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한 지 어느덧 1년이 다 되어 간다.
미국 영주권자로 자진입대 하여 군복무를 마치고 온 나는 전역하고 지금까지
가장 많이 들은 말이 “군대 갔다 온거 후회 안해?” “군대 왜 갔다 왔어?” 이다.
지난 5월 병무청(Military Manpower Administration) 에서 주최한 “자원 병역이행자 체험수기” 공모전에 제출할 겸, 나 자신도 생각을 조금 정리해보고 싶어서 글을 써봤다.

조금이라도 궁금했거나 자진입대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은 읽어 봤으면 한다.

내가 제출한 수기는 운 좋게도 전군에서 2등, 우수상으로 뽑혔고(!) 내가 직접 쓰고 제출한 수기의 문장 일부분으로 작성된 중앙일보 기사들도 나왔다 :)

“뉴욕에서 논산갈때 알아야 할 것들”

이름: 천이준

별 느낌이 없었다. 난생 처음 가보는 논산 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난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때웠다. 이때 까지만 해도 별 느낌이 없었다. 부모님과 함께 훈련소 입구 앞 식당에서 갈비 몇 점 안 들어간 밍밍한 갈비탕을 먹을 때만 해도 별 생각이 안 들었고 나처럼 머리를 짧게 민 1500명의 다른 입대자들을 봐도 난 별 생각이 없었다. “입영장병 여러분들 입장하시기 바랍니다. 이동!” 이라는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스피커를 통해 연병장에 울려 퍼질 때 까지도 난 몰랐었다. “엄마, 아빠 나 이제 갈게. 금방 갔다 올 거야” 라는 인사를 하고 엄마를 끌어안을 때서야 깨달았던 것 같다. 아, 나 진짜 군대 가는구나. 엄마, 아빠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보고 나서는 가슴이 탁 하고 막히고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 이었다. 애써 웃어 보이며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연병장으로 들어섰다. 2013년 3월 11일, 14시 경 약 1500명의 나와 같이 혼란에 빠진 대한민국 남자들이 어설픈 충성을 해 보이고는 부모님께 손을 흔들며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소등”이라는 단어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불이 꺼진 어두운 생활관의 딱딱한 침상에 누워 취침 등을 쳐다보며 훈련소 첫날밤을 뜬눈으로 지새운 게 아직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막막한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취침 등의 밝은 주홍빛은 몽롱하게 빛났고 밤새 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왜 여기 누워있지? 한 달 전 까지만 해도 뉴욕에서 학교를 다니던 내가 왜 하루아침에 논산 육군 훈련소 입소대대의 한 생활관에 처음 보는 55명의 남자들과 침상 위에 어깨를 맞대고 누워 밤새 취침 등과 눈싸움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이때 나이 스물 셋. 내 23년 인생 동안 이토록 혼란스러운 밤이 있었을까.

11살의 나이에 미국 뉴저지로 가족과 함께 이사를 갔다. 뉴저지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마치고, 뉴욕 컬럼비아 대학교에 입학하여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미국에 오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어린 나이에 미국 영주권을 취득 하였고 영주권이 있었기에 솔직히 대한민국 병역관련 문제는 살면서 단 한번도 진지하게 고민을 해 본적이 없었다. 한국에 사는 대한민국 남자라면 대학교에 입학 할 때 즈음 다들 한 번씩은 해 볼법한 군대 관련 고민을 난 23살이 되어서 자진입대 결정을 함과 동시에 처음으로 해 보았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즈음 난 카투사에 지원 했었다. 내 생각은 이러했다. ‘카투사에 뽑히면 카투사로 입대하고, 안 뽑히면 그냥 군대 자체를 아예 안 가야지’ 라는 정말 단순하고도 마음 편한 생각 이었던 것 같다. 난 카투사 입대 명단에 오르지 못했고, 그 뒤로는 3년간 군대에 관한 생각을 깊게 해 본적이 한 번도 없었다.

많은 사람들의 꿈의 도시인 뉴욕에서 아이비리그 명문대학교에 다니며 동시에 미국 영주권자인 나는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병역문제를 고민할 여유가 없었고, 딱히 고민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친구들도 많았고, 대학생활은 재미있었으며, 더 이상 바랄게 없었다. 내 인생에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학교 2학년을 졸업하고 여름방학이 되자 모든 것이 바뀌었다. 가장 친한 친구 세 명 중 두 명이 나와 같은 미국영주권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진입대를 결정한 것 이었다. 제일 친한 친구 두 명이 군대로 가버리자 많이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안 가도 되는 군대를 왜 가기로 결정했을까? 나도 가야 되나? 라는 생각으로 시작해서 해답이 없는 질문들은 끊이질 않았다. 그리고 내 생각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아니, 사실 생각이 바뀌었다기보다 오랫동안 가슴 깊은 한 편에 숨겨 놓았던, 생각하면 할수록 복잡해지기에 숨겨놓았던 마음들이 한 없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던 것일 거다. 한 번 피어 오른 이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영주권자 자진입대 신청에 대해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있었다.

오랜 고민 끝에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2013년 3월 11일자로 나 또한 군대에 자진입대 하기로 결정했다. 대학을 마친 후 금융업에 종사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던 나로서는 3학년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이고 졸업 후 에 얼마나 큰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지 알고 있었다. 같은 전공 친구들은 안가도 되는 군대를 왜 굳이, 그리고 왜 하필 3학년의 흐름을 끊으면서 가기로 결정을 하나, 정 가고 싶다면 졸업 후에 가라, 다시 생각해 보라는 등 많은 충고와 걱정을 해주었다. 이 시기가 정말 나중에 큰 영향을 미칠 거라는 건 내가 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더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인 것 같았다. 그랬다, 난 입대를 기회라고 생각했었다. 부족한 것 없이 살아가고 있었던 나에게 자진입대가 어떤 의미의 기회였을까. 그건 바로 내 자신을 돌아볼 기회, 내 가치관을 확립할 기회였고, 내 정체성에 한 발짝 더 다가가 솔직해질 수 있는 기회였으며, 처음으로 대한민국의 건아라는 이름을 목에 걸고 태극기를 조금 더 뜨거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였다. 3학년을 마치고, 4학년을 마치고 졸업을 하여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 한여름 밤의 꿈처럼 사라질 것만 같은, 지금 당장 꼭 실천하고 싶은 내 자신과 그리고 내 조국과의 묵언의 약속 같았다.

십대 후반부터 이십 대 초반의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두려워하고, 몇몇은 늦추려고 발버둥 치고, 극소수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피해 보려는 대한민국 군대. 난 그래서 더 가고 싶었다. 도대체 그 소수가 이토록 두려워서 피해가는 21개월간의 군대생활이 도대체 뭐기에 이럴까, 난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은 평생 느끼지 못할, 감히 알지 못할 경험을 난 자진해서 해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논산 육군 훈련소 28연대 6중대 2소대, 영주권자 소대에 배치된 나는 55명의 다른 영주권자들과 함께 6주간의 훈련소 생활을 했다. 훈련소에는 미국 영주권자였던 나를 비롯해, 캐나다, 독일, 영국, 과테말라, 일본, 중국, 인도, 라오스…등등 정말 많은 나라의 영주권자들이 있었다. 나보다 한국말에 어눌한 친구들을 보며 비록 동기였지만 존경심이 우러나왔고 끈끈한 동질감을 느꼈다. 한 순간에 사회의 모든 것과 단절되어 움직임 하나하나가 명령과 주어진 시간표대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난 도리어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였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곧 적응했다. 취침시간 전 까지는 정말 일분도 마음 편하게 쉴 틈 없는 훈련소였지만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군에 자진 입대한 동기들과 정말 보람찬 훈련소 생활을 했다.

인천광역시 61사단 직할대 정보통신대대로 자대 배치를 받은 뒤 난 21개월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병장 만기 전역을 하였다. 자대로 전입 간 첫날,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지 콧구멍으로 넘어가는지도 모른 채 선임들에게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를 연발하기 바빴고 그 후로 몇 달간은 늘 긴장한 상태로 시간, 주변 사물, 사람을 늘 의식하며 생활했다.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흘러 이등병, 일병을 지나 나는 상병이 되었고 2014년 4월의 한 월요일 점심시간이 되어 난 병영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 선, 후임, 동기들과 함께 어울려 즐겁게 밥을 먹을 때 쯤 우리 정보통신대대로 자대 배치된 신병 세 명이 우리 테이블로 와서 같이 밥을 먹게 되었다. 오랜만에 받는 신병들을 보면 누구나 그렇듯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관심을 표하게 된다. 쏟아지는 관심과 질문에 긴장한 신병 세 명은 한 숟가락 뜰 때마다 선임들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치며 대답하기 바빴고 긴장한 나머지 숟가락을 떨어뜨리고 밥풀을 여기저기 흘리는 등 훈련소 막바지에 다시 한 번 새로 깎이고 나온 짧은 신병들의 머리털 사이로 송골송골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전입 첫날의 나의 모습과 다를 게 없었다. 이제 상병이라는 계급에 위치하여 있는 시점에서 바라본 갓 전입한 이등병의 모습은 한없이 처량하고 측은하기만 했다. 군대에 입대하여 처음으로 깊은 의문이 들었다. 밖에서 개개인의 삶이 있고, 꿈꿔온 미래, 사랑하던 가족, 여자친구, 하던 일들이 다 있을 텐데 무슨 이유로 이들은 하루아침에 머리가 저렇게 짧게 깎인 채 여기에 와 있는 것일까? 왜 이등병 들은 늘 저렇게 주눅이 들어있을까? 왜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충성을 외치며, 20살, 21살, 꽃다운 나이의 청년들이 군대라는 곳에 불려 와서 저렇게 측은한 모습으로 앉아서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지 콧구멍으로 넘어가는지도 모른 채 밥을 꾸역꾸역 쑤셔 넣고 있는 걸까? 난 이때 까지만 해도 그 답을 찾지 못했었다.

2014년은 대한민국 국군 역사에 있어서 정말 다사다난한 해였던 것 같다. 내 자신이 군대라는 조직 안에 속해 있었던 해여서 조금은 편파적인 의견일 수도 있지만, 지난 몇 년간을 토대로 볼 때 군대 관련 사건사고는 확실히 비교적 많았다. 사건사고가 생기면 군대 내에서의 상황은 많이 힘들어 진다. 늘어나는 정신교육 시간을 비롯해 끊임없는 전투준비태세는 군인들을 많이 지치게 한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더해지는 육체적인 피로를 난 굳건한 마음가짐 하나로 이겨냈던 것 같다. 나라가 혼란에 빠질수록 더욱 더 강인한 정신을 바탕으로 나라의 기둥이 되어야 건 우리나라의 군대라고 생각한다. 현재 전 세계에 남은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 대한민국은 군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개개인이 병영이행에 있어 직접적인 법적 의무가 없다 하더라도 난 그건 크게 중요치 않다고 본다. 대한민국이라는 이 자랑스러운 나라의 피가 몸속에 흐르고 있는 사람이라면 입대는 너무나도 당연하면서도 동시에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도 군인의 대한 여러 가지 부정적인 시선들이 남아있다. 또한 군인들은 이 부정적인 시선들을 별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는 자신이 맡은 숭고한 임무가 별 것이 아닌 양 비관적으로 보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우리 대한민국 군인들이 자기가 맡은 임무를 ‘아무나 다 가는 군대’라고 폄하하며 일반성을 논하기 보다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위대하고 아름다운 나라 지키는 일’로 생각의 변화를 조금만 준다면 더 멋진 국군이 될 수 있을 것 이다. 2014년은 다사다난한 해가 분명했다. 하지만 2014년 10월 1일은 매우 뜻 깊은 건군 65주년 국군의 날이기도 했다. 건군 65주년을 맞아 앞으로 더 밝은 내일, 더 강한 대한민국 국군이 되는 도약으로 삼아 우리나라를 이끌어 나가는 주역이 되었으면 한다.

난 2015년 1월 말 컬럼비아 대학교에 복학하여 현재 3학년 2학기의 끝에 접어 들고 있다. 복학 한 뒤 많은 사람들이 물었다, “솔직히 말해서 군대 간 거 한번도 후회 안 했어?” 다들 내가 자진입대 하여 군대를 갔다 온 걸 후회 하는지 제일 많이 궁금해 한다. 그럴 때 마다 난 그냥 별 말 없이 웃고 넘기곤 한다. 2013년 3월 11일 논산 육군훈련소 입소대대에 입대한 나는 그로부터 이틀 후 인 3월 13일 내 영주권자 소대와 함께 우린 실제 훈련 시작 전 한국문화 체험 주 차 평택에 있는 제2함대 사령부 천안함 전시관에 견학을 간 적이 있다. 전시관을 둘러보던 중 군복을 입고 조용히 영어로 대화하고 있던 우리를 신기하게 쳐다보시던 할아버지 한 분 이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 하셨고 우리는 여러 나라의 영주권자 이며 자진입대 하였다고 말씀 드렸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내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으시고 눈물이 맺힌 채로 말씀하셨다, “자네 같은 젊은이가 있어 우리나라가 아직 살만 한 나라인가 보다. 고맙네 젊은이.” 난 아직도 그 천안함 전시관 안에서 느낀 그 할아버지의 주름진 손의 따스함과 깊은 눈동자를 감싼 눈물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날 뒤로 난 입대에 대한 후회는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다. 난 입대 한지 3일 만에 느낀 그 감정 하나로 21개월 동안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