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성장은 정말 실패한 걸까?
가구소득 격차는 줄어들었다. 저소득층 이동성도 높아졌다. ‘성장’만 뺀다면 완벽하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은 동네북처럼 비판받는 정책이 됐다. 언론에서는 성장의 발목을 잡고 분배 격차마저 더 벌려 놓았으며 계층 이동성을 저해한다고 비판한다. 보수적인 전문가들은 물론, 진보적인 전문가와 언론도 소득주도성장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일이 많다.
나도 비판적인 입장을 가졌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숫자를 좀더 들여다보며 생각이 바뀌면서 반성을 하게 됐다.
세 가지 질문에 차례대로 답해 보면서,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초기 결과를 살펴보자.
첫째, 소득주도성장은 분배를 악화시켰을까?
그렇지 않다. 문재인정부 내내 가구소득 불평등도는 낮아졌다.
소득불평등도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이후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 가구소득 지니계수 기준으로 보면 그렇다. 가계금융복지조사는 매년 2만여 가구를 표본추출해 벌이는, 가구 소득 및 자산과 관련한 가장 권위있는 조사다.
지니계수는 높을수록 불평등도가 높다는 의미이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그대로, 가구균등화(가구원수를 감안해 표준화)한 가처분소득 기준 지니계수를 사용했다.
소득불평등도는 박근혜 정부 초기 낮아지다가, 후기에 약간 높아지거나 정체되었었다가, 문재인 정부 들어 다시 본격적 하강 추세로 접어들었다.
기초연금 상승, 최저임금 인상 등 다양한 정책의 결과로 소득불평등은 꾸준히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 계층이동성은 낮아졌을까?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으로 소득 하위계층이 많이 갖는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하위계층 가구의 계층 이동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비판도 많았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소득 수준 하위 20% 가구의 계층 상승 확률은 5년 전에 비해 현저히 높아졌다. 2012~2015년 동안 하위 20% 가구가 이듬해 계층 상승을 할 확률은 17%대였다. 그러나 2017~2020년 해당 계층의 상승 확률은 22%에 이르렀다.
최저임금 인상 등의 조처는 하위계층의 계층이동성을 높인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하위계층 임금이 많이 올라서 그렇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기초연금 등 공적부조의 강화, 세제 강화 역시 비슷한 효과를 냈을 것으로 보인다.
셋째, 성장을 방해했을까?
명확하게 답하기 어렵다.
성장 여부를 1인당 실질 국민총소득을 기준으로 살펴보자. 오랜 기간 상승 일변도이던 1인당 소득은 2019년에 주춤했다. 하지만 2020년과 2021년은 코로나19로 나라 경제가 큰 어려움을 겪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2021년 1인당 국민소득은 사상 최고인 3만 5천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의 성장세가 탄탄하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소득주도성장 정책과 이런 성과가 관련이 있을까? 명확하게 이야기하기 어렵다.
세 가지 질문에 대해 숫자를 살펴보니, 대체로 소득분배정책 및 계층이동성 강화 정책으로서의 소득주도성장은 성공적이었다는 잠정적 결론이 가능할 것 같다. 하위 20% 가량의 저소득 가구에게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효과를 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도 전세계적으로 불평등이 크게 확대되면서 대부분 선진국의 사회 문제로 대두된 시점에서, 불평등을 이만큼 억제 및 완화했다는 점에서 꽤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문제가 없었다. 소득주도 ‘성장’에는 문제가 있었는지 모른다. 굳이 ‘성장’을 끌어들일 필요가 없었다. 그 자체로 효과적인 분배정책이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말이 문제였지, 정책은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언젠가 좀 더 상세하게 재평가를 할 날이 왔으면 싶다. 선거와 정치로 너무 복잡해진 마음이 개입되지 않을 날에.
- 관련된 분석과정 일부와 그래프 작성을 위한 julia 코드를 여기 공개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