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 아무

1.

몇몇 같이 시험을 보러 갔다.
영문도 모른 채 난 또 시험장에 있는 것이다.
모르는 젊은 녀석은 그럼직하게 열심히 문제를 풀고 
나는 시험지가 잘 보이지 않아 계속 프린트를 벅벅 문지르고만 있었다.
이것 봐요 문제지가 이것밖에 없나요?
어지럽게 널려진 문제지들은 그런데 아무것도 똑같지 않았다. 
내가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들도 있었지만 맞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시험을 잘 치고 싶었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왜 시험을 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야 난 좋은 학교를 가야해. 뽑히기는 할까? 시험을 잘 봐야 할 텐데. 아니 이정도면 충분해.
난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니까. 나쁘지는 않다구. 왜 더 좋은 학교를 가야 하지? 학교 따위는 다신 더 다니고 싶지 않아.
언젠가는 시험장에 가지 않아도 될 거야. 이젠 꽤 익숙해지기도 했어. 내 발로 걸어 들어온 것같다니까.
킬킬거리며 나는 문제지를 찾고 있었다.

2.
잔을 기울이는 P의 뺨이 붉게 달아 올랐다
그녀는 내게 호감을 갖고 있는 게 분명하다
짐짓 모르는 체 P의 손가락을 스치며 탁자 너머로 그녀의 불룩한 가슴을 쳐다 보았다.
P는 머리칼을 쓸어 넘긴다
잽이다. 이건 복싱 경기나 한가지야. 그녀는 비로소 싸울 의사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한껏 달아 올랐지만 나는 딴청을 피운다. 그런데 k는 말이야 유학을 가긴 간다는 거야?
사이드스텝, 그녀가 다시 공격해 오면 나는 카운터펀치를 날릴 준비를 한다.
그때 P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집에 가서 맥주 한잔 더 할래요?
스트레이트다. 덜커덩 소리를 내면서 뱃속 어딘가에서 조그만 기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그거 좋지. 목소리가 조금 갈라져 나온다.
조심. 이러다 내가 KO되는 수가 있어.

조그만 원룸. 탁자 너머로 침대가 바로 보인다.
잠깐 나 씻고 나올게요.
탁자에서 침대까지의 거리는 오쩜사미터. 내 머리는 맥주를 홀짝 거리면서도 분주하다.
멀고도 멀다. 오쩜사미터를 P와 함께 가는 방법을 나는 모른다. 가본 적이 없다. 
가운을 두르고 식탁에 앉은 채로 그녀는 머리를 털어 말린다.
숨이 조금씩 가빠진다.
한잔 해.
쪼르르, 맥주를 따르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린다. 
소리가 커질수록 내 시야에서 침대는 점점 멀어진다. 
헐떡거린다.
P가 무어라고 말하는지 잘 모르겠다. 
음악,
스트라빈스키 좋아해요?
오쩜사미터?오쩜오미터? 
한달음도 안되는 거리가 점점 멀어진다. 맥주잔을 잡은 손이 점점 굳어진다.
머릿칼인지 비누냄새가 코를 스친다. 
쨍하고 코피가 나는 것도 같아 연신 코를 훔친다. 
괜찮아요? 얼굴이 하얘졌어.
P의 손이 나의 얼굴로 향한다.
하아,

3.

S에게

우리는 될 수 있으면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하지. 
알 게 뭐야
똑바로 쳐다본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도망가고 싶지만 도망갈 수 없을 뿐이지. 알아
난 상관 없지만, 널 괴롭히고 싶진 않아
들키고 싶지 않지만 들켜도 상관 없어
이야기 하고 싶지만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어
편하게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
너와 편한 사이 따윈 되고 싶지 않다구
폭풍같이 괴로웠었지
폭풍같이 괴로울까봐 잠을 잘 수 없었지
잘 지내.
너와 작별인사 따위를 할 수는 없는데
혼잣말을 해야 하는데,
애원하진 않겠어
뚜벅뚜벅 걸어서 사라진대도 상관없어 
언제 한번 빤히 쳐다본 적도 없잖아

4.

S는 나에게 말했다. 넌 여자친구가 있잖아
나 너랑 결혼하고 싶어. 침대에 웅크린 듯 앉아 말하는 그녀의 눈이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는 나를 깨끗이 씻겨 아저씨의 차에 태워 보내곤 했어요.
나는 나쁜 년이예요. 그녀가 슬프게 보이려 했는지 슬퍼 보였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멀리 서 있었다.

Show your support

Clapping shows how much you appreciated amoo’s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