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하는 글쓰기

시작은 단순했다. 힘들었던 대학원 생활을 잠깐 내려놓고 쉬는 기간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를 알고 싶어서 나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자서전처럼.

기억하는 가장 어린시절부터 현재까지 써내려갔다. 유치원 때의 짤막한 기억을 쓰고,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기억을 쓰고, 그리고. 단편적으로만 돌아보던 기억을 끄집어내었다. 지지리도 가난했던 시절의 이야기. 하나님만을 의지했던 광야와 같은 시기라고 가족들은 말한다. 그래서인지 그 시절이 지나고도 단 한 번도 불평한 적이 없었다. 결국 축복으로 돌아온 시기였으니까.

판도라의 상자처럼 나는 덮혀있던 그 기억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묵혀뒀던 그 때의 아픔이 생생히 전달되어 한참을 울기만 했다. 나의 고통은 원치 않던 가난과 아동학대(방치)로 인한 고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때의 일이 현재의 나를 괴롭히지는 않았으나 한 번 꺼내어 먼지를 털어주고 손으로 정성껏 쓰다듬어 준 후, 나는 나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그 시절 왜 내가 급격한 성격 변화를 겪었는지, 왜 어딘가 뒤틀린 채로 학창 시절을 보내야만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어린 내가 안쓰러워 보듬어주었다. 나밖에 보듬어줄 사람이 없었다. 그제서야 그 기억을 제대로 기억하고 내 기억함에 넣어놓을 수 있었다.

가장 많이 치유가 되었다고 생각한 일은 그 후의 다른 일이다. 언젠가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던 와중에 내가 전 남자친구와 맺었던 관계가 폭력적인 관계였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성적인 모든 관계를 문란하고 수치스럽게 여기는 대한민국+기독교의 콜라보 문화 덕분에 나는 그 때까지 내가 당했던 일들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고 난 후 나는 그 관계가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었으며, 내가 수치스러워 할 일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나는 나에게 편지를 썼다.

어린 나에게, 성인이지만 제대로 된 관계와 그렇지 않은 관계를 분간할 수 없었던 나에게. 그 아이를 보듬어주고 공감해주고 위로해주었다. 단단하고 강한 아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사랑한다고 하며 나를 토닥여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글로 인해 치유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이전에 세상과 관계하며 비슷한 사례를 접하고 더 많은 것을 알아갔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치유는 되고 있었지만, 마침표는 그 글이었다. 꽁꽁 묻어두었던 나를 다시 꺼내 보듬어주는 것. 그리고 더 이상 내 안에 수치를 품지 않는 것.

글쓰기는 치유가 된다. 특히 아픈 일을 꺼내어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면 그 때의 나를 이해하고 공감해주게 된다. 모든 아픔이 글로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오래 묵혀온 감정들은 글로 해소가 되는 것 같다. 앞으로의 인생에 또다른 고통과 아픔이 없길 바라지만, 필연적으로 인생의 어느 때엔가 겪게 될 고통 속에서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길 바란다. 적어도 나에게 글쓰기는 도움이 된다.