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관한 다짐
글을 매일 쓰기로 했다. 트위터에 쓰는 140자짜리 메모도, 회사에서 쓰는 때론 내키지 않는 주제에 관한 딱딱한 글도 아닌 ‘나의 글’을 쓰지 않고서는 글을 쓴다고 말하기가 민망하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주제에 관하여 사람들이 관심 가질 만한 내용을 마련하고, 사람들이 알아듣을만한, 호기심을 가질만한 표현을 연구할 것이다.
가까운 지인 중에 연극 연출을 하는 이가 있다. 그는 10년 간 연기를, 연극을 해왔다.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고민했고 인지하고 있으며, 어떻게 연출하면 좋을지를 일상 속에서 늘 탐구한다. 난 프로정신이라는 것을 그렇게 젊은 사람에게서는 처음으로 느꼈다. 그는 29살밖에 안 됐다. 그 사람이 “난 연극 하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면 누구나 “그렇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난 글 쓰는 사람이야”라고 말할만큼 나는 글을 성실하게 써왔던가? 이것이 나를 먹이고 살릴 수단이라 여기며 기꺼이 내 시간을 바쳤던가? 내내 말은 그렇게 해놓고 행동으론 그러지 않았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상실의 시대』를 쓴 무라카미 하루키는 하루에 일정한 시간(오전 4시에 일어나 4–6시간) 동안 글을 쓴다. 그리고 저녁에는 달리기를 한다. 그런식으로 ‘글쓰기를’ 일로 여기고 싶다. 내가 제시간에 퇴근을 하면 오후 7시 30분이다. 저녁을 먹고 나서 9시부터 10시까지는 꼭 글을 쓰겠다.
어린 시절에는 글 쓰는 것이 괴로운 일이었다. 종이 위를 (추하지 않고, 멍청하지 않은)의미로 가득채운다는 것은 정말 고된 일이었고 정신력을 소진하는 일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대입논술을 준비하며 글을 끄적였던 때 말이다.
하지만 대학교를 거치며 글 쓰는 게 그렇게까지 힘든 일은 아니게 됐다. 때로는 말하는 것보다 글로 쓰는 것이 더 쉽게 여겨진 적도 있다. 답답할 땐 숨을 쉬거나, 눈물을 흘리는 것만큼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것은 내가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다행스럽다.
또한, 편집장은 내게 글 쓰기가 ‘소통’의 즐거움을 준다는 것을 다시 일깨워줬다. 잡지에서 어떤 글을 쓴다는 건, 내가 하고싶은 얘기를 하는 것보다 독자가 무엇을 재미있어할까를 먼저 생각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내용을 쉽게 전하기. 이건 글쓰기의 본질이다. ‘소통하기 위한’ 글은 전혀 엘리트주의주의적일 이유가 없다. 소통을 거부한다면 어렵게 적으면 된다. 하지만 소통이 목적이 아니라면 글을 적어서 발표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런 건 일기장에 충분히 쓸 수 있다.
27살의 글을 쓰고 싶다. 어깨에 힘을 빼고, 입 속에 웅얼거리지 않으며, 독선적이지 않은 그런 글을 쓰게 될 거다. 글자에 사람의 호흡을 불어넣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인간다워질 수 있으면 좋겠다. 많이 보고 듣고 경험하고 관찰해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알아듣기 좋게 설명해줄 수 있는 이가 되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