손을 떼어냈다. 종현의 손가락은 멈춘 채로 한참을 키보드 위에 머물러 있었다. 민현이 이내 다시 손을 뻗자, 종현은 제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찰나가 영원 같았다. 사박사박 움직이는 손가락의 촉감이 목께를 건들 때마다 죽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뛴다. 종현이 울 듯 말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안중에도 없는지, 민현의 손은 다시 한 번 다가왔다. 민현은 이번엔 종현의 목 너머 책장으로 손을 뻗었다. 푸른 빛깔의 마들렌이 손에 잡혔다. 종현은 민현의 손이 다시 제 목을 스쳐 지나갈 때까지 머뭇머뭇 몸을 굽혔다가, 민현이 마카롱을 베어 무는 소리가 들릴 때쯤 막힌 숨을 토해냈다. 시야가 뿌옇게 어룽졌다. 못됐어. 종현은 울먹였다.

“이젠 그만 긴장할 때도 됐는데.”

종현의 볼멘소리에, 민현은 고개를 숙여 종현의 입술에 제 입을 맞췄다. 막 베어문 블루베리 향이 입술을 타고 퍼져나갔다. 숨을 쉴 틈도 없이, 종현이 우는 소리를 냈다. 황민혀언. 늘어지는 목소리의 끝이 갈라짐과 동시에, 민현은 밝게 웃어 보였다.

“원래 긴장 완화엔 단 게 최고야.”

“난 그런 궤변 안 믿어.”

민현은 종현의 당찬 대답 대신, 남은 마카롱 절반을 종현의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달달한 블루베리 냄새가 훅 끼쳤다. 주황빛 무드등 아래서 쉴 틈 없이 자판을 두들기던 종현은, 제 입에 들어온 마카롱을 한참동안 우물거렸다. 두 볼이 벌겋게 달아오를 때까지, 쉴 틈 없이. 민현은 이따금 종현의 작게 부푼 볼을 쿡쿡 찔렀다. 움푹 들어갈 때마다 생기는 볼우물이 지나간 자리는 분홍빛으로 달아올랐다.

“주책바가지들.”

저녁 식사를 알리러 민현과 종현을 찾아온 현빈이 못내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환호할 때가 돼서야, 민현은 급히 종현의 곁에서 떨어져 나갔다. 이제 종현의 얼굴은 분홍빛을 넘어서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민현은 여적 블루베리 향이 나는 제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웃는 낯으로 대답했다. 미안, 단 걸 많이 먹어서. 저녁은 무를래.

“그러세요. 어디 가요? 밖에 눈 오던데.”

“산책하러 가.”

“종현이 형, 저녁 로제 감베로니예요. 형이 좋아한다고 해서 해 뒀는데.”

“걔 나랑 같이 나가.”

단호한 민현의 대답을 끝으로, 종현은 민현의 점퍼에 파묻힌 채로 무릎께까지 폭설이 쏟아지는 영하의 바깥으로 끌려나왔다. 어안이 벙벙한 것도 잠시였다. 민현의 손에 자연히 감긴 손가락이 빨갛게 얼어붙었다. 볼이 뜨거웠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얼음 조각 몇몇이 얼굴을 치대고 지나가도 마찬가지였다. 민현이 하얗게 얼어붙은 숨을 연달아 토해냈다. 야트막한 언덕은 눈에 파묻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파르게 꺾였다. 민현은 종현의 드러난 목덜미에 제 볼을 묻은 채로 종현의 귀에 속삭였다. 칼바람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는 와중에도 민현의 목소리만은 또렷하게 울렸다.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종현은 쉴 새 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꾸역꾸역 참던 눈물이 가파른 언덕의 눈이 무너짐과 동시에 뚝 떨어졌다. 민현이 장난스러운 얼굴로 종현의 볼을 만지작거렸다. 울어? 입모양 너머로 옅게 올라간 입꼬리가 눈에 띄었다. 종현은 다시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민현의 가슴팍에 제 얼굴을 묻었다. 차가워진 패딩이 붉어진 얼굴을 옅게 식힌다. 죽을 것 같았다. 퍼석퍼석 무너지는 눈이 굴러 떨어지는 것을 한참동안 바라보면서, 종현은 한참동안 민현의 품에 안겨 입을 웅얼거렸다.

“내가 한 말 기억해?”

“언덕 위의 하얀 집?”

“피렌체의 구시가를 넘어가면, 그 언덕 위에 하얀 집이 있대.”

“우리가 들어가서 살면 되겠네.”

“그렇겠지?”

“매일매일 브런치 먹고, 종일 뒹굴거리고.”

“돼지 돼.”

“너만 해.”

“그런 게 어디 있어?”

“너 감베로니라면 껌뻑 죽잖아. 굴러다니게 되면, 나랑 같이 언덕 위에서 구르자.”

“난 먹어도 살 안 쪄.”

“그래, 그래.”

민현이 웃으며 종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모자를 쓰지 않아 축축하게 젖은 머리카락이 이따금 민현의 손가락에 달라붙었다. 이따금 쉐어 하우스 안에서 달그락거리는 그릇 소리와, 현빈의 그림자가 비쳤다. 민현이 이따금 추적추적 감기는 눈을 탈탈 털어내며 종현의 몸을 더욱 단단히 끌어안았다. 종현은 태곳적의 신생아가 된 양 제 고개를 웅크렸다. 아직도 끝을 모르고 홧홧하게 달아오르는 얼굴이 찬 공기 때문인지, 민현 때문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았다.

몬테로소

떠나자는 결심이 선 것은 불과 이틀 만의 일이었다. 종현의 마지막 편지로부터 한 달, 민현은 발급된 비자와 여권을 두들기며 한참동안 여행가방을 뒤적였다. 떠날 참이면 자꾸만 물건들이 늘어나는 탓에, 벌써 큰 트렁크로만 두 개째였다. 아무리 장기 비자라지만, 지나치게 들떠 있는 게 느껴질 정도로 짐은 끝이 없었다.

정말로 가도 되는 걸까. 불안함이 끊임없이 팽배하는 탓에 머리가 핑핑 돌고 있었다. 민현은 종강을 알림과 동시에 문을 닫아 먼지가 뽀얗게 쌓였을 아틀리에를 되새기며 입술을 깨물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좀체 분간이 가질 않는다. 현빈이 보낸 문자에 찍힌 주소가 맞으리란 확신도 없고, 종현이 전화를 받지 않은 지는 한 달이 넘어간다 했다. 당사자인 민현보다도 더욱 피가 말라 허덕이는 현빈을 다독이려 급히 감행한 여행이었지만, 민현으로선 대대적인 일탈에 가까웠다. 늘 그림으로만 그리던 도시. 막연하게 먼 곳으로만 생각했는데, 한국으로부터 무려 일곱 시간이 떨어진 도시였다. 생각한 것보다도 한참 거리가 멀다. 민현은 새삼스레 물 흐르듯이 떠나는 종현이 존경스러워 혀를 내둘렀다.

떠나기 전, 현빈과의 마지막 식사였다. 민현은 여전히 볼멘 얼굴로 청경채를 볶고 있는 현빈의 어깨를 두드렸다. 힐긋 바라보는 눈동자에서도 한 줌 원망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몇 년이 지나도 똑같이 애 같다. 민현은 애써 웃어 보이며 잘 볶아진 관자 볶음을 식탁 위로 세팅했다. 테라스에서 밥을 먹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긴 다리를 구겨 접은 현빈이 와인을 따르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형, 항공병 없어요?”

“계속 까불어, 권현빈.”

“걱정해서 하는 말이에요.”

“어련하시겠어.”

중얼거린 민현이 익힌 관자를 뒤적이다 나이프로 구석을 찢었다. 어쩐지 입맛이 사그라들었다. 종현을 보러 간다 생각한 순간부터 쭉 그랬다.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답답한 것은 현빈도 매한가지였다. 장난 좀 치지 말고 먹어요. 불퉁한 현빈의 목소리에 애써 포크질을 시작한 민현이 못내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어떡하지.

“난 항상 후회가 늦어.”

민현의 말에 현빈이 끝내 황당한 얼굴을 감추지 못한 채로 입을 벌렸다. 뭔가 더 말할 것이 있는 듯한 얼굴도 거기까지였다.

“됐어요. 여행이나 잘 하고 오세요.”

“응.”

민현이 여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시즈닝이 뿌려진 관자를 우적우적 씹으며, 현빈은 여전히 그늘이 진 민현의 얼굴을 살폈다. 당일 현빈에게 온 편지는 종현의 것이라 믿기 힘들 정도로 위태로웠다. 그간 세계의 어느 거리에서나 초연하던 종현이었는데. 현빈은 당일 받았던 편지를 되새기며 눈을 깜빡였다. 종현이 두오모에서 보낸 편지는, 관계의 마지막이 아니라 생의 마지막을 보는 듯했다. 그래서 더욱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여긴 우기의 피렌체야. 현빈아, 너 그거 알아? 오늘로 민현이랑 헤어진 지 일 년이 되는 날이야. 이 날이 오기 일주일 전부터 집에 틀어박혀서 영화만 봤어. 피렌체의 집들은 아주 작고 예쁜데, 이상하게 흥미가 안 생겨. 집에 틀어박혀 만화책이나 읽으면서 종일 시간을 허비하는 게 차라리 더 즐거운 것 같아. 매일 비가 오고 있거든. 춥고 으슬으슬해서 매일 우비를 쓰고 돌아다녀야 하는데, 가끔 보이는 정원을 걸을 때면 더 기분이 울적해져. 언젠가 민현이랑 밟기로 했던 땅이라서 그런가 봐.

- 현빈아, 요즘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매일 그 날을 생각해. 매일매일. 매일 그 날이 아니었으면, 내가 그 날만 김종현이 아니었다면, 그랬으면 조금은 민현이를 이해할 수도 있었을 거란 생각을 해. 웃기지 않니. 걔 머릿속은 온통 걔 자신밖에 없을 텐데. 항상 나보다 자기 자신이 먼저인 앤데. 그게 서운하다는 건 아냐. 그게 맞는 거니까.

- 그래도, 현빈아. 민현이가 정말 나를 좋아했다면, 한 번쯤은 답장해 주지 않았을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 너한텐 한 번도 이런 애기 꺼낸 적 없었는데 말이야, 그 날 민현이가…… ……않았으면, 내가 지금까지 민현이랑 같이 있지 않았을까.

- 어쨌든, 힘들어. 두 달 내로 두오모를 떠날 거야. 그런데 어디로 떠나야 좋을지 모르겠어. 마지막이 오는 것 같아, 현빈아.

현빈은 종현의 마지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몰랐다. 확실한 것은, 종현이 가벼이 마지막을 입에 담을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현빈은 못내 민현에게 느껴지는 원망을 꾹 누른 채로 식사를 마쳤다. 따지고 보면, 민현의 행동 또한 아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사람간의 마찰이고, 사람간의 일이다. 본인들이 알아서 해결하겠지. 현빈은 싱크대 앞에 서서 물을 튼 채로 한참동안 서 있었다. 민현이 바퀴를 질질 끌며 집을 나설 때까지, 그렇게 한참을.

“다녀올게.”

민현의 마지막 인사를 뒤로 한 채, 현빈은 쏟아지는 물소리에 고개를 숙였다.

/

피렌체의 아침은 비에 젖은 축축한 공기가 쏟아지는 것으로 종현을 맞았다. 종현은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자신의 짐가방을 보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상할 정도로 기분이 묘하다. 막상 떠날 준비를 마치고 나니 속이 쓰렸다. 꿈처럼 그리던 집이었고, 마침내 제대로 찾아왔다 싶었는데. 이렇게 끝내긴 아쉬워서 그런지도 모른다. 종현은 한참을 책상 앞에 앉아 멍하니 자판을 두들겼다. 무슨 글자를 쓰고 있는지도 모른 채로 추적추적 글자를 아로새기다 보니, 마지막엔 결국 한 문장만 남았다.

[몬테로소의 바다]

몬테로소의 바다. 종현은 입으로 소리 내어 글자를 읽은 뒤에 계단을 내려갔다. 자박자박 걸을 때마다 나무 계단이 작게 삐걱거렸다. 피렌체는 온통 안개에 휩싸여 낮과 밤도 불분명하게 흘러갔다. 거실까지 나와 잠에서 덜 깬 눈을 비비적거리자, 이내 밝은 얼굴로 종현을 맞이하는 아델라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작게 주름진 그녀의 얼굴에 못내 아쉬움이 가득했다. 종현은 덩달아 울적해지는 기분을 감추지 못한 채로 고개를 숙였다.

[갈 거니?]

[네. 당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동안 아델라랑 있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나도 좋았단다. 더 성숙한 상대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감사합니다.]

왠지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종현은 잠시 입술을 오물거리다, 식탁 위에 놓여져 있는 타파스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키위를 곁들인 프로슈토 타파스였다. 아델라가 유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종현은 한 조각을 움켜쥔 채로 입에 넣는 제스처를 취하다, 이내 아델라에게 말을 걸었다. 서툰 언어가 띄엄띄엄 튀어나왔다. 저, 있잖아요.

[그 사람이 절 진짜 좋아했다면, 진작 찾아와서 절 안아 줬겠죠?]

[그런 생각은 할 필요가 없어, 종현아.]

아델라가 다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종현은 다시 한 번 고개를 돌린 채로, 타파스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씹었다. 바삭바삭한 바게트와 시큼한 키위가 한데 섞이고, 짭짤한 프로슈토가 겉을 감쌌다. 종현은 한참동안 그 자리에 선 채로 아델라의 품에 안겨 있었다. 몬테로소의 바다. 기차를 타고 달리면 땅과 바다의 끝이 맞닿는 곳. 하루에도 수십 번을 오고 가는 파도처럼 민현을 생각하던 것도 이젠 마지막이 될 터였다.

4개월 전, 지친 얼굴로 구시가를 돌고 있던 종현을 데려온 아델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했다. 민현과 같이 살고 싶었던 집이라 되뇌이며 눈물을 터트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델라는 울고 있는 종현을 쓰다듬으며, 높낮이 없는 억양으로 대답했다. 그럼 언제든 그 애와 다시 오면 되지 않겠냐고. 종현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델라의 말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민현과 있었던 모든 일들이 꿈처럼 느껴질 때마다, 아델라가 일러준 현실이 거친 아가리를 벌렸다. 언제든 다시 오면 되지 않겠니. 종현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 목소리에 답한다. 아니요, 아델라. 이젠 그럴 수 없어요.

종현은 가끔 민현이 찾아오는 상상을 한다. 불모의 객지 어디에서라도 같은 땅을 딛고 선 민현의 인영을 바라보고, 또렷하면 또렷할수록 현실이 아님을 조금 더 빨리 자각한다. 민현은 언젠가부터 종현의 영원한 객원이 되었다. 늘 기다리지만, 아무런 상관도, 연관도 없는 사람. 거기서 느껴지는 비참함을 떨쳐낸 것도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었다. 종현은 싸 뒀던 가벼운 짐가방을 들고 다시 거실로 내려왔다. 아델라가 다시 한 번 종현의 손을 가볍게 감싸 쥐었다.

[언제 올 거니?]

[저녁 먹기 전에 돌아올게요.]

늦지 않게. 종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몬테로소의 바다. 끝도 없이 푸른 물만 가득한 곳이지만, 종현은 옛날부터 막연히 상상하던 외지의 장소였다. 종현이 문을 나설 때까지 아델라는 한결같이 다정한 얼굴이었다. 종현은 작은 계단에 짐을 내려놓은 채로, 아델라를 다시 끌어안았다. 푸근한 중년의 몸이 품 안 가득 들어찬다. 다녀올게요. 종현이 속삭임을 마지막으로 뒤를 돌았다.

기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 도착한 몬테로소는, 도착을 알림과 동시에 쾌적한 바다 내음이 훅 끼쳤다. 비수기의, 그것도 비가 오는 바닷가는 한적하다 못해 텅 비어 있었다. 종현은 자박자박한 모래사장 끝머리에 앉아 무릎을 모았다. 우비 위로 툭툭 떨어지는 양질의 비가 못내 상쾌했다. 거진 몇 달간 학을 뗐던 핸드폰도 함께 축축하게 젖기 시작한다. 종현은 한껏 상기된 얼굴로 선명한 바다의 색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민현과 함께 오기로 했던 수많은 도시를, 결국 다 혼자 돌고 말았다. 이젠 정말 마지막이다. 종현은 매섭게 스며드는 파도를 몇 번 만지작거리다,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길고 외로운 일 년이었다. 혼자였는지, 아니면 편지를 받아보는 민현도 함께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종현은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간만에 핸드폰을 켰다. 쏟아지는 수십 개의 메신저 알림 위로, 가장 최근에 뜬 알림 하나가 떠올랐다.

[황민현]

“…….”

종현은 붙박이가 된 양, 한참동안 그 자리에서 뚫어져라 핸드폰만 바라보았다. 이미 떠나온 몬테로소의 바다가 전부 가슴 안으로 스며든 것 같았다. 몰아치는 파도에 잠식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종현은 떨리는 손으로 메신저의 마지막 버튼을 눌렀다.

[피렌체로 왔어]

[한국에서 쓴 일 년치 엽서를 주고 싶어서]

일 년을 참았던 울음이 바보처럼 터져 나왔다. 몬테로소의 바다처럼.

그것도 사랑이에요

결과적으로 종현과 민현의 헤어짐은 처음부터 예견되어 있었다. 처음 만났던 날부터 꾸준히 종현이 느낀 민현의 감상은 간결했다. 타자화된 인류. 별개의 상성을 지닌 인간. 세상의 일에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방관자.

사귄다고 한 첫 날부터 종현은 꾸준히 그런 생각을 했다. 민현이 모든 이에게 똑같이 다정하고, 똑같은 애정을 퍼붓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고. 민현이 가끔 필요 이상으로 이타적인 자세를 취하느라 외려 종현에게 피해가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민현은 늘 한결같다. 종현은 어느 순간부터 지쳤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설명하는 순간 서로에게 지나치게 냉정해질 민현이 눈에 보이는 듯 했고, 결국 머지않아 이별 또한 현실로 다가왔다.

평소처럼 넘어가면 됐을 일이라고 생각했다. 일 년간 민현과 종현이 그렇게 잘 버텼던 것처럼, 종현은 이번에도 한 번 더 참을 생각이었다. 민현이 생판 모르는 남의 편을 들지만 않았어도. 시시하고 우스운 이유였지만, 결국 종현이 폭발하고 만 것은 그 작은 아틀리에에서 일어난 소동 때문이었다. 항상 종현만 불안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민현의 선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었다. 민현은 항상 웃는 낯이다. 아틀리에 안의 모든 이에게. 민현은 항상 다정하다. 아틀리에 안의 모든 이에게.

종현은 어느 순간부터 아틀리에에서 머무는 날이 길어졌다. 이따금 민현과 어떤 사이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종현이 말하기에 한 발 앞서, 민현은 늘 웃는 낯으로 대답했다. 그냥 친구요.

적막한 노을이 진 아틀리에의 사무실 문을 박차고 나온 것은 결국 종현이었다. 종현은 이미 울음이 가득한 얼굴로 민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넌 항상 그런 식이야. 누구보다도 날 위하는 척하고, 날 아낀다고 착각만 해. 그런 생각을 할 때, 네가 무슨 얼굴로 날 대하는지 너는 알아? 네가 얼마나 이질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아냐고.”

“종현아.”

“내가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모르지. 좋아한다 말한 건 너고, 더 잘한다고 말한 것도 넌데, 너는 정말 무서울 정도로 모두한테 똑같고, 나는 여전히 매일 애간장 녹고. 지금도 내가 하는 말이 그냥 헛소리 같지. 왜 이러나 싶지, 너는?”

“야.”

“그런 식으로 나 부르지 말랬잖아.”

“종현아. 그럼 헤어질래?”

“너 지금 할 말이 그게 전부야?”

“지금 나한테 헤어지자고 이러는 거 아니야?”

“황민현.”

“지금 너랑 말할 기분 아니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너는 이게 네 마음대로 맺고 끊을 수 있는 대화 같아? 민현아, 안 되겠으면 말이라도 해. 내가 이렇게까지 구차하게 사랑한다는 말 듣자고 애써야 해?”

“사랑한다는 걸 굳이 말로 해야 알아?”

“아니. 근데 넌 말로도, 행동으로도 안 보여. 그래서 불안해. 네가 어쩌고 싶은 건지 하나도 모르겠어. 다들 그렇게 말하는데 너만 몰라. 왜 너만 몰라? 왜 항상 너만 모르는데?”

“전혀 못 느꼈으면 헤어지라니까, 종현아.”

“너 진짜 못됐다, 황민현.”

“그래, 그렇다고 쳐.”

쾅.

아틀리에의 문을 거칠게 닫고 나간 종현은, 곧장 그 길로 제 집에 있던 얄팍한 짐을 모두 빼 여행길에 올랐다. 한 달, 두 달이면 돌아오겠지. 화를 풀고 오겠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민현의 바람이 무색하게, 삼 개월이 지나 종현에게 온 엽서는 간결했다. 마지막일 거라고. 민현은 종현과 함께하기 위해 골랐던 새로운 집에 앉아 한참을 그 엽서만 들여다보았다. 어디서부터 잘못한 것인지, 눈앞이 깜깜했다. 구조상의 평등은 결국 관계에 아무런 의미가 없었음을, 민현은 그제야 깨달았다.

일상은 같았지만 감정은 같지 않은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이따금 종현이 웹상에 업로드하는 자잘한 여행 칼럼들이 올라올 때마다, 민현은 걸신들린 사람처럼 달려들어 종현의 글을 읽었다. 몇 번을 찬찬히 읽고, 또 읽으며 자신을 조금이라도 언급한 구절이 있는지 살폈다. 애초에 여행객을 위한 칼럼에서 자신을 언급할 리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랬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야 민현은, 타인의 입을 통해서 들리는 감정으로 자신을 정의내릴 수 있었다. 그건 미련이에요, 라고.

종현이 떠난 지 칠 개월이 되어가던 여름, 눈물이 날 정도로 매운 비빔면을 사 들고 온 현빈은 한심한 얼굴로 젓가락을 딸깍였다. 매운 것을 먹지 못하는 민현이 눈물 한 바가지를 쏟는 와중에도 별다른 제지는 없었다.

“후회하면 가 보세요. 미련하게 굴지 말고.”

“내가 무슨 자격으로.”

“…….”

현빈은 대답하지 않고 그 매운 비빔면을 마저 우겨넣는 것으로 대신했다. 민현 또한 묵묵히 입을 다물고 남은 비빔면을 꼬아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무언의 죄책감이기도, 회개이기도 했다.

/

한참동안 거리를 헤맨 뒤 찾아온 ‘언덕 위의 하얀 집’ 안에 들어온 민현은 멋쩍게 데운 핫초코를 받아들었다. 사람을 찾으러 왔다는 말을 한 뒤로 쭉 대답이 없는 그녀 때문에 전신의 애간장이 녹아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민현은 이내 서툰 영어로 다시 한 번 그녀를 불렀다. 저, 아델라 씨.

[혼자 사세요?]

[저녁에 올 사람이 있어요.]

아델라가 푸근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민현은 이미 심장을 토해낼 듯한 긴장감에 젖어 있었다. 종현이 사는 집인지, 아니면 그 배다른 지역을 또 찾아가야 하는지 아직까진 잘 몰랐지만, 민현은 언제든 다시 떠날 준비를 마친 참이었다. 일 년을 도망다녔던 시간이 헛된 일이었음은 이미 뼈져리게 느낀 뒤였다. 민현이 심각한 얼굴로 핫초코를 홀짝이자, 아델라는 숄과 우산을 쓰고 문을 향해 다가갔다. 곧 저녁 식사를 할 시간이었다. 거대한 민현의 트렁크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의 태도로 미루어 보아 종현에게 해를 입힐 물건이 아님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빗소리에 묻힌 경쾌한 목소리로 문 밖을 향해 속살거렸다.

[왔구나.]

“네?”

민현이 멋쩍은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그녀는 이미 문을 닫고 나간 뒤였다. 언덕 아래로 점차 사라지던 그녀의 인영을 바라보던 민현은, 여전히 긴장된 얼굴로 먹통이 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급히 오는 길인지라 휴대용 와이브로 하나 사 두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웠다. 민현이 보낸 문자를 읽었다는 표시만 남긴 채로, 메신저는 한참동안 노란 빛을 내며 깜빡였다. 민현은 멍한 얼굴로 제 앞에 놓인 핫초코를 다시 한 번 홀짝였다. 얼마 가지 않아, 문이 달칵이는 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렸다.

“아델라?”

민현은 불에 데이기라도 한 것처럼 벌떡 일어났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부엌에 웅크리고 있던지라 종현은 민현이 도착했다는 것조차 모르는 눈치였다. 거실 한가운데로 와 한참동안 멍하니 서 있던 종현은, 급하게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미 한바탕 운 얼굴이 빗물에 젖어 잔뜩 축축해져 있었다. 아델라, 실은 말이에요, 이제 떠나지 않아도 될지도 몰라요. 이제…… 정말로요. 종현은 횡설수설하며 말을 이었다. 부엌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을 아예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민현은 애써 울음을 삼킨 채로 얼굴을 묻은 종현의 두 손을 떼어냈다. 이질감에 몸을 움찔거리던 종현도, 이내 민현의 품에 안긴 채로 다시 한 번 몸을 들썩였다. 일 년 사이, 더욱 왜소해진 종현의 몸이 더욱 가벼웠다.

“일 년을 보고 싶어했는데.”

목이 막혀 이따금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민현은 축축하게 젖은 종현의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일 년을 보고 싶었는데, 도망가서 미안해.”

민현이 중얼거렸다. 종현이 듣고 있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당장 내일 종현이 사라진다면, 그 다른 곳을 찾아서 어디로든 떠날 수 있다고. 민현은 한참동안 종현을 끌어안은 채로 생각했다. 물에 젖은 가슴팍이 미지근한 눈물로 또 다시 젖을 때까지. 축축하게 젖은 종현의 입술에 입을 맞출 때까지.

끌어안은 종현의 몸에서는 바다 냄새와, 비 냄새가 뒤섞인 향이 스며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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